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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39, 2부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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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다흔넷 Oct 30. 2022

나의 기억 (1)

9 said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2년 전 가을, 생애 처음으로 혼자 유럽 여행을 갔던 그 때, 아이폰에 랜덤으로 틀어놓은 음악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자주 흘러 나오던 노래였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좋은 사람들과 너무나도 즐겁고 열정적으로 다녔던 스타트업 회사가 경영 난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에 백수가 된 나는 그 해 여름 내내 구직 활동을 해야 했다. 평소 잘 입지 않는 면접용 정장을 입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여기 저기 참 많이도 다녔다. 여름엔 보통 T/O가 쉽게 잘 나오지 않아 예상보다 구직 기간은 길어졌고, 어느덧 계절도 가을로 바뀌어 갈 무렵 또 다시 난 도망치듯 유럽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사실 이 노래가 내 플레이 리스트에 있었는지 기억에도 없었는데 ‘파리'에 도착한 첫 날 혼자 세느 강변을 걷던 중에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때 불던 시린 바람과 낯선 공기, 차가운 ‘파리' 사람들과 어색한 도시 풍경 속에서 멈칫 “아, 외롭다" 라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모르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혹자는 파리를 ‘낭만의 도시’라고 한다. 누군가는 한번 ‘파리'에 가면 그 매력에 빠져들어 계속 계속 가고 싶을 수 밖에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 기억 속 ‘파리'는 그들과 다르게 적혀 있다. 내게 ‘파리'는 외로웠고, 낯설었으며 불편하고 불안했다. 한마디로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나의 베스트 소설 중 하나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 인물이 워낙 많기도 한데다 각자 자신의 과거 속 모호한 기억들에 의지한 채 서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보니 쉽게 읽혀지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오로지 타인의 기억에 의존해 자신을 기억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 가운데에는 보통의 능력을 초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까지 언제 몇시 몇분 몇초에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세세히도 기억해 낸다. 하물며 후각, 청각, 시각 등 오감을 총 동원하면서까지 말이다. 그게 나다. 반면에 금붕어 보다 못한 기억력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뿐 나머지는 오로지 타인의 기억을 통해서만 기억해 낸다. ‘어머, 내가 그랬니~?’ 그게 Y다.



    99일 간의 긴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햇살 좋은 카페에 앉아 Y와 난 뒷풀이 겸 이런 저런 여행의 추억팔이를 하고 있던 중 ‘파리’에서의 기억이 서로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Y는 전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고, 무슨 말을 나에게 했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단 한가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 - 먹은거라던가, 먹은거라던가, 먹은거라던가 - 오직 그것에 대한 즐거움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내 기억 속, Y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나만 영원히 고통 받고 있어야 할 ‘파리’와 ‘브뤼셀’에서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팩트이자 궁서체이며, Y에게는 없는 내 기억 속 이야기이다.

     



    서두에서 말했듯 내 기억 속 ‘파리’는 그저 더럽고 지저분하며, 뭔가 계속 틀어지고 외롭고 불편하고 불친절한 도시였다. 사실 ‘파리’는 죄가 없다. 그냥 나랑 성향이 다른, 호불호 중 불호일 뿐. 그래서 ‘파리’를 떠나던 날, 내 인생에 다시는 이 곳에 올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사정을 들을 Y는 자기가 이번에 나의 ‘파리 트라우마’를 극복시켜 주겠다며 근본없는 오지랖으로 나를 꼬셨고, 호기로운 Y느님의 이끔에 이끌려 2년 후 다시 이 곳 ‘파리’에 오게 된 것이다.



    도착한 첫 날, 비행기며 버스, 지하철, 트램에 도보까지 웬만한 이동 수단들은 거진 다 이용한 우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많이 지쳐 있던 상태였다. 게다가 Y는 ‘스페인’에 300 파운드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터라 애써 쿨한 척, 담담한 척 했어도 어느 정도는 멘탈이 나가있는 상태였다. 라고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난 그만 Y가 쓴 쿨 가면에 깜빡 속고 말았다. 난 정말 Y가 ‘300 파운드' 쯤은 괜찮은 줄 알았다. 어찌나 담담하게 굴던지 담뱃불인줄. 그래서 평상시처럼 옆에 붙어 알짱거리며 앵기고 투덜대고 질척대면서 눈치 없게 장난을 쳤다. Y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2년 전 그때도 머무는 내내 비가 왔었는데, 이 놈의 ‘파리’는 내가 온 줄 또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비가 내리려나 보다. 저혈압이 심한 Y는 이런 날이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몹시 예민해지기 때문에 조심히 다뤄줘야 한다. 라고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난 그만 Y가 잠시 빌린 카페인의 힘에 깜빡 속고 말았다. 난 정말 Y가 ‘저혈압' 따위는 이겨낸 줄 알았다. 어찌나 빨빨거리고 잘 돌아다니던지 빨래판인줄. Y와 난 숙소에서 나와 ‘파리’ 시내 곳곳을 걸어다니며 가볍게 관광을 시작했다. 조금 춥고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였지만 세느 강변을 따라 걸으며 역시 강 중에 강은 한강이라며 국뽕에 차기도 하고, 퐁네프 (Pont Neuf) 다리를 등 뒤로 퐁데자르(Pont Des Arts) 다리 위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퐁네프 다리를 보려면 퐁데자르 다리에서 보면 된다.), 시테 섬, 마레 지구 등을 다니며 빈티지 샵들과 카페들을 구경했다. 오후가 되자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처럼 파리지앵들도 내리는 비를 그냥 그대로 맞고 다녔다. 비가 오든 말든 노천 카페의 자리는 대부분 만석이었고, 누가 프랑스 사람들 아니랄까봐 대부분 프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하지만 우린 파리지앵이 아니었으므로 우산이 없음에 당황해 하며 ‘퐁피두 센터’ 앞 작은 식당에 들어가 비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비를 피해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숙소에서는 조촐한 삼겹살 파티가 준비 중이었다. 오예~ 그러나 Y는 안타깝게도 아침에 마신 카페인 기운이 떨어져 가는지 무려 “무료” 삼겹살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옆에서 정신 놓고 와구 와구 먹고 있던 나는 영문도 모른채 덩달아 따라 일어났다. 자칭 ‘나까리미 시메요’란 일본 이름을 갖고 있을 만큼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Y 없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식탁에서 그들과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굶기 보다 싫은 일이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접고 Y를 따라 방에 들어 온 난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Y에게 괜히 심통을 부려본다. 투닥 투닥. Y의 미간에 주름이 2개가 생겼다.

    


    다음 날 아침의 날씨는 어제보다 더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일정이 많은 날이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제일 먼저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다. 역시나 세계 최고의 명소답게 궂은 날씨에도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특히나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는 떼로 몰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 때문에 모나리자의 눈썹만 겨우 보고 나올 수 있었다. 아. 그녀는 눈썹이 없던가. 어쨌든 처음의 열정과 다르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박물관의 미로 속에 갇혀 슬슬 지쳐갈때 쯤 Y와 난 눈이 마주쳤다. 암묵적 시그널을 주고 받는다. 찌릿 찌릿. 이제 그만 나갈까. 콜! 박물관을 빠져 나오니 왠일로 날씨가 화창한 게 바깥 공기가 제법 상쾌했다. 박물관 옆 ‘튈를리 정원’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저 멀리 하늘이 또다시 검게 변하고 있다. 우린 다음 일정을 위해 잽싸게 숙소로 돌아가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샹젤리제 거리로 나왔다. 서울의 청담동 거리 같은 샹젤리제 거리는 화려하고, 우아하며 고급스러운게 딱 우리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충 개선문 좀 보고, 루이비통 건물 앞에서 기념 사진 한 장 딱 찍고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직행했다. 우린 이미 ‘로마’랑 ‘바르셀로나’를 보고 온 직후라 이런 이국적 건물이나 역사적 상징물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명품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 밤은 샹젤리제 거리보다 화려한 야간 에펠탑 투어를 하기로 했다. 2년 전 ‘파리'의 추억 중에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이 야간 에펠탑 투어였기에 이번엔 꼭 Y와 함께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와인 한 병과 칩 한 봉지를 사들고 유람선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세느 강변을 따라 파리의 야경을 구경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에펠탑 점화 타임.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유람선을 가득 메운다. 우리도 열혈 관광객 모드가 되어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혼자 왔을 땐 어쩔 수 없이 얼굴만 동동 나오는 셀카 사진과 흔들리는 에펠탑 사진 뿐이어서 내심 그게 아쉬웠는데, 이번엔 Y도 함께 왔으니 나도 에펠탑이랑 나란히 근사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기대를 했다. 그랬었건만...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건만... Y는 도통 나를 찍어줄 생각을 않는다. 2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 초보 야경러들의 흔한 실수 - 야경 불빛으로 초점이 흔들릴 게 뻔한, 건질 것 하나 없을 에펠탑 사진만 주구장창 찍어댄다. 반면에 난 그런 Y를 열심히 찍어주었다. 

    

    “여기 봐봐. 저기 서 봐. 이렇게 해봐.”

    

    이 새끼는 말은 또 잘 듣는다. 안 찍어줬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내 아이폰 속엔 얼굴만 동동 나오는 셀카 사진과 다양한 각도의 멋들어진 Y의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참다 참다 나도 좀 찍어 달라고 해야 겨우 한 장 찍어주는 Y가 사뭇 섭섭했다. 꼭 말을 해야 아나…



    야경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못내 섭섭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Y가 또 혼자 빠르게 앞서가기 시작한다. Y는 걸음이 빠르고 난 걸음이 느린 편이다. 그래서 종종 내가 뒤따라 갈 때가 많은데 그날은 그 “따라가는” 느낌이 유독 싫었다. 같이 여행을 왔는데 계속 혼자 여행하는 기분, 아니 혼자일 때보다 오히려 더 혼자 있는 기분, 개X끼 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기분이 들어 나란히 같이 좀 가자고 Y에게 말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알았다고 할 법한 그 말에 Y는 대뜸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늦게 오는 사람이 맞춰야지 왜 내가 맞춰야 하냐면서. 되려 나보고 빨리 좀 걸으라 짜증을 냈다. 그 말에 나도 화가 났다. 

 

 “빨리 가는 사람이 늦춰줘야 맞지"

 “왜 그래야 되는데, 니가 빨리 오면 될거 아니야"

 “나도 최선을 다해 빨리 가고 있는거거든"

 “그럼 어쩌라고"


    그렇게 우리는 별 일 아닌 일로 말싸움을 했고 오고 가는 말의 수위가 점점 세지더니 급기야 Y는 가시 돋힌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일일히 내가 널 챙겨야 하냐, 알아서 좀 하면 안되냐, 불평 좀 하지 마라, 그동안 많이 참았다 등등 갑작스런 Y의 고백(?)에 나는 순간 당황했고, 자존심도 상하고 급기야 수치스러운 마음까지 들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서로 싸우더라도 최소 막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Y는 기어코 그 선을 넘어 버린 것이다. 가끔 Y가 이렇게 고약한 말을 할 때면 난 그 즉시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 날이 그랬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돌아온 방 안의 기운도 덩달아 싸해졌다. 그런 상태로 서로 각자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가 우리는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일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여행 중에 싸움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싸웠다고 당장 헤어질 사이도 아니니까. 앞으로 60일은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 사이니까… 그랬는데. 또 터지고 말았다. 딱히 다음 날 - 특히 이런 기분으로 - 뭔가 할 일도 없던 우린 이런 저런 아이디어 끝에 숙소 주인이 ‘몽생미셸 투어’를 해 준다는 게 생각이 났고, 이번엔 누가 주인한테 물어보느냐에 대해 언쟁이 시작됐다. 평소 이런 일은 Y의 담당이라 난 당연히 Y가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Y는 뜬금없이 나보고 물어보고 오라는 것이다. ‘나까리미 시메요'씨는 말만 들어도 손에 땀이 나고 긴장이 됐다. 이런 건 네 역할 아니냐며 갑자기 왜 내가 해야 하냐고 소심한 반항(?)을 했더니 대뜸 너도 좀 눈치껏 하면 안되냐고 또 짜증을 내는 것이다. 

 

“왜 매번 내가 해야 해. 너도 좀 해"

 “계속 너가 해 왔잖아"

 “그냥 가서 물어보고 오라고. 그것도 못하냐?”

 “못해. 내가 해봤자 맘에 안들 거 뻔한데 그냥 너가 한번에 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이런 미션은 나에겐 스트레스라는 걸 누구보다 뻔히 알면서, 무엇보다 분명 내가 물어보고 온다고 한들 자기 맘에 들어하지도 않을거면서. 그래서 난 한번 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얘기했다. 서로 여행 중엔 각자 잘하는거 하기로 하지 않았냐, 난 내가 잘하는 다른거 하겠다 했더니 왜 이런 일은 항상 자기가 해야 하냐면서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러더니 다시 이어진 두번째 가시 돋힌 막말. Y는 두번째로 선을 넘고 말았다.



    이쯤해서 Y에 대한 TMI. 오늘처럼 Y가 종종 선을 넘는 데는 이유가 있다. Y의 내면에는 두 명의 Y가 존재한다. PMS 기간의 Y와 그렇지 않은 Y. PMS 기간의 Y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속 “저주 받은 괴물” 하이드처럼 “내면의 악”이 Y를 지배한다. 극강의 예민함과 짜증, 범접할 수 없는 우주의 기운까지도 그 머릿채를 낚아채 끌고 내려와 저 아래 심연으로 쳐박아 버리는 숨막힐 듯한 우울. 기본적으로 워낙에 기운도 쎄셔서 그 우울감은 주변 사람들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이번처럼 순간의 화가 폭발할 때면 날 선 고양이의 손톱같은 막말과 날카로운 독설로 상대방을 마구 할퀸다. 그때의 Y는 평소의 Y가 아니다. 문제는 그 화남의 포인트가 매번 다르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Y 자신도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나는지, 그때는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내면의 악”이 시키는대로 머릿 속 생각과 다르게 입이 마음대로 내뱉는단다. Y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 당하는 기분 같다고 한다. 그 날 Y는 스페인에 300 파운드를 두고 왔다는 자괴감과 계속된 잔뜩 찌푸린 날씨가 PMS와 버무려져 그렇게 자신의 하이드를 꺼내어 보였고,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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