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said
“저의 간절한 소망은 오늘 아침 비엔나에서와 같은 날씨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잘츠부르크로 오게 하셨으면 봄 같은 날씨도 주셨어야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다. 이번엔 내 컨디션이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Y가 생일 선물로 나에게 오한과 감기를 선물해 준 듯하다. 그래도 낮에 잠깐 숙소에서 나와 지난번 비바람이 몰아치던 ‘쇤부른 궁전'에 이어 이번엔 눈보라가 휘날리는 ‘미라벨 궁전'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름답다'란 뜻의 ‘미라벨’ 궁전은 으스스한 날씨 때문인지 내 생일 때문인지 아름답기보다 어딘가 ‘미라의 궁전' 같아 보였다. 다시 두 번 말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속 마리아와 아이들이 신나게 ‘도레미 송'을 부르던 ‘미라벨 궁전' 앞 ‘장미 정원’은 컨디션 때문인지 내 생일 때문인지 한 반 키쯤 내린 단조가 어울릴 법한 스산한 잔디 밭일뿐이었다. 다시 세 번 말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다. 어쩐지 아름다운 궁전도, 푸르른 정원도 내 생일날 봐서 음산하고 눅눅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자꾸만 기분도 처지고 골골거리는 나를 대신해 Y가 혼자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음식 재료가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Y는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도 부리듯 주방에서 뭔가를 부산스럽게 만들어댄다. 칼질이랄 것도, 뭔가가 끓여질 만할 것도 없을 텐데 탁탁탁 칼질하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난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다. Y의 주방이 궁금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며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생일 진짜 싫어, 망할 생일.’ 창 밖으로 눈치 없이 내리는 때 아닌 눈을 보며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시끌벅적한 생일로 행복한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구우우~ 생일 축하합니다~”
그날 Y가 차려준 저녁은 조촐한 컵라면 따위가 아닌 미역국과 파스타, 와인이 준비된 제법 근사한 생일상이었다. 알고 보니 Y는 나 몰래 한국에서부터 미역국을 싸가지고 그동안 캐리어 깊숙이 숨기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오늘에서야 드디어 해치우게 되었다며 귀여운 생색을 내는 Y의 말속에서, 어젯밤 몰래 마트에 가서 파스타와 와인을 사 왔다는 Y의 계획 속에서, 그리고 다시금 꺼내는 생일 선물에 담긴 Y의 무용담 속에서, 이 모든 상황들이 난생처음이라 나는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평소 생일 파티를 하는 친구들이 그저 부럽기만 했었는데,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나한테도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여행 전부터 신경 쓸 일도 많았을 텐데, 물 오른 연기력으로, 철저한 준비력으로 내 생일까지 생각해 준 Y의 마음이 표현할 수 없이 고마운 나머지 결국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생일이란 핑계로 날씨 탓, 기분 탓, 숙소 탓을 하며 불평불만에 철없이 굴기만 했는데, 그 마음이 그 순간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나부터 여덟까지 하나 같이 싫었던 오늘 하루가 마지막 아홉이 좋아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이 난 하루. 내 생일 콤플렉스의 진실, 오늘 나의 하루가 다른 어떤 날들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다음날 ‘오스트리아'에 가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할슈타트'를 다녀왔다. 분명 Y가 찾아내 보여준 사진 속의 ‘할슈타트’는 알록달록한 동화 속 마을 그대로였는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도착한 그곳엔 그런 동화는 없었다. 선착장 입구는 벌써부터 ‘핫도그' 가게가 진을 치고 있었고, 마을 여기저기에는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진짜 마을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없어졌는지, 강 주변 그러니까 일부러 사진 찍기 좋은 스폿들은 외관만 번지르르한 동화 속 마을처럼 꾸며놓은 수베니어 샵과 레스토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딘가 GS25 편의점도 있을 것만 같다. Y의 기대를, 나의 로망을 처참히 무너뜨렸다. 여행 전 매일 밤마다 보던 인스타그램 속 좋아요가 넘쳐나던 ‘할슈타트'의 사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게시물이었던가. ‘할슈타트’의 진실. ‘할슈타트'가 다른 어떤 마을보다 동화 같았다는 증거는 없었다.
현실과 진실의 민낯을 여행한 듯한 ‘잘츠부르크'의 마지막도 ‘비엔나'에서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날씨가 화창해졌다. 화창을 넘어 따가운 햇살에 뜨겁기까지 했다. 이미 오전에 숙소 체크 아웃을 한 상태였기에 짐은 ‘잘츠부르크 역' 보관함에 맡겨 두고 그동안 날이 좋지 않아 미뤄두었던 시내 구경을 하러 나섰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시내는 제법 생기가 넘쳤고, 특히나 모차르트 생가 앞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365일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 보면 위대한 인물 한 명을 배출해 낸 나라가 갖게 될 부가 가치가 얼마나 클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구시가지 광장 안 ‘cafe Tomaselli’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우리도 오래간만에 따사로운 햇살의 기운을 느껴보았다. 우여곡절 속에 ‘오스트리아’에 와서야 처음으로 막연히 동경해 왔던 유럽의 여유와 낭만을 느껴볼 수 있었다. 비타민 D를 흡수한 날과 흡수하지 않은 날의 차이를 경험한 우리는 이어서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에 올랐다. ‘잘츠부르크' 시내 가장 외곽에 위치한 그곳은 군사용 요새답게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유료 케이블 카를 타야 했다. 물론 걸어 올라갈 수도 있을 높이였고, 평소의 우리라면 걸어가고도 남았겠지만 조금 전 기분 좋게 흡수한 비타민 D 덕분인지 쿨하게 케이블 카 티켓을 구입했다. 지난번 대관람차의 대참사에서 얻은 지혜로 우리는 단체 관광객들을 교묘히 따돌려 가장 좋은 자리를 확보, 케이블카 탑승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잘츠부르크'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으니 지난 며칠 동안 현실과 진실의 민낯에 실망했던 마음들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진다. 그 순간 나도 아이폰을 들어 멋들어진 사진 몇 장을 찍어 보란 듯 인스타그램에 올려 본다.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이 다 오늘처럼 화창하고 좋기만 했던 것처럼.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보통 이국적인 것에 이끌려 여행을 시작한다. 현재에 처한 환경이 무료하고 권태롭게 느껴질 때면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마치 여기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절대 얻지 못할 거란 오만과 어디든 여기보다 나을 것이란 편견이 불완전한 여행을 완벽한 자신만의 로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전 날 밤 누가 잤을지 모를 푹 꺼진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하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수건이며 세정 용품들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 호시탐탐 내 가방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을 신경 써야 하고, 매번 새로운 끼니를 찾아 고민해야 하는 여행의 고단함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여행의 다른 얼굴이다. 무료하긴 해도 편안했던 일상의 내 자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불안하긴 해도 익숙했던 내 시간들이 얼마나 귀중한지는 떠나온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 어쩌면 여행은 내가 얻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투심에 떠나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생일 콤플렉스 또한 세상에 대해 내가 만들어 낸 억지스러운 나의 질투였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것에 ‘생일의 저주'라 갖다 붙여대며 투덜거리던 2016년 4월 26일도 사실 다른 날보다 그렇게 엉망이진 않았다는 걸 알았던 것처럼. 아니 오히려 Y의 9 project 덕에 이번 생일은 꽤 유쾌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Y의 샤머니즘이 나의 오랜 저주를 풀어준 게 된 건가. (으아. 점점 Y에게 말리고 있어. 기분 나빠) 평생을 모차르트에게 질투만 하며 살았던 살리에리도 스스로는 불행했다 생각했을지 몰라도 오히려 그 질투심 때문에 살지 않았을까.
영화 <아마데우스>의 결말은 이렇다. 살리에리의 질투로 모차르트는 결국 죽게 되고, 이후 살리에리 또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고 만다. 정신병원에 찾아온 신부에게 살리에리는 자신의 곡을 들려주지만 신부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곡을 들려주자 신부는 금방 알아차리고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 살아있는 살리에리의 곡은 아무도 모르고, 죽은 모차트르의 곡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현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보다 행복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