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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인 아버지 밑에서 음악가가 되고 싶은 꿈조차 제대로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살리에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음악가의 도시 ‘비엔나’로 가서 궁정 음악가가 된다. 그는 신을 위해, 또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황제와 비엔나 사람들을 위해 자랑스러운 음악가의 길을 열심히 걸어간다. 적어도 모차르트가 ‘비엔나’로 오기 전까지는...
그와 반대로 음악가인 아버지 밑에서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며 어릴 적부터 황제나 교황 앞에서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 실력을 가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를 따라 황실 음악교사가 되고자 ‘비엔나’로 온다.
모차르트의 공연을 본 살리에리는 그 천재성에 반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며 천방지축에 오만방자한 그의 태도에 크게 실망한다. 더욱이 자신이 사랑했던 콘스탄체의 마음까지 빼앗아버린 모차르트를 저주하기 시작했고, 자신에게는 그런 천재성을 주지 않은 신의 선택에 깊은 원망을 갖게 된다.
“저의 간절한 소망은 신을 찬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G단조 1악장'과 함께 모차르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자신의 온몸을 난도질하는 노년의 살리에리.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은 그렇게 시작된다. 18세기 ‘비엔나’는 당시 모든 음악가들의 꿈의 도시로써 서양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비엔나’라는 이름은 ‘비엔나커피’, ‘비엔나소시지’ 같은 - 우리로 치면 영광 굴비, 포천 막걸리, 횡성 한우쯤으로 여겨지는 - 거의 무지에 가까운 도시의 이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비엔나’를 들러 보고 싶었던 이유는 어디 가서 유럽 여행 좀 해봤다면 왠지 가봤어야 할 도시처럼 느껴지는 이름에서 풍겨 오는 유럽풍 간지랄까. 하지만 유럽 내에서도 살인적인 물가로 악명 높은 ‘오스트리아’를 꼭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Y와 나는 약간의 의견차가 있었다. 난 ‘비엔나’를 잠깐이라도 들러 보고 싶다고 했고, Y는 딱히 ‘비엔나’에는 별 감흥이 없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Y를 설득시킬 명분이 필요했다.
사실 둘이 여행을 하면서 둘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힘든 일이다. 일단 우리는 각자 원하는 여행 계획표를 짜서 공유해 보기로 했다. 검색에 능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누구보다 자신에 관한 '욕구'가 강해 먹고자 하면 먹어야 하고, 하고자 하면 꼭 해야 하는 초절정 자기애의 결정판인 Y는, 그 바쁜 준비 기간 중에도 틈틈이 유럽 지방 도시들을 찾아 액티비티와 맛집들을 꼼꼼히 검색해 그 가운데서 자신이 필히 먹어야 하는 것, 봐야 하는 것, 해야 하는 것들 위주로 가고 싶은 도시들을 선정했다. 그러나 신께서는 Y에게 철두철미한 멀티태스킹 능력과 꼼꼼한 검색 능력"만" 주신 듯 싶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여행의 필수 조건인 동서남북 방향 감각과 도시 간의 이동 거리, 나라별 지리에 관한 깊은 지식은 전혀 주시지 않은 걸 보면... (끙) 여행 계획을 짜면서 지도는 펴보지도 않고 구글 검색에만 의지한 Y의 계획표는 여행 계획이라기보다 그냥 “내가 가고 싶은 나라 베스트 9” 처럼 보였고, 동선은 이리저리 엉망인 데다 어쩜 그리도 위험 지역들만 고르셨는지 마치 시한부 인생을 판명받고 모든 걸 버리고 장렬히 떠나는 자의 생애 마지막 여행처럼 보였다.
반면에 나는 일단 '욕구'란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검색은 또 더럽게 못한다. 인터넷으로 뭔가를 찾아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귀찮고 어렵고 싫은 일이다. (참고로 난 IT 업계에서 일을 한다.) 나는 우선 구글이 아닌 세계 지도를 펴놓고 평소 TV나 SNS 등에서 우연히 본 곳, 영화나 책 속에 나오는 곳,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곳 등 기억과 감각에 의지해 “나의 느낌”이 꽂히는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의 동선부터 체크한다. Y와는 다르게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고, 길 눈이 밝은 난, 그 곳이 원래 가고자 했던 곳이었다 하더라도 동선의 라인이 별로 아름답지 못하면 과감히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내가 가진 가벼운 욕구보다는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예쁜 동선에 만족감과 행복을 더 느낀달까. 그런 다음, 동선이 정해진 도시들을 중심으로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해야 할 것 등을 찾아보는 순서로 나만의 최종 여행 계획표를 만든다. 한 가지 더, Y에겐 없고 나에겐 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안전 염려증’이다. N극과 S극이 만나듯 주변의 온갖 위험 요소들은 꼭 나만, 여럿이 있어도 꼭 나한테만 달라와 붙는다. (Y는 이것을 ‘고타율 위험 반응력’이라 불렀다.) 2016년 당시는 IS의 유럽 테러로 유럽 곳곳에 여행 주의보가 발령된 도시들이 많았다. ‘여행 금지’가 아닌 그저 ‘주의’를 준 것만으로도 그곳은 나에겐 매우 위협적인,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1순위 탈락 지역이었다. 하지만 Y는 그저 주의만 준 곳이니 가도 된다는 주의로, 주의를 주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 제일 안전하다는 데를 가더라도 죽을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는 운명 주의자이자, 지독한 샤머니즘 주의자인지라 그래서 가끔 나의 안전한 ‘안전제일주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나도 안다. 위험한 것이 더 스릴 있다는 것쯤은.. 그래도 안 되는 건 안돼. (나만 또 다친단 마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계획표를 재정비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체코’와 ‘이탈리아’가 다행히 포함되어 있었고, 마침 그 사이에 작고 귀엽게 있는 ‘오스트리아’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난 이왕 지나가는 길이니 한번 들러 보자고 제안을 했고, Y는 여전히 영 탐탁지 않아했다. 여전히 Y에게 ‘오스트리아’는 특별할 것 없는 흔하디 흔한 유럽의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그냥 전체적으로 동선이 예쁜 데다가 지나가는 길이기도 해서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라 별 다른 설득을 못하고 있었는데, Y는 내가 ‘오스트리아'에 미치게 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나 보다. 하여 Y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금 무소불위의 검색 신공을 발휘하여 마침내 ‘잘츠부르크’ 근처 ‘할슈타트’라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연 속 동화 같은 모습의 마을을 발견해 냈다. 드디어 Y에게도 ‘오스트리아’에 가야 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할슈타트’ 한 곳 덕분에 극적으로 ‘오스트리아’가 최종 합격되었다. 게다가 ‘슈니첼'이라는 ‘오스트리아’ 정통 음식까지 발견해 낸 Y는 그것을 꼭 먹어봐야겠다면서 ‘비엔나’ 맛집 리스트까지 뽑아 놓았다. 이럴 때면 Y의 남다른 자기애와 끈질긴 검색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일단 ‘비엔나’까지는 체코 남부 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미니 벤을 타고 국경을 넘어가기로 했다. 같은 유럽 연합 안이라 그다지 국경을 넘는다는 느낌은 크게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오스트리아’에 진입하자마자 굵은 진눈깨비가 세차게 날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에 된통 당한 경험이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5월을 코 앞에 둔 지금, 푸르러야 할 녹음과 따사로워야 할 햇살, 높아야 할 구름은 간데 없이, 차가운 눈과 매서운 비가 뒤섞여 내리는 유럽의 알싸한 봄 날씨는 여전히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거기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비엔나'는 하필 일요일이었던 탓에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게들도 대부분 닫혀 있어 고풍스럽게 보여야 할 건물 양식들이 어딘가 낡고 싸늘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도착 첫날이고 하니 Y와 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만난 운명의 도시를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비엔나커피 맛집이라는 ‘Cafe Sasher’를 찾아갔는데, 유명세만큼 궂은 날씨에도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허나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비엔나커피는 그 위에 올려진 차가운 생크림 때문인지, 아니면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느라 차가워진 몸 때문인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마시기엔 이 도시의 첫인상만큼 싸늘했고, 결국 그날 Y는 배앓이에 이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다음날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쇤부른 궁전'을 방문했다. 오전 한때 아주 잠깐 햇살이 비추기도 했지만 낮부터 다시 낮은 구름이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안타깝게도 SNS에서 본 햇살 가득 청명한 정원과 그림 같은 궁전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 밝고 유쾌한 남미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다. 칠레에서 왔다는 그녀는 옆에서 조용히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던 우리에게 다가와 자기와 같이 찍자며 자신의 카메라를 나에게 주었고, 남미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친화력으로 쉴 새 없이 말을 걸며 정신을 쏙 빼놓더니 은근슬쩍 Y를 들러리 세워 완전히 자기중심의 포즈들로 위치를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Y가 누구인가. 그래, 멀리 칠레에서 왔으니 잘 몰랐을 수도 있겠지. 이 구역 미친년은 따로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Y는 중반부터 치고 나오더니 ‘쇤부른 궁전'을 배경 삼아 그녀의 카메라 앞에서, 급기야 ‘쇤부른 궁전'을 보기 위해 모인 여행객들의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화려한 포즈와 근본 없는 몸놀림, 그리고 글로벌 핵인싸스러운 표정과 제스처, 다채로운 손짓 등으로 그녀의 초반 러시를 제압했고, 결국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로부터 엄지 척과 박수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는 ‘쇤부른 궁전'을 즐겁게 빠져나왔다. 가끔 난 Y의 이런 미친 끼 부림이 부럽기만 하다. 참고로 내 손에 들려 있던 그녀의 카메라는 그녀가 아닌 Y에게 모든 포커스가 잡혀 있었다. ㅋㅋㅋ
어느덧 낮게 깔린 구름은 비가 되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긴 했지만 우리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온 ‘대관람차’를 타기 위해 ‘Prater Park’로 발길을 옮겼다. 비 오는 야외 놀이 공원이라 당연히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놀이기구들은 초록색 방수포로 덮여 있었다.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나야 할 놀이 공원 안은 패키지여행 상품에 어쩔 수 없이 끌려 온 고령의 단체 관광객들과 우리들로 쎄한 정적만이 넘쳐났다. 그러나 다행히 ‘대관람차' 만큼은 히트상품답게 홀로 운행을 하고 있었다. 가기 전 영화 속 제시와 셀린의 로맨틱한 키스신이 담긴, 석양을 등진 고즈넉한 ‘관람차’를 기대했건만, 마주한 현실은 단체 관광객들로 마치 시장 통 같은 놀이기구 일 뿐이었다. ‘대관람차'는 텅 빈 관람차 몇 대와 사람들로 가득 찬 관람차 1대만이 삐걱삐걱 대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침 저 멀리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8비트짜리 동요 메들리는 너무나도 눈치도 없고 난데없어 그만 삐그덕 삐그덕 힘겹게 돌아가는 관람차 안을 더욱 묘하게 공포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인 건가. 실망스러운 마음에 을씨년스러운 동요를 들으며 관람차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최대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Y는 이런 상황이 웃겨 죽겠는지, 아니면 아까 ‘쇤부른 궁전'에서의 신명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건지 혼자서 좋다고 셀카를 찍는다. 종종 난 Y의 이런 천진난만함이 부럽기만 하다.
드디어 4월 26일이다. 나의 생일날이자 ‘비엔나’를 떠나는 날이 밝았다. 머무는 내내 춥고 쌀쌀하기만 하던 날씨가 웬일로 떠나려고 하니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다. 지난 며칠 동안 날씨나 일정들이 너무도 고약해서 나에게 ‘비엔나’는 살리에리의 마지막 인생처럼 차갑고 쓸쓸한 도시로 기억될 것 같았는데, 오늘 ‘비엔나’에 도착할 누군가를 생각해 보면 그에게 이 도시는 지금의 날씨만큼 맑고 청명한 곳으로 기억될 거라 생각하니 누군지 몰라도 그 행운이 부럽기만 하다. 어쨌든 생일날 아침 우리를 태운 ‘잘츠부르크'행 기차는 2시간 반을 달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에 도착했다. 아뿔싸. 역시 생일날이라 그랬던 걸까. 나의 생일 저주는 이곳에서도 멈출 수 없던 것일까. 3일 내내 ‘비엔나' 하늘을 가득 메우던 비구름 떼가 ‘잘츠부르크'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거센 추위와 비바람으로 나와 Y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내가 ‘생일 저주’라고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솔직히 난 생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항상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축하 한번 제대로 받아보질 못했고, 희한하게 꼭 생일날은 비가 왔거나, 생일날만 되면 주변에서 꼭 싸움이 일어나 괜한 눈치 보는 일도 많았다. 그러더니 몇 년 전부터는 4월 말만 되면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와 황사로 한창 좋아야 할 봄날이 몇 날 며칠 우중충했고, 사람들의 기분마저 우중충하게 만들고 있다. 나에겐 4월은 그저 잔인한 달이며, 생일마다 온갖 악재가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생일이 싫어진 것이다. 급기야는 오늘! Y의 아홉수 덕분에 덩달아 외국으로 떠나온 2016년의 4월 26일도 ‘비엔나’에서 내리던 비가 하필 오늘 ‘잘츠부르크’로 와서는 아예 ‘눈’으로 변할 줄이야. 생일 한번 매섭게 축하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