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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베니스’와 전혀 기대치 않았던 ‘피렌체’에서의 시간들이 너무도 좋았던 만큼 다음 여행지인 ‘로마’는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Y는 예전에 한번 갔다 온 경험이 있어 나보다는 덜 했겠지만 난 이상하게 긴장되고, 설레고, 기대가 되어 잠을 잘 자지 못 했다. 그 유명한 ‘로마’를 내가 간다고? 콜로세움이며, 바티칸이며, 스페인 광장이며 책에서만 보던, 영화에서나 보던 그 도시를 내가 간다고? 괴테는 ‘로마’를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로마’를 세계의 수도라 말하며 그의 <이탈리아 여행기>에 이렇게 적지 않았던가.
“내일 밤은 로마다. 나는 그것이 지금도 또 거의 믿어지지 않는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면 나는 그 뒤 도대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괴테는 로마에 도착한 날을 ‘제2의 탄생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도시에 드디어 나도 도착을 했다. ‘로마’, ‘로마’, ‘로마’라니… 하지만 도착 첫날,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떠나던 그 야간 기차 안에서 왜 이번 여행이 나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지 얼핏 알 것 같았다. 세상 그렇게 지저분하고 정신없는 기차역은 처음이었다. 온갖 호객 행위들이 난무하고, 거리는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 정도로 더러웠다. 비가 올 듯 말 듯 한 날씨 탓에 습한 공기와 노숙자들의 오줌 찌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는 왜 그리도 많고 사람은 왜 그리고 빨리 다니는지. 빨리 숙소를 찾아 쉬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숙소를 예약할 때 ‘로마’가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도시인 만큼 비용은 비쌀 데로 비싸고, 오래된 도시인만큼 시설은 낙후되어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한인 민박집을 예약했던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겨우 겨우 찾아간 숙소는 어딘가 건물 외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벨을 누르자 어수룩한 한국말이 들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엘리베이터는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오래된 나무 문 하나가 보이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근데 좀 이상하다. 분명 한국말을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 우리가 여행을 오래 해서 한국말이 어색해진 건가. 우리의 캐리어를 들고 들어가시던 아주머니는 내 것과 Y의 것을 각각 다른 방에 놓아주신다. 아니라고, 우린 같은 방을 예약했다고 하니 또 뭐라 뭐라 말씀하신다. 이럴수록 침착해지는 Y가 다시 나섰다. 아주머니와 한참을 얘기하고 돌아온 Y는 이곳이 한인 민박은 맞긴 한데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고 (What?), 오늘 밤은 방이 없어 하루만 따로 자고 내일 같은 방을 주겠다는 것이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지만 이럴 땐 그저 을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신세. 이렇게 우린 하룻밤 이별을 해야 했다.
간만에 만난 대도시의 복잡함에 좀 지친 상태라 숙소에서 잠깐 쉬고 싶었지만 민박집은 Airbnb가 아니었다. 청소 시간이라고 나가란다. 해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베니스’의 수로가, ‘피렌체’의 돌길이 그리웠다.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에 몸이 빨갛게 익어갈 때쯤 도시 중심부가 나왔다. 무려 ‘로마’인데,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로마’인데 모든 것이 환상적이어야 할 로마의 풍경들이 오늘따라 도통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뭔 말로 죄다 ‘로마’로 통했나 보다. 점점 다리도 아프고 땀도 너무 많이 흘려 슬슬 지쳐갈 때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어 ‘판테온’ 앞 유명한 카페에 들어갔다. 세상 처음 듣는 자릿세라는 걸 받는다. 의자에 앉아서 마시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그런 건 또 우리가 못 내지. Y와 나는 커피 한 잔씩을 사들고 카페 건물 밖 구석 그늘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그조차도 야박하게 내쫓겼다.
‘로마'에서의 첫 커피는 그렇게 인색했다. 그나마 한 모금 카페인의 힘을 빌려 ‘트레비 분수’를 보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뜨거운 날씨다. 드디어 도착한 ‘트레비 분수’. 와~ 근데 이곳은 아까 ‘판테온’ 앞 광장보다 스치는 사람들이 말도 못 하게 더 많았다. 수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의 치임과 한껏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급격히 지친 체력에 피로함을 느낀 나는 Y에게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Y는 여기까지 왔으니 할 건 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요리조리 물리쳐가며 분수대 바로 코 앞자리까지 날 끌고 들어갔다. Y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로마’를 준비하던 때 내가 했던 말 한마디 때문이다.
“난 로마에 가면 꼭 분수대에 동전 던지는 그거, 그거 할거야. 너가 꼭 찍어줘야 해~”
서울에서의 난 그게 하고 싶었지만 로마에서의 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그때는 그러고 싶었고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수억만 리 ‘로마’까지 와서 그냥 간다면 뭐 나중에 후회는 하겠지만 지금의 난 모든 게 덥고 피로했다. 언제나 계획은 미리미리 오지게 철저히 짜면서 계획은 계획이었을 뿐 매번 결정적 그 순간이 되면 “오직 그 순간의 기분에” 충실해지는 충동적인 나의 성향을 잘 아는 Y가 그렇게 나를 이끌고 분수대 앞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난 수천수만의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동전 뒤로 던지기 동영상을 완성했다! 하.하.하. 역시 싫은 척 끌려가도 할 땐 제대로 잘한다.
낮 동안 내내 숙소에 가고 싶어 했던 그날 밤은 안타깝게도 잠을 거의 자지 못 했다. 늦게 입소한 탓에 좋은 침대는 이미 누군가의 몫이었고, 하필 내 자리는 최악의 화장실 바로 앞이었다. 게다가 전날 먼저 친해진 방 사람들끼리 마지막 밤을 나누는 듯 밤새 떠들어 대는 바람에 나는 잠을 거의 한숨도 자지 못 했다. 여행 중에 이토록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Y와 합방(?)을 하고 간만에 한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나마 기분이 좀 좋아졌다. 사실 말이 한식이지, 중국인 아주머니의 손 맛이 더해진 대륙의 맛이 물씬 풍기는 한식이었다. 또다시 청소 시간에 맞춰 반 강제로 나머지 도시 구경을 하러 집을 나섰다. 내가 좀 예민한 성격이긴 하나 끌려가는 것과 적응하는 것, 그리고 순응도 잘하는 편이라 어제의 싫었던 ‘로마’가 하루 좀 다녀봤다고 금세 편해지는 듯했다. ‘로마’는 ‘베니스’나 ‘피렌체’에 비해 도로가 넓고 도시 계획도 잘 되어 있어서 나의 전매특허 지도 없이 길 찾기의 신공을 발휘하며 Y를 데리고 마치 이곳 사람마냥 여기저기 잘도 다녔다. 이럴 땐 나도 Y에게 쓸모 있는 메이트가 되니 기쁘다. 워낙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보니 그저 도시 곳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여행이 되고 관광이 되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바티칸’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바티칸’은 ‘로마’ 내에서도 별도의 도시로 지정될 만큼 그 크기와 위엄이 대단했다. 물론 우린 광장만 구경하긴 했지만 그 성스러운 기운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콜로세움’과 ‘개선문’, ‘포로 로마노’를 구경했는데, 괴테가 ‘로마’를 두고 ‘아주 큰 학교에 온 것 같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로마’는 도시 자체가 신화이고 역사인 듯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그곳 그대로를 현재 내가 똑같이 밟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게 짜릿했다. 짜릿한 마음을 안고 스페인 광장에 들러서 ‘로마의 휴일’ 속 오드리 헵번이 걸었던 거리를 걸었다. 특히, 스페인 광장에 가면 가 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었는데, Cafe Greco.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속에 나온 카페가 지금까지도 있는 곳이다.
1808년 1월 20일 오전 중 스페인 광장에서 가까운 카페 그레코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셨다. 여기에는 하루 세 번, 즉 오전 중, 점심시간 뒤 그리고 저녁에 독일의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커피 맛이 좋고 다른 카페에서는 유리컵이지만 여기서는 단정하게 도자기 컵이 나온다. 홀은 좁고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어 로마 사람들이 특별히 잘 오지 않는다.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
Cafe Greco는 19, 20세기 쇼펜하우어, 바그너, 카사노바, 안데르센,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니체, 토스카니니를 비롯해 벤저민 프랭클린 등 유럽 문학과 예술을 빛낸 엄청난 인물들로 사시사철 붐볐다고 하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우리도 이번엔 자릿세를 내고 앉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커피를 마셨다. 단정한 도자기 컵도 여전했다. 카페 안 구석구석 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해서 일까 커피 맛도 지금껏 이탈리아에서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었다. 말랑해진 기분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 전 ‘포로 로마노’ 근처 잠시 들른 ‘진실의 입’ 앞에서 나는 그동안 Y에게도 숨긴 진실을 말해 보았다.
“난 여행이 싫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진실의 입’이 내 손을 꽉 물어 버린다.
20대에 이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해 전 유럽에 걸쳐 대단한 문학적 명성을 떨치고 있던 괴테는 26세엔 바이마르 공국의 작센 대공 초청으로 추밀고문관직에 올라 10년 동안 공직을 맡아 일하다 자신의 37세 생일을 축하하는 친지들 곁을 조용히 떠나 이탈리아로 긴 여행길을 떠났다. 문학적 명성으로나 정치적 지위까지 모두 갖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가 박수와 환호 속에 생의 절정의 순간 모든 것을 뿌리치고 마치 도망치듯이 새벽에 길을 떠난 것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보장된 안전한 자신의 자리를 미련 없이 버리고 고생스러운 여행길을 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도 괴테처럼 생의 절정의 순간이 왔을 때 돈과 명예 모든 걸 내려놓고, 안정적인 현실 대신 고생스러운 여행을 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그동안의 나의 여행들을 떠올려 본다. 내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무료함과 지침에서 출발해 왔다. 모든 걸 소진했을 때,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그제서야 떠날 용기가 생겼다. 아니, 그건 사실 용기라기보다는 포기였을지 모른다. 게다가 이번 여행은 Y의 아홉수를 위해, 샤머니즘의 이끌림에 의해 끌려오듯 떠나온 여행이다 보니 이번엔 용기도, 포기도 아닌 그냥… 말 그대로 그냥이었다. 아무 의미가 없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Y의 부적 역할쯤 되려나.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일상을 피해 도망쳐 온 여행에서조차 고생스러운 현실 앞에 선 나는 또다시 그마저 그만하려고 했다. 과연 나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괴테는 그의 여행을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필연성을 갖는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인생이란 매 순간순간이 선택이고,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 믿으며 살아온 내게, 태어나 죽는다는 것 외엔 필연은 없다고 믿고 있는 내게 괴테의 저 말은 나의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 해답이 되어 주었다. 여행이 목적이었던 괴테는 일상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여행이 수단이었던 나는 결국 그마저도 포기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인생에서 필연이나 운명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필연성”을 믿는 것, 자신의 선택을 그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는 마음을 가져 보는 것. 그래서 만약 내게 한번 더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그 여행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목적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