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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베니스'를 떠나 르네상스 문화가 시작된 예술과 학문의 도시 ‘피렌체'로 향했다. 워낙 ‘베니스'에 대한 첫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던 터라 ‘피렌체'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로마'로 가기 위한 중간 행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두어 시간을 달려 도착한 ‘피렌체'는 ‘베니스'와는 또 달랐다. 평생 도시에서 살면서 익숙한 것들 - 버스와 자동차, 사거리와 신호등 등 - 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참으로 간사하지, 고작 도착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부터 ‘베니스'가 그리워진다. 무겁게 깔린 구름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퇴근길 사람들로 꽉 찬 무거운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향했다. ‘피렌체'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흔하고 낯선 도시의 모습이었다.
사실 ‘숙소 찾기'란 여행자들에게 꽤나 어려운 미션 중 하나다. 주소 체계나 형식들이 나라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 골목길도 꿰뚫어 보시는 구글 신의 등장으로 21세기 여행자들에게 ‘숙소 찾기'란 별게 아닌 게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이날도 구글 신께서 내려주신 GPS의 가르침에 따라 숙소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주소지는 문이 아닌 벽이었다. 호그와트행 기차를 타기 위해 9와 4분의 3 플랫폼에 뛰어들던 ‘해리포터' 속 판타지가 내 앞에 펼쳐진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주소에 나온 도로명과 번지수를 확인해 봤지만 그곳이 맞았다. Airbnb한테 농락이라도 당한 걸까. 위기 상황에 취약한 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는데 어느새 Y는 길 건너 이탈리아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하러 뛰어갔다. 멀리서 보아도 Y의 바디랭귀지가 점점 화려해지는 걸 보니 대화가 그리 긍정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아 보인다. 분명 주소는 여기가 확실한데 이 벽 안 쪽에 숙소가 있다는 걸까. 나 또한 뭐라도 해야 할거 같은 마음에 혹시 이게 문이 아닐까 싶어 벽을 슬쩍 밀어 보았다. 흠.. 혼자 그렇게 태연한 척 머쓱해하고 있던 차에 Y가 다시 돌아왔다. Y의 말로는 이탈리아는 같은 주소라도 가운데 시작점을 중심으로 왼쪽 도로는 상업용 건물들이, 오른쪽 도로는 주거용 건물들이 따로 모여있다고 한다. 즉, 우리는 오른쪽 도로 쪽에 있는 같은 주소로 찾아갔어야 한단다.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영어를 못해 그마저도 Y의 추측이었다. 논리적으로는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딱히 우리에게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Y를 믿고 반대편 도로로 가 보기로 했다. 길 찾기, 숙소 찾기 부심이 있는 내가 길치인 Y의 말을 들어야 하다니 괜한 자존심에 그게 말이 되냐며 투덜투덜 뒤따라 갔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정말로 그곳에 똑같은 주소가 있었다. 우리 눈앞에도 문이 보였다. 마침내 벽이 아닌 문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별거 없을 것 같았던 ‘피렌체'는 사실 별게 다 있는 도시였다. 유럽 르네상스 문화의 시작과 중흥을 누렸던 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가는 곳곳이 모두 명소고, 보물들이었다. 숙소 또한 살면서 꼭 한번 꾸며보고 싶은 인테리어의 예술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집이었고, 집주인마저 음악 선생님이라고 하니 마치 이곳은 예술로만 존재하는 도시 같았다. 하물며 그 극성맞던 날씨도 ‘피렌체'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 조차 찬란한 르네상스였다. 도착 첫날 우린 로마 시대의 마지막 다리이자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베키오' 다리를 건너 시내 구경을 했다. 남들은 일부러라도 찾아와 본다는데 우리는 숙소가 ‘베키오' 다리 근처에 있어서 동네 마실 나가 듯 건너 다니는 행운도 따랐다.
다음 날, 유명한 ‘두오모 성당’에 올라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피렌체'의 하늘과 바람을 느껴 보고 싶었지만 정말 말도 못 하게 끝도 없이 이어진 입장 줄 때문에 아쉽게 포기를 하고, 그나마 줄이 좀 덜한 두오모 옆 자매품 ‘조토의 종탑’에 올랐다. 오히려 ‘두오모 성당’을 제대로 보려면 ‘조토의 종탑’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에 정신 승리를 하며, 열심히 종탑 끝까지 올라 ‘두오모 성당’을 제대로 보고 내려왔다. 또한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골목길에서 단테가 살던 집과 마주하기도 하고, 발 닿는 곳 어디를 가든지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보니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과연 ‘피렌체'는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답게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들이 다 클래식이고 낭만이었다.
사실 우리가 ‘피렌체’에 온 이유는 근처 ‘아씨시’를 가기 위함이었다. 난 ‘아씨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천주교 신자인 Y의 강력한 권유로 이번 여행 루트에 포함이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이자 어쩌고저쩌고 등의 자세한 설명은 Y의 이야기에서 나올 테니 스킵하고, 어쨌든 내가 본 ‘아씨시’는 종교와 관련된 마을답게 돌 하나하나, 풀 하나하나가 성스럽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차분하고 느릿느릿했다. 특정 종교가 없는 나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따라 천주교 신자처럼 행동을 했다. 아멘 …()... ‘아씨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올랐다. 한없이 크고 광활한 자연 앞에서, 그 하늘 아래서 난 그저 사라져도 모를 사람 같이 작고 나약하게 느껴졌다. 이 겸손함이 나의 마음 한 켠을 차분하게 만들고, 그 광막함이 나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듯했다. 역시 인간이란 자연과 신 앞에서는 영원히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력감이 좋았다. 묘하게도 그 순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에 안정감을 느꼈다. 축복된 인생에 내가 주인공인 마냥 살아가다가도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면 어딘가 기대어 쉬고 싶은 곳을 찾는 것, 그것이 종교의 힘이고 의미는 아닐까. 그렇게 찾은 신 앞에서 다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문득 나도 종교를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돌아가서도 이런 마음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성당 안 수베니어 샵에 들러 작은 나무 십자가 목걸이 하나를 샀다. 여행에 돌아와서도 가끔 모든 게 의미를 잃은 듯이 혼자라 느껴질 때면 그때의 나무 십자가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럴 때면 그날의 ‘아씨시’ 언덕에 올라서 있던 내 모습이, 그때 느낀 내 마음이 오롯이 떠오르곤 한다.
‘피렌체’의 마지막 날에는 ‘미켈란젤로 공원’에 올라 일몰을 보기로 했다. 해가 지려면 한참이 남았지만 이미 핫 스팟에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우리도 좋은 자리를 차지해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피렌체’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끝없이 높아 보이기만 하던 ‘두오모 성당’도 한낱 작은 레고처럼 보였다. 저 멀리 하늘과 도시의 경계선에서 조금씩 가라앉아 가는 오늘의 태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진다. 분명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일몰인데 오늘만큼은 어딘지 나만의 태양처럼 나를 위해 지는 듯했다. 반쯤 보이는 태양이 ‘피렌체’에 잘 왔다는 듯, 이제 잘 가라는 듯 서서히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