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39, 1부 1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다흔넷 Oct 20. 2022

여행에 관한 9가지 진실 (3)

Y said

>> 여행에 관한 9가지 진실(2) 에 이어


   우리 집 장식장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비롯한 대리석 조각품들이 놓여 있다. 어렸을 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여름철에 더울 때면 가끔 그 조각상을 문지르곤 했는데, 부드럽고 시원한 감촉이 좋았기 때문이다. 문득 쓰다 보니 오해가 생길 듯싶어 언급하지만, 남자의 나체에 관한 관심으로 무언가를 느끼며 했던 행위는 아니다. 써놓고 보니 더욱 이상해진 것 같다. 어쨌든... 어머니는 이사 때마다 그 조각상들을 행여 부서질세라 신문지와 뽁뽁이로 꽁꽁 싸매서 박스에 포장하곤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조각상들은 어머니가 독일에서 간호사를 하시던 시절에 간간이 유럽 여행을 하면서 모았던 어머니의 추억들이었다. 수십 번의 이사를 함께 다니느라 여기저기 파손된 부분도 있지만, 정도 많이 들고 매우 애착이 간다. 어머니가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에 집에 갑자기 불이 나면 무얼 가지고 나가겠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들을 비롯한 중요한 물품을 챙기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그 조각상들을 가지고 나가겠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비드상은 어릴 때부터 자주 보고 만져서인지(?) 내겐 매우 익숙하다. 피렌체에 있는 다비드상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 시절 모습을 5.17m의 대리석으로 표현했으며, 미켈란젤로가 1501년부터 3년에 걸쳐 26세 되던 해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시뇨라 광장에서 다비드상의 실제 사이즈를 직접 보고 생각보다 커서 깜짝 놀랐다. 어릴 때 알던 그 오빠가 훌쩍 큰 것 같아서 괜히 부끄러워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랬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완성했던 그 당시에도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많은 찬사와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나의 놀람과 부끄러움이 딱히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다.


청동 다비드상은 또 어떤 느낌일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래서 피렌체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사실 엊그제 그 근처를 가긴 했는데 바로 아래 위치한 장미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못 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산처럼 계단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정상에 다다랐을 때쯤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청동색 다비드 오빠가 홀딱 벗고 우리를 맞아주셨다. 피렌체에 다비드상은 3개가 있는데 진짜 다비드상은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 벌써 엄청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기다리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계단 아래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는 기타를 든 뮤지션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고, 계단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은 흥겨운 노래에 고개를 까딱이며 같이 온 친구나 애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 바퀴 돌면서 자리를 물색했고 늦게 왔지만, 운 좋게도 명당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애증의 두오모와 아르노 강 위로 무지개처럼 걸쳐 있는 베키오 다리가 보인다.


생각해 보면 해가 뜨고 지는 일이야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 대단할 게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일출과 일몰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며 굳이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해서라도 색다른 일상으로 다시 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 잠시라도 저물어가는 하루를 직시하며 해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삶의 어두운 그림자도 사라지는 모습에 위안을 받는 것은 아닐까. 9와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잠시 감상에 젖어본다. 9와 여러 여행지에서 다양한 일몰들을 보곤 했지만, 피렌체의 일몰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9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서히 피렌체를 품었던 태양이 아스라이 작아지며 몸을 낮추기 시작한다. 동시에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이 발갛게 물들었다. 이윽고 사그라든 태양의 열정은 밤의 또렷한 불빛들로 대체되었다. 피렌체의 야경은 또 다른 낭만을 안겨주었다. 이따금씩 다비드상을 돌아보았다. 밤이 되니 왠지 더 야릇해지는 기분. 오빠는 여전히 벗고 계셨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는 길에 피렌체에 더 머물렀다면 하루도 빼먹지 않고 꼭 갔을 우리의 사랑 구스타 피자집에서 카프레제 피자 한판이랑 맥주 한 병을 사서 저녁으로 먹었다. 아담한 동네 피자집이지만 늘 생기가 넘치고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말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핫플레이스다. 구스타 피자는 사랑이다. 칠스타나 팔스타 혹은 씹스타였으면 정말 볼품없었을 것이다. 특히 부팔로 치즈 피자와 마르게리따 피자는 정말 최고다.

여행에 관한 9가지 진실 일곱,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리고 절대 석양은 놓치지 말 것.

     


   

   트레비 분수에서 그 소원을 빌지 말 걸 그랬다. 트레비 분수를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서 두 가지 소원(영원한 사랑 혹은 로마 재방문) 중에 하나를 빌면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18년 전 당시에 하고 있던 사랑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반신반의하며 로마를 다시 오고 싶다고 빌면서 동전을 던져 넣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완전무결할 것만 같았던 그 사랑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로마로 향하고 있다. 원래 나는 로마를 여행 루트에 넣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인 데다가, 내겐 큰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트레비 분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었다. 그러나 9는 내게 로마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원체 크게 욕구가 없는 녀석인데 이 정도로 무언가를 원한다고 말하면 정말로 대단히 가보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에, 그러자고 했다. 난 사실 이 결정을 한 순간부터 트레비 분수에 진 기분이었다.


이딸로 9909호를 타고 떼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역 안은 엄청나게 붐볐다. 로마의 숙소는 한인민박으로 정했다. 로마 시내 중심부에서 저렴한 숙소를 구하기 어렵기도 했고, 이쯤 되면 한국 음식도 그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향하면서 처음 든 생각은 ‘다시 피렌체로 돌아가고 싶다.’였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숙소 근처를 돌아다녀 본다. 사람들이 공화국 광장에서 한참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 준비를 하며 떠들썩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릴까 싶어 빨리 자리를 뜨기로 했다. 또다시 ‘왜 내가 로마를 3박이나 했을까’라며 후회했다.


드디어 트레비 분수에 왔다.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사이를 뚫고 들어가 9를 위해 소원동전 던지는 영상도 찍어 주었다. 9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정말 해맑게 너무너무 좋아한다. 빨리 가자며 나를 잡아끌던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좋아한다. 판테온으로 옮겼다. 우와 여기도 인산인해. 난리법석 북새통이다. 급 피곤 해졌다. 이 소란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한산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헤맸다. 새똥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장소를 발견했다. 그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마트에 들어가 맥주 두 병을 사서 가지고 있던 칩을 안주삼아 계단에 앉아 홀짝였다. 초라했지만 로마 시내가 반 정도 내려다 보이는 꽤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트레비 분수와 판테온보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즐기는 로마에서의 여유가 좋았다. 로마에 와서 처음으로 좋았던 순간이다. 그 와중에 9는 실수로 칩을 반 이상 쏟았고, 자꾸만 모여드는 비둘기들에게 9는 버럭 화를 냈다. 비둘기들은 그래도 개의치 않고 9의 주변으로 용케 몰려들어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비둘기들에 둘러싸인 채 분노하는 9를 보며 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하지만 정말 유쾌했다. 역시 나만 아니면 돼. 하하하.


드디어 저녁시간이다. 이 한인민박은 주로 조선족 이모가 관리를 했고 덕분에 한국 음식을 잔뜩 기대했던 우리는 한국음식에 중국 향신료가 가득한 국적불명의 요상한 퓨전음식으로 며칠을 연명해야 했다. 그리고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거의 매일 저녁이 분명 메뉴는 달랐지만, 같은 향신료 냄새가 나서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숙소 전체에 스며든 괴상한 냄새의 정체는 바로 그 향신료였다. 3일 내내 그 향신료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도시 전체가 유적지로 가득 찬 로마의 위엄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슬렁슬렁 걸으며 콜로세움, 개선문, 포로 로마노에서 묻어나는 역사의 힘을 느껴본다. 진실의 입에서는 관광객이 철철 넘쳐서 그냥 철창에 손을 넣고 사진만 찍었다. 18년 전에는 손도 집어넣어 보며 재밌어했던 거 같은데. 똑같은 장소에 여전히 똑같이 있는 걸 보니 괜스레 뭉클해졌다. 로마 4대 성당 중 하나인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로마의 성당들 중 가장 거대하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을 의미하는 ‘마조레(Maggiore)가 붙었다고 한다. 한때 교황의 임시거처로도 사용되었으며,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마다 교황님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러 오시기도 한단다. 이 성당은 숙소 근처에 있어서 오며 가며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 숙소에서 성당까지 가로지르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적절히 겸비하였으며 양옆에 꽤 존재감 있는 나무들이 줄지어 선 굴곡진 도로는 내가 로마에서 제일 좋아했던 길이다. 이 길에는 9와 내가 도저히 취하지 않고는 향신료의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 밤마다 마셔댄 우리의 구세주 와인을 팔던 주류판매점도 있었다.


벌써 로마에서의 두 밤을 지내고 이제 9는 모든 관광지에서의 '줄 서기'에 질리기 시작했고, 동경해 마지않던 온갖 유적지들에 슬슬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9에겐 더 이상 장시간의 고통스러운 줄 서기를 감내할 만큼의 체력과 설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로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야 했던 엄숙한 바티칸은 안타깝게도 9에겐 그저 그런 유명한 장소로 전락해 버렸고,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에게 드릴 묵주 선물을 구입해야 할 큰 상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바티칸 광장을 한번 휘익 돌고 같이 광장 중앙에서 기념사진이나 한 장 찍었다. 그리고 집에 보낼 엽서를 한 장 쓰고 노란색 우체통에 넣은 다음 인증샷도 남겼다.


슬슬 바티칸 놀이도 무료해질 때쯤 산탄젤로 성으로 이동했다. 입구에 있는 산탄젤로 다리가 장관이다. ‘산탄젤로’라는 이름은 성천사(聖天使)라는 뜻이다. 590년에 그레고리오 대교황흑사병이 물러나기를 기원하며 참회의 기도를 올렸는데, 대천사 미카엘이 이 성의 상공에서 칼을 칼집에 넣는 환시를 보았고 이는 흑사병의 종말을 뜻하는 광경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 이후에 이 성에 산탄젤로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이를 기리기 위해 이 성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의 대리석상을 세웠다. 미카엘 천사의 손에는 창궐하던 흑사병을 퇴치했다는 의미로 칼이, 그 옆에는 사형을 처할 때 울리곤 하던 ‘자비의 종’이 매달려 있다.  미카엘 대천사 말고도 그 옆에 천사 또 그 옆에 천사들이 가득했다. 바글바글한 천사들이 양옆에서 우리를 수호해주고 있었고 그중 한 천사와 하이파이브도 하며 산책을 즐겼다.


9는 여기가 바티칸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빨리 로마를 떠나고 싶다.”라고 했다. 질렸다고 했다. 그래도 유명한 레스토랑에서의 홈메이드 라자냐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커피를 주문했던 판테온 근처 커피숍의 시그니처 커피를 맛보았을 때, 잠시 9는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포폴라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솔솔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잠시 쉴 때도 9는 꽤 평온해 보이긴 했다. 다만 스페인 광장에서 햇반 언니처럼 젤라토를 먹어보고 싶다던 9의 최대 로망은 광장의 중앙 계단이 다 막혀서 실현될 수 없었고, 결국 9는 또다시 “빨리 로마를 떠나고 싶다.’”는 말로 실망과 허탈감이 뒤섞인 감정을 대신했다. 나 역시  매우 안타까웠다.

여행에 관한 9가지 진실 여덟, 모든 것이 당신의 염원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지어다.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떠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돌아와야 끝이 난다. 고로 여행은 떠나면서 시작되고 돌아오면서 끝이 나는, 실망, 좌절, 슬픔, 분노, 질투, 기쁨, 희열, 환희 등이 혼재된, 시간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아 다져진 기록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나만의 발자취이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든, 나를 버리기 위해 떠나든, 다른 어떤 이유로 떠나든 그 떠남은 결국 진정한 나에게로의 돌아옴이다. 아홉수를 떨치기 위해 떠남은 어쩌면 다시 운명 같은 아홉수와의 진정한 공존을 깨우치고 다시 돌아옴을 택한 나의 내면의 간곡한 요청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무수한 질문들로 가득 찬 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먼 훗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이 여정에서 순간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기를 기원한다. 모든 것은 매 순간 지나가고 다만 끝을 향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고 있으며, 그 끝은 결국 모든 것이 소멸되고 다시 태어나는 처음이다.

여행에 관한 9가지 진실 마지막, 필경 여행은 진정한 회귀를 위한 위대한 발걸음이다.


이전 12화 여행에 관한 9가지 진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