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said
8시 30분. 오늘도 지각이다. 조금 빨리 준비 하고 나가면 최소 지각은 면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 않다. 늦은 줄 뻔히 알면서도 한참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다. 아, 내 방 천장이 저렇게 생겼구나.
꾸역꾸역 이불을 걷고 꾸깃꾸깃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또 다시 침대 끄트머리에 멍하니 앉아 버렸다. 요 며칠 아침이 그랬다.
월급이 밀린지도 3개월. 체불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사 시스템은 느슨해졌고, 언제부턴가 특별히 지각 체크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월급도 못 주는 회사가 무슨 염치로 직원들의 근태를 관리하겠냐만은 다행인지 최근 들어 나보다 항상 9분씩 늦게 와 주시는 뒷자리 부장님 덕분에 난 “이 때”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비록 월급은 3개월씩이나 못 받고 있었지만 그만큼 회사는 내게 특별히 바라는 것도, 불 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도 없었다. 지각을 할까 봐 마음 졸이며 뛸 필요도, 눈치를 봐가며 야근 할 필요도 없었다. 무임금? OK, 그럼 난 무노동! 여유만 있다면 이런 회사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런 상태가 좋았다. 마침 통장 잔고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기도 했었지만 그냥 그때의 난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그저 그런 상태에 만족했던 것 같다.
그 무렵 Y와 나의 관계도 그랬다. 어느덧 20년 차 친구 사이인 우리는 노래 가사 속 오래된 연인들처럼 주말이 되면 의무감으로 만나 세상 가장 덧없는 연예인 걱정이나 하면서 전날 본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이야기들로 무쓸모 한 시간들을 때우곤 했다. 우리가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쓸 데 없는지 아주 잘 알면서도 세상 진지하게 떠들어 댔다. 대화 도중 종종 마주한 Y의 눈동자는 공허했고, 그런 나를 보고 있는 Y도 어쩌면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그 눈에 비친 나의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때면 언제나 ‘우리 다음 한 주도 꼭 행복하게 보내자’라는 간절하고도 무력한 다짐의 인사말로 헤어지는 우리가 좋았다. 어쩌면 그때의 우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때가 도망이든 돌파구든 그게 뭐가 되었든 뭐라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하지만 난 그렇다 할 아무 명분이 없었다.
9야, 우리 아이슬란드 갈래?
보통은 ‘우리 여행 갈래? 다음 달에 어디 가 볼까?’라고들 말하지 않나. 하지만 Y는 내게 저렇게 말했다. '아이슬란드'란 목적지 외 When, Why, How는 빠져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그 마음만은 명확해 보였다. 그리고 난 그 명확함에 덜컥 겁이 났다. 갑자기 왠 아이슬란드냐, 무슨 일 있는 거냐 묻지도 않았다. 원체 질문이 많은 타입도 아니긴 하지만 그때의 난 질문보다 Y의 마음에 동조해 줄 명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금 무기력해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무중력 상태가 좋았고, 조금 무료한 일상이긴 해도 낯선 여행이 주는 불안정보다는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내겐 밀린 월급을 버텨 줄 생활비는 있었지만 아이슬란드까지 갈 여행 경비는 없었다.
“으음.. 글쎄" (명분이 없잖아)
“며칠 전에 우연히 사진 하나를 봤는데 거기가 아이슬란드더라고"
“아.. 그래?” (좀 더 논리적인 이유 없어?)
“나도 그 사진 속에서처럼 똑같이 찍어보고 싶어"
“그렇구나" (마음 접음)
다행히 Y에게도 아직까진 여행을 가야 할 그럴듯한 이유도, 합리적 논리도, 타당한 배경도 없어 보였다. 설득 안됨. 명분 없음. 그렇게 Y가 내던진 그 말은 우리의 대화에서 이내 조용히 사라졌고, 무미건조한 우리의 일상도 그대로 계속되었다.
9야. 우리 9,999,999원만 가지고, 99일 동안 여행할래?
그로부터 몇 달 후, 서른아홉 살을 눈앞에 둔 12월의 어느 날, Y는 내게 저렇게 말했다. 어딘지 지난번과는 다른 느낌적인 느낌 느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의 냄새가 나는 말이었다. 이번에도 Y의 마음은 명확해 보였고, 이번에도 난 Y에게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 어떤 질문도, 피드백도 필요 없는 “완벽” 그 자체의 문장이라 그랬던 것 같다. 왠지 내게 저 말은 어느 이유보다 그럴듯했고, 어떤 배경보다 확실한 명분이었다. 세상에.. 배낭여행도 아니요, 패키지여행도 아니요, 신혼여행도 아닌 오로지 숫자 9로만 가득 찬 여행이라니!! 이런 신비하고 아름다운 여행 길에 9의 현신인 내가 빠질 수 있나. 하지만 한 가지 내겐 '퇴사'와 '체불'이란 현생의 높은 장애물이 있었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다음 날 나는 회사 대표실로 바로 출근을 했다. 올해까지만 다니고 퇴사를 하겠다, 그러니 그전까지 밀린 월급을 모두 달라.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게 깔끔하게 끝내자. (는 속 마음...)
평소 질문도 없고, 호기심도 없고, 하물며 타인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이나 없는 무욕의 나지만 딱 한번 욕심을 내면 딱 한번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무대뽀의 성격이 이럴 땐 장점이 된다. 당시에 난 회사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던 상태라 퇴사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퇴사는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회사 자금 사정을 알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던 밀린 월급도 어쩐지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다른 사람들은 그 해를 넘기고 끝끝내 법적 공방까지 갔다는데 나에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매우 치명적인 논리로 이름 붙여진 우리의 9 프로젝트는 90 여 일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치밀하게 진행되었고, 2016년 4월 19일 마침내 첫 번째 나라인 체코로 떠나기 위해 Y와 나는 프라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그만한 논리와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만큼의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있어야 움직이는 황소자리, INFJ인 내게 뭘 해도 착착착 수월하게 진행되던 준비 과정들은 나를 꽤 설레게 했다. 아무 생각 없던 일상에 이런 설렘을 준 9 프로젝트에 대한 Y의 진짜 계획이 궁금해졌다. 13시 09분. 드디어 프라하행 비행기의 첫 바퀴가 하늘로 들리던 순간, 처음으로 난 Y에게 질문을 했다.
“Y. 근데 왜 9,999,999원이고, 99일이었어?”
“아~ 그거? 나 내년에 아홉수야”
벌써부터 주섬주섬 기내식 먹을 준비를 취하던 Y가 말했다.
무심코 넘어간 그날 그때의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무엇인지 몰랐던 그 무엇의 냄새는 다름 아닌 샤.머.니.즘의 기운이었다... 아, 궁금해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질문하지 말걸, 그냥 모른척 따라 나설걸... 저 녀석이 뭔가 일을 벌일 때만큼은 정신 바싹 차리고 응했어야 했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말들을 Y는 계속 해댔다.
“아니~ 아홉수에 한국에 있으면 안 된다고. (누가!!) 내가 아홉수가 오지잖아. (어쩔!!) 저번에 내가 페이스북에 연결된 점쟁이가 있어서 한번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올해 나 외국 가야 무탈하고 좋대. 그리고 대박인 게 (뭐가 대박이야!!) 숫자 9가 올해 내 행운의 숫자라는 거야. 그래서 이왕이면 9 너랑 가면 뭔가 더 좋지 않을까 하다가. 넌 또 그냥 가자면 안 가니까 999를 다 갖다 붙였지요~ 너도 그런 거 은근 좋아하잖아 (뭐가 좋아해!!) 야, 근데 우리 막 벌써부터 뭔가 이미 좋지 않냐? 오히히~ 쫑알쫑알”
세상 모든 일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연일 뿐 운명 같은 건 없다고 철썩 같이 믿고 사는 나도, 그래, 이번 여행은 어딘지 약간의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닉네임이 9라는 이유로 Y의 아홉수의 부적이 되어 3개월어치의 월급을 올인해 가며 99일 동안을 떠돌아다녀야 하다니. 단지 9,999,999원, 99일이라는 제법 논리적이고 그럴듯한 명분이 좋아서 나름 안정적인 현생을 버리고 무작정 따라온 여행이 전부 다 그놈의 페이스북 점쟁이의 말 때문이었다니. 게다가 난 내 아홉수에 걸리려면 아직 멀었단 말이다. (힝구) 대체 샤머니즘 그것은 무엇이기에 Y의 눈을 멀게 하고, 9 그것은 또 무엇이기에 논리정연 명분만세 철두철미한 나의 명분을, 나의 판단을, 나의 결정을 부끄럽게 만든단 말인가.
비행기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자 승무원들이 음료와 스낵 거리를 권하기 위해 돌아 다닌다.
“저기요, 익스큐즈미. 와인, 비어. 술! 술 주세요!!!!!! 저 내리게 해주세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