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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un 18. 2023

06.07

그냥 일기


<한국이 싫어서> 저자 장강명 출판 민음사 발매 2015.05.08.







어디서부터 얘길 할까. 우린 어쩌면 다른 극 자석이 아니라 같은 극일지 모르겠다. 서로를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거. 그렇게 우린 인연이 아니었어.



스무 살에 다시 본 네가 마지막일 줄은 서로 몰랐겠지. 아니, 어쩌면 스무 살에 봤다는 거 자체도 놀라웠어.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우린 서울과 대구의 거리만큼이나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알고 지낸다는 건 무리에 가까웠지.



잘 지내, 라고 답하는 게 맞는 걸까. 잘 지내, 라고 물어보는 것도 답은 아니겠지. 스무 살 후에 연락이 먼저 온 건 너였어. 그때 당시 난 만나던 친구가 있었지. 뭔가 연애를 해야지 우리나라는 취급을 해주는 기분이었어. 물론 기분 탓이겠지. 그런데 허울대 멀쩡한 사람이 연애를 안 하면 자꾸 캐묻더라고. 그렇게 난 여차저차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있었어. 그러던 중 네가 연락이 온 거야.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다는 너의 이야기와 대전으로 갔다는 이야기. 출근 시간이 되기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일한다는 것과 야근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그런 신입의 비애였어. 막내로 살아남긴 힘들었어. 너는 1년 정도 했다고 했나. 잘 버티지 못했던 거 같아. 아프기도 했던 거 같고. 확실한 건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어. 순수하게 친구로서의 마음만 있다고 해도 거리를 좁히긴 그랬거든. 그렇게 연락이 끊겼어. 끊을 수밖에 없음을 난 어필하지 못 했고 너는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느낌도 못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몇 년이 흘렀지.



이번엔 내가 연락했어. 새로 바뀐 프로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너는 호주에 간다고 했어. 유치원도 그만뒀다고 했고. 그렇게 넌 호주를 7일에 떠났더라고. 생일에 출국한 너는 무슨 기분일까. 생일 축하한다고 하지 못했어. 이번에도 난 만나는 친구가 있었거든. 옛날에 만났던 친구와는 다른 친구인데. 어쨌든 말이야. 연락을 하면서 느낀 건 친구로서 지내는 것에도 만남은 필요하다는 거였어. 다시 서울과 대구만큼 멀어진 거리를 좁히는 데 대면은 필요한 거였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 너에게 난 할 말이 없었어. 여자친구의 허락을 맡을 자신도 없을뿐더러 얘기를 한다는 것에도 오해가 생길 게 분명했으니까.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을 여행하고 싶다는 너에게, 할 말이 없더라. 그렇게 넌 떠났어.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서로가 서로를 스무 살에 기억이 멈춰있어서 미화된 것도 많을 텐데. 어쩌면 서로 실망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걸 떠나서 좋은 친구로 남기도 우린 너무 멀었어.



사랑은 타이밍이었고 운명은 그래서 운명인가 봐. 그 타이밍에 운명처럼 다가온 거니까.



연락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 여자친구 입장에선 마땅히 기분 좋을 일이 아니니까. 나도 참 문제지.



예전에 만난 친구는 그런 얘길 했었어. 바람의 기준은 자기한테 말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거라고 했어. 근데 그 만남의 기준을 그 친구는 안 말했어. 그래서 생각했지. 어디까지일까. 여사친과 둘이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바람일까. 모르겠단 말이지.



호주에 간다는 그 친구가 생각났던 건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때문이었어. 2018년이었나 국제도서전에 장강명 작가가 왔었지. 팟캐스트 같은 거였는데 거기 구경할 기회가 있었거든. 선배 따라 갔다가 장강명 작가를 봤지만 그땐 사실 누군지 몰랐어. 그래서 관심도 없는 채 강연 비슷한 걸 들었지. 그러다 우리 학교에 강연하러 왔더라고. 그래서 작년에 처음 작품을 읽었지. 올해는 그의 소설을 읽었고. 재밌더라고. 왜 유명해졌는지 알겠더라고.



어쨌든 호주 간다는 그 친구가 자꾸 겹치더라고.


그 친구도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건지 한국엔 못 살겠어서 떠난 건진 모르겠어. 근데 다시 돌아올 거래. 그리고 한국이 추운 건 싫었나 봐. 호주에서도 따뜻한 곳으로 갔대. 그래 남쪽으로 갔는데 따뜻해야지. 따뜻함 속에서 몸을 녹이고 그간 받았던 상처도 씻어야지.



사회생활은 왜 힘든 걸까. 이젠 정말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니까 나도 실감 나더라고. 이젠 내 차례네. 진짜 마지막 학기만 남았네. 일을 한다는 건 자아실현이 아니라 돈을 버는 거에 불과한 걸까. 난 그런 어른이 되기 싫었는데. 그런데 그런 어른이 멋있어 보였던 것도 같고.



잘 살아. 호주도 호주대로의 고충이 있겠지만 네가 선택한 거잖아. 난 한국이 좋진 않지만 여기서 이겨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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