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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Aug 22. 2023

8월의 중순에서

그냥 일기

개인적으로 가장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화요일을 제외하고 촬영이 잡혀 있었고 어떤 날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도 해야했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해 어떤 생각은 들지만 최대한 덜 생각하기로 했다. 주말 같은 경우는 다큐멘터리를 진행하면서 단편영화를 찍었고 일요일의 경우는 오전엔 웹드라마를 찍고 바로 뒤이어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 다음 현장으로 가곤 했다.


일요일엔 가족이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용산역으로 가서 여수를 가는 열차를 탔다. 돌아오는 길인 오늘. 우리나라의 남쪽에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아침에 내렸던 여수의 소나기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거였단 걸 증명하듯 도시 곳곳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촉촉한 땅을 보며 올라가는 기분이란 꼭 시원함과 비슷했다. 열차 안 에어컨에 착각할 만큼 바깥은 시원해 보인다. 아스팔트는 물기가 묻어 있고 지나가는 차들은 조그맣게 보이고


금요일엔 사실 엑스트라를 한 거라 일부러 면도도 하지 않았다. 그냥 쉬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외국 학생(?)들의 작품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다. 파티씬이라는 것도 궁금했고. 뭔가 파티라고 하면 외국에서 기인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잔치, 그런 말을 써서 그런가. 


사실 난 영어를 할 줄 모른다.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스피킹이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건 문제였다. 사실 리스닝도 거의 안 된다. 그래서 ..


한 백인 친구가 나의 어깨를 잡으며 


네가 피자 다 먹었네


라고 말했다. 사실 이건 누가 통역해줘서 알게 된 거고. 백인 친구가 내 어깨를 잡으며 뭐라뭐라고 했을 때 내가 알아듣질 못 해서 가만히 있었다. 아니, 무슨 반응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냥 당황했던 거 같다. 뭐라는 질 몰라서 옆을 봤는데 


흑인 친구가 '농담이에요'라고 한국말로 친절하게 말해줬다. 더 당황스러웠다. 아니, 무슨 말을 했는질 모르겠는데 농담? 근데 또 거기서 혼란은, 백인 친구의 말엔 조크나 뭐 그런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단어를 듣지 못 했다. 내가 들었던 단어는 '올'이었다. 그리고 무슨 '댓' . '힘'도 들었던 거 같다. 만약 내가 영어를 할 줄 알았다면 웃으면서 뭐


예스~ 암 풀~ ㅎㅎㅎ


뭐 이런 식으로 문법을 몰라도 그냥 웃어서 받아줄 텐데. 못 알아들으니, 백인 친구가 한국말로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또 문제는 영어로 괜찮아요, 라고 ㄷ말할 줄 몰랐다. 한국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난 영어도 한국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장난을 치려던 외국인 친구의 장난을 받아주긴 커녕 분위기마저 갑분싸...


미안하다 ㅜㅜㅜㅜㅜ 아 그래서 그후로 뭐 노력하려고 했지만 영어를 못 해서 할 말이 없었다. 쪽팔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인서울 국립대 다니는데 이것도 못 하면 하..


그런데 신기했던 건 외국 친구들이, 그러니까. 미드 같은 걸 보면 자막이 대부분 장난이다. 뭐라고 할까. 미드에서 대화를 보면 장난이 정말 많다. 근데 그게 일상도 그렇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도 물론 장난이 많고 친구끼리 대화할 땐 그렇긴 한데, 초면에도 음..


그 백인 친구를 다시 만날 일이 있을진 모르지만 장난 못 받아줘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다. 근데 받아줬어도 다음 대화를 내가 이어나갈 수 없겠구나.. 아 그냥 영어를 배워야지... 올해 토익 따고 졸업하겠지..?


여수밤바다에서 여수밤바다 노래를 듣고 왔다. 내 노래에 자극 받았던 옆 팀은 똑같이 여수밤바다를 틀고 있었다. 그냥 수변공원이었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모기가 없어서 좋았다. 바다는 잔잔했고 조명은 생각보단 화려하지 않았다. 그냥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이 난 좋다.


일요일 웹드라마 촬영 때 만난 배우는 전에도 봤던 사람이었다. 단편영화 때 봤던 배우고 인스타 교환도 했는데 일요일 날 다시 팔로우가 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러고 디엠. 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여기 판이 좁다는 건 다시 느꼈다. 내가 맡은 배역은 뺨이 맞는 씬이 있었다. 그래서 사실 걱정도 많이 했는데 때리는 것보단 맞는 게 편하다. 아이러니했던 건 토요일 날 난 상대 배우를 때려야 했다. 진짜로 때릴 수도 없고 때리는 척을 하자니 티가 나고 딜레마의 연속이었다. 상대 배우는 괜찮다고 했다. 내가 안 괜찮았다. 


고민한다고 무언가 해결되는 건 없었다. 이미 지나간 터였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난 공릉에 가서 뒤에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별거를 하는 건 아닌데, 다만 피곤할 뿐이다. 열차를 3시간 탄다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그리고 여수를 보면서 이곳을 좋은 사람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터널을 지날 때처럼 신경이 쓰일 때가 많았던 요즘이다. 그것은 빠듯한 일정 때문도 있을 거고 나의 특유의 예민함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 주 목요일 10시에 기자직으로 미팅을 본다. 나의 취업 전선 투입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주말에 찍었던 단편영화의 경우 장장 3개월이 걸린 작업이었다. 물론 회차는 나의 경우 3회차다. 우여곡절 끝에 마친 촬영이고 촬영팀과도 정이 들었다. 배우들과도 스몰토킹을 즐기고 밥도 먹고.


배우들끼린 그런 얘길 많이 하는 거 같다. 미래. 방향. 아무래도 우리가 배우지망생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계속 연기할 거예요? 묻는 배우들에게, 감독에게 여러 생각이 든다. 어떤 의도이고 그런 걸 떠나서 순수하게 텍스트에만 집중한다면


사실 더 슬프긴 하지. 그런 질문에 요즘은 솔직하게 대답하는 편이다. 취업 준비 중이라고 ㅎ. 그때 어떤 배우가 그렇게 말했다. 포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사실 취업한다고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윳돈이 모일 때까진 일할 에정이었으니까. 그러고 여유가 되면 조금씩 다시 시도하지 않을까..


1년 정도 일할 예정인데, 그때 쯤이면 지금까지 찍었던 컨텐츠도 영상도 다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나는 안타까운 게 대사가 들어가고 감정이 들어간 출연영상이 없다. 영상을 안 주는 감독을 만난 이유도 있고 뭐 그렇다. 나름 래퍼런스로 쓸 영상은 많이 찍은 거 같은데 정작 내가 포폴로 쓸 게 없다니.. 


그리고 언제나 내 한계점과 문제점을 마주하는, 그냥 내 부족함이 잘 보인다. 무던히 배우고 노력해야할 뿐이지.


이번 주는 백수다. ㅎㅎㅎ. 슬프다. 백수임에도 뭐 많이 일정은 있다. 촬영이 없어서 그렇지. 기자로 생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진 모르겠는데 해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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