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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Dec 11. 2023

꽃 두 개, 케이크 하나

그냥 일기

졸업작품전시회를 무사히 마쳤다. 내 전시 책상에 올려진 건 꽃 두 개와 케이크 하나였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화 꽃다발 작은 거 하나와 목화처럼 생긴 작은 꽃다발 하나 그리고 투썸 치즈조각케이크 한 조각.


다른 학우들의 책상을 보았다. 풍성한 꽃다발과 꽃. 그리고 무언가 축하를 해주는 상징물들이 다양하게 즐비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학우도 있었다. 어쨌든 그중에서 난 초라해보였다. 풍성한 꽃다발이 가져다주는 위압감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탓일까. 모르겠다. 그냥 .. 그렇다고..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축하받을 일에 축하받는 사람이 되고 말겠다고.. 그럴려면 유명해져야겠지..? 나는 욕심이 많지만 인지도에선 욕심이 없었다. 배우가 하고 싶었던 건 연기가 하고 싶어서지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에도 항상 일관되게 대답했다.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니요.


나는 내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배우는 명성이 비례하는 직업이긴 할 테니 나의 대답엔 모순이 있을 수 있다. 뭐 어쨌든 나도 팬이 생겨서 누가 나를 축하해줬으면 좋겠다. 그러곤 나중에 얘기하고 싶다. 


졸업작품 때 제가 꽃 두 개랑 케이크 하나 받았거든요? 근데 오늘 00님이 주신 게 더 커요.


물론 그때가 되면 물가도 바뀌고 가격의 변동도 생각해야겠지만, 그냥 그런 망상을 했다. 오늘 오랜만에 인프피 감성 돌아왔네. 요새 완전 T였는데..


그럼에도 적게 축하 받은 건진 모르겠다. 내가 얘기를 안 한 것도 사실이라.. 말 안 하는데 내가 졸업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다면 다른 학우들은 '나 졸업해요' 하면서 홍보했을까. 진짜 모르겠다.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먼저 연락와서 못 간다고 연락해주는 고마운 분들도 있었고. 그냥 그런 분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다. 꽃을 준 분들과 케이크를 둔 친구도 오래도록 기억하겠지. 방명록에 써준 사람들도. 그런데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해야할지 모르겠다. 뭐, 알아서 내 뇌가 기억하겠지만.


요즘도 나는 실랑이 중이다. 여름에 찍었던 단편영화의 영상을 아직 받지 못 했고. 어떤 유튜브를 찍었던 곳엔 영상 사용 기간으로 톡을 보냈지만 여기도 답장이 없다. 양아치 소굴도 아니고.. 자기네들 이윤만 따지면 내 이해관계는 어쩌란 건가.


이래서 사소한 것도 확실하게 짚고 가야되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나같은 일을 많은 사람들이 겪을 거고 해결되진 않을 거다. 언젠간 엎어져야 하는 곳이지만 이런 계층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요즘 <서울의 봄>이 평이 좋던데 쿠테타가 아니면 뒤집는 건 힘들다. 그리고 성공한다고 혁명이 된다는 건 자기네들 생각일지도 모르고.


이해관계는 어렵다. 이병헌 배우가 회차 당 받는 1억과 단역 배우가 받는 50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이 둘의 이해관계는 너무나 어렵다.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둘다 맞는 말이기에 할 말이 없어진다. 다만 단역 배우에 대한 형편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쪽에 난 손들고 싶을 뿐이긴 하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안양대학교 학생들과 촬영을 저번주부터 진행했다. 어쩌다 3회차가 되어버렸지만 뭐.. 확실하게 끝내는 게 나도 맘 편하다. 내일은 왈로만 따기에 준비할 건 크게 없다.


1일엔 대진대학교 촬영을 갔다. 정문부터 느껴지는 웅장함에 놀라움을 못 감췄다. 페이를 5만원 제시했기에 간 거였는데 뭐 자기네들이 공고를 잘못 썼다고 했다. 무페이를 원래 올렸다고..


그럼 저도 처음부터 지원 안 했겠죠..


이렇게 말은 못 했고 그냥 넹, 했다. 뭐 어쩌겠는가 다들 그냥 참고 넹, 넹, 거리면서 사는 게 우리들 아니겠는가. 그래서 택시비 포함 5만원을 받았다. 택시비는 원래 합의된 거였는데 노원에서 포천까지 38000원 정도가 나왔다 ㅜ


그날은 무지하게 추웠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거기 학생들은 밥을 직접 만들어서 줬다. 밤에는 오뎅탕을 만들어주고. 먹을 게 굉장히 많았던 곳이다. 이번 안양대는 촬영이 끝나고 고기를 사줬고 일요일엔 감자탕을 사줬다. 든든하게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픽업 서비스까지.


인간미 있는 현장에 가면 기분이 좋다. 뭐 학생들 작품 대부분이 일단 분위기가 편해서 좋다. 무겁지 않다는 게 너무 좋고.. 사실 뭐 상업 가면 내가 무슨 대우를 받겠는가. 그냥 헤메하고 끝나면 사진 찍히고 중간중간 뭐 체킹하고 뭐..


밥 시간이면 밥 먹고 오라고 연출한테 듣고. 몇 시까지 오라면 오고. 누가 밥을 챙겨주진 않는다. 밥차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듣는 이야기로는 그게 꽤 드문 거 같더라. <용감한 시민> 때는 밥차였다. 세종예고에서 찍었는데 좋았다. 맛있어서 진짜로.


이번 주 금요일에 종강한다. 후.. 뭐 한 건 없지만 종강에 의의를 둔다. 그러곤 진짜 대학생활도 끝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동아리에 들어갔더라면, 또 동아리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등등을 생각해본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만약에 그랬다면 더 많은 꽃을 받지 않았을까.


사실 축하해줄 거로 믿었던 사람들이 연락도 없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연말이라 회사가 바쁜가 했지만 그래도 톡으로라도.. 인스타엔 내가 열심히 졸업작품하는 걸 어필하긴 했다. 스토리에 좋아요가 평소엔 2-3개 달리는데 졸업작품전시회할 땐 15개? 그렇게 달렸다. 


근데 확실히 팔로워가 늘어난다고 친구가 늘어나는 건 아니기에,, 할 말이 없다. 약간 가짜친구만 자꾸 늘어나는 인스타를 보며 뭔가 허탈하기도 하다. 결국 이 중에서 나를 축하해줄 사람은 좋아요 누른 15명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 스토리를 본 150명 이상은 가짜 친구인가 싶고..


근데 생각해보면 비즈니스적인 관계 내지 가짜 친구 혹은 진짜 남인긴 하다. 가짜 친구가 아니라 그냥 남인 거 같다.. 어후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것이 사는 거로 생각했다. 나의 졸업작품 마침 말이다. 그뒤에 문장이 궁금하다면.. 책을 보길.. ㅈ장난이고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 사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살아간다 생각했는데 어쩌다 글을 쓰고 있네요. 졸업작품집이 완성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혹은 영감이 되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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