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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Dec 12. 2023

안녕한 길을 따라 걷다

1. 갔던 길을 따라간다는 것

삶을 살아가는 지금도 인생이라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삶이란 게 유한하다는 것도 퍽 실감 나질 않고. 만약 언제 죽는지 알게 된다면 인생을 유의미하게 보낼까. 근데 그건 또 아닐 거 같다. 아마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유의미의 관점과는 다르지 않을까. 일단 내일 죽는다면 난 은행을 털 거다.


언젠간 은행을 터는 걸 목표로 한 채 난 스무 살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왔다. 학교 기숙사 곳곳을 이동하다 4학년이 되었다. 내년의 내 목표는 자취이기에 복식호흡을 연습 중이다. 발성에 도움이 된다는 건 차치하고 서울에선 숨만 쉬어도 돈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숨을 덜 들이켜고 덜 뱉어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이런 멍청한 생각은 행동과 비례했다. 도산서원을 봐도 뭐가 특별한질 모르겠다. 그냥 고택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사실 고택 안에 서원이 포함된 개념일 거 같긴 한데, 그것마저 구별할 만큼 내가 똑똑하질 않다. 가방끈이 짧은 게 불편하다면 뭐, 하릴없는 거고.


도산서원은 서원 철폐령 때도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세운 서당(도산서원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육사 문학관과 가까운 곳에 있다. 가는 길은 산중이라 썩 좋진 않다. 구불구불해서 영 별로였다. 요즘 운전면허장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는 S자 코스를 경험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바다.


심심했다. 건물만 남은 땅을 본다는 건 무척이나 무료했다. 도산서원이 심심한 건 아니고 사실 내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탓일지 모르겠다. 사실 심심한 상황은 나쁜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선 심심할 수 없을 테니까. 심심하다는 건 평화와 동의어일지 모르겠다. 평화롭기에 자꾸만 무언가를 건들고.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봐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어쩔고     


이황의 「도산십이곡」 9수엔 위와 같이 적혀있다. 현재의 우리말로 본다면 ‘고인’은 성현 내지 옛 어른 혹은 성인, 군자 등이다. ‘녀던 길’은 성인들이 갔던 길 즉, 행하던 길 혹은 학문 수양의 길이다. 그렇기에 종장은 ‘올바른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따르지 않고 어쩌겠는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아무도 공부하거나 수양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마저도 고마운 사실일지 모른다. 서원을 대신할 많은 학교가 세워지고 교육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사회가 되었으니까. 의무교육으로 중학교까지 나와야 함은 이황이 내세웠던 성리학과 분명히 다를지 모른다. 사실 성리학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모두가 평등하게 공부하는 사회를 바랐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단도 이도 기도 칠정도 잘 모르지만 말이다.


이황이 세상을 사랑했다는 증거는 시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도산십이곡은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다. 앞의 6수는 자연과의 동화를 얘기한 안분지족, 안빈낙도, 자연 사랑이 주제인 ‘강호가류’에 속한다. 뒤의 6수는 학문 수양의 길을 강조한 ‘오륜가류’에 속할 거다. 이광수의 「무정」처럼 이황의 「도산십이곡」도 뒤의 6수만을 교육을 강조하는 문제로 나오기도 했다.


옛 서당에선 인성 교육도 함께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실용적인 학문만이 가치 평가를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학에서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공계열의 학과와 문과 계열의 학과는 존폐부터 언급되는 게 다르다. ‘동방의 주자’라고 불렸던 이황이 바랐던 세상과 지금은 같을까. 성리학을 체계화하고 문학에도 빼어난 재주를 보였던 그가 바라본 지금은 행복한 시대일까.         


도산서원

*이 시리즈는 연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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