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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May 11. 2024

영화에서 봤어요

그냥 일기

어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프로그램에 가는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청소를 하고 시작했고 청소가 끝나고 난 정수기에 물을 받으러 갔다. 정수기 앞엔 같이 프로그램을 듣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게 말을 걸었다.


"00님, 영화에서 봤어요."


물을 받으려던 나는 그대로 멈춰서서 그를 쳐다봤다. 영화에서?

영화에서 봤다고?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 짧은 순간 동안 오만 생각이 지나갔다.

<용감한 시민>에서 난 편집 됐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크레딧에 올라간 상업영화였으니까. 보통 영화라고 하면 상업영화를 뜻하지 독립영화를 말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나를 봤다고? 크레딧까지 본 건가? 아니 애초에 크레딧에서 어 00이네? 이러기가 가능한가. 심지어 난 특별한 이름도 아닌데.

독립영화에서 본 건가? 근데 그렇게 상영(?)되고 있으면 나한테 왜 아무도 언급해주지 않는 거지? 뭐지. 어디서 본 거지? 


"어느 작품에서요..?"

"아, 000에서 봤어요."

"아."


예전에 찍었던 학생 작품이었는데 그걸 봤구나. 어떻게 봤는진 모르겠지만 민망하고 신기하고.. 그런데 그 얘길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또 있었다.


"00님, 영화에 나오셨어요?!"


앗.. 관심을 받아버렸다. 칭찬보다 욕이 익숙한 사람이기에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상업영화로 당연히 생각해버린다고..


"네! 00님 영화에 나오더라고요!"

"아 진짜요? 친해지면 여쭤봐야겠다 ㅎㅎ"


그 둘은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했다. 세 명 중 민망해지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 거 같았고.. 그리고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독립)영화라고 말을 하든 (단편)영화라고 말을 하라고..

무엇보다 그 단편영화에서 난 정말 짧게 나와서 더 민망하기까지 한데..


"영화 보는데 00님, 나와서 놀랐어요 ㅋㅋ"

"하핳.. 어쩌다 보게 됐는데요?"


경위를 물었다. 그건 조사를 해야 한다. 어디서 그런 게 돌아다니는지, 싹을 뽑을 순 없어도 일단 들어야지.


그렇게 나눈 얘기 결과 그때 그 단편영화의 감독과 만남이 있었나 보다. 세상은 너무 좁아서 가끔은 안 반가울 때도 있다. 예비군으로 인해 강릉에 이번 주에 갔다 왔었다. 강릉에 특별한 카페가 있기에 갔더니 우리 과 교수자를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인맥에 대해서 실감이 났다. 괜히 어렸을 땐 잘 나가는 형들을 빽으로 삼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다른 의미로 잘 나가는 분들을 알고 있다는 것도 힘이 아닐까 싶었다. 힘이라고 표현하면 좀 그렇긴 한데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고 하니까. 


프로그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어떤 친구가 그랬다. 대학교 출신까지 밝혀야 하나. 난 아무 말도 못 했던 거 같다. 그 친구의 경우 그런 출신을 밝히는 게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생각했던 건지, 어떤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름의 불만을 토로했다. 출신 학교,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어쩌면 나도 수혜받는 입장일 수 있기에 말을 아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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