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12일에 일일 책방지기를 했다. 동네의 독립서점으로 작은 곳이었다. 책방지기를 마친 월요일에 의문의 계좌이체가 들어왔다. 보상금 166600원. 국민은행에서 보냈다는 것 빼곤 발신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힌트는 오직 보상금이라고 적힌 글자와 금액.
그래서 난 책방 사장을 의심했다. 의심이라는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 뭐 어쨌든. 15일에 책방에 들렸다. 밤 11시가 덜 된 시간이라 퇴근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책방 사장은 졸고 있었다. 과학의 달 뭐로 준비 중이라고 바쁘다고 했다. 박스에다 무슨 그림을 그렸던 거 같다.
책방 사장에게 계좌이체에 대한 출처를 물었다.
혹시 제 계좌로 돈 보내셨나요?
아니. 못 줘서 미안하다.
음. 수확이 없었다. 처음부터 책방지기에 대해서 임금 얘기를 나눈 적도 페이를 언급한 적도 없었다. 나도 그래서 봉사 내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책방 사장은 범인이 아니었다. 하긴 내 계좌번호도 모르는데 이체했을 리가 없었다.
누가 보낸 걸까. 친구일까? 가족? 누구길래 발신자가 보상금일까. 메모일까. 모르겠다. 굳이 이렇게 나한테 귀찮게 돈을 보냈을까. 이 사실을 친구에게 얘기하자 누군가가 빚을 갚은 게 아니냐고 했다. 나한테 빚을 진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지마 역시 나오지 않았다.
아니면, 평소에 고마움을 표시했다든가..
그런가. 고마움을 내게 166600원으로 표시할 사람이 주변에 있나. 무엇보다 내 계좌번호를 어떻게 아는 걸까. 그 친구는 책방지기를 같이 했던 친구였고 못내 나도 돈 못 주고 부려먹기만 한 거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책방에 있는 고양이 티셔츠가 마음에 들었던 거 같은데
아니면, 책에 계좌번호 적어났던데 그거 보고 준 거 아닌가..
나쁘지 않은 추론이었다. <에세이라니>에 내 소개글에다 계좌번호를 적긴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에세이라니>로 들어온 돈은 한푼도 없었다. 책을 쓰면서도 발행되면서도 어떤 과정에서도. 있다면 모르는 사람 이름으로 10몇 원이 들어왔던 적..?
그거 보면서 <에세이라니>를 누군가가 보긴 했구나 싶었다. 아마 18원 이 정도였던 거 같은데 18원만큼 힘내라는 뜻인가 보다 싶었다. 뭐,, 오히려 그 책이 나올 때까지 책방 이용대금 만원을 내곤 했다. 그러니 한 10만원 정도는 내 돈을 쓴 거 같았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나에게 보상금을 보내준 걸까. 다시 미궁 속으로 들어간 사건. 책방 사장이 준 거였다면 그 친구와 8만원씩 나눠가지고 고양이 티셔츠와 강아지 티셔츠를 각각 하나씩 사는 그림을 그렸는데
도화지도 찾고 있질 못 하고 있으니. 아 근데 책 제목을 이미 밝혔으니 책방 이름도 밝히는 게 편할 수도 있겠다. <지구불시착>이다.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책방 사장을 난 후보에 두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즉슨, 첫 번째로 계좌번호를 알려준 적도 없다. 두 번째로 일일 매출보다 더 많은 돈을 나에게 줄 리가 없었다. 하루 가게를 맡으면서 느꼈지만 조금 슬픈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사간 손님은 약간 예의상 느낌도 강했으니까.
오픈 때 왔던 아주머님이 계셨다. 그분은 내게 사장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젊은사장으로 답을 내렸던 거 같다. 그래서 그 분은 힘내라는 의미로 책을 사줬던 거 같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기엔 대화에서 느껴졌던 아련함이랄까. 그렇게 그분은 포스터와 책을 사갔다. 두 번째로 사간 손님은 반반인 거 같다. 필요해서 샀다는 느낌보단 구경값처럼 내고 간 느낌이었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혹시나 영업비밀일까 봐 말을 아끼겠다. 하지만 정말 손님이 안 오긴 했다. 옆에선 공릉동커피축제 중이라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난 그렇게 아직도 보상금 166600원의 행방을 찾고 있다. 사실 출처는 잘 모르지만 감사한 일이지. 만약 진짜 에세이라니를 보고 보낸 거라면 더욱 감사한 거고. 아니라면 뭐 우렁각시인가..
래퍼 우원재는 자신의 계좌번호를 타투했다. 팔이었나. 그걸 보고 팬들이 돈을 보낸다고 했다. 우원재 인터뷰를 보면서 난 그 사실이 부러웠다. 그래서.. 따라했다가 들어온 돈은 18원인가. 뭐 몇 십원. 그래도 책 쓰면서 수익이 10원이라도 났다. 땅 판다고 10원이 나냐고 엄마가 그랬었는데. 책 쓰고 10원을 줏은 꼴이니 나쁘진 않은 거 같았다.
그 친구는 여러가지 가설을 마저 세웠다. 그 책을 본 시인이나 교수가 보낸 거 아닐까.
책방 일한 거 돈 안주는 거 그 시인은 알고 있으니까 대신 준 거 아닐까..
생각보다 그럴싸한 가설이었다. 근데 어째 쓰면 쓸 수록 책방 사장 까는 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슥 고양이 티셔츠 임금 대신 줄 수 있냐고 물어볼까.. 뭐 어쨌든 그 친구는 마저 더 가설을 세웠다.
아니면 교수가 준 거 아닐까..
근데 교수가 나한테 돈을 왜 주는데..?
나도 모르게 나온 반문이었다. 교수가 돈을 왜 주지 진짜. 보상금이란 단어에 약간 꽂힌 거 같았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주는 느낌 같았으니까. 수고했다는 보상. 수고비. 그런 느낌.
뭐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 어쩌면 끝까지 안 밝혀질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보상금도 받았고 더 열심히 살란 뜻이겠지. 166600원 만큼 더 힘을 내서 오늘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