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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May 29. 2024

단편영화 후기

그냥 일기

3박 4일 간의 여정을 끝냈다. 촬영은 사실 3일이었지만 일요일 새벽에 끝났기에 모텔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올라갔다. 


어디서부터 얘길할까 하다 처음부터 얘기하기로 했다. 이런 걸 누군가는 궁금해한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뭐 특별한 건 없는데..


배우 구인구직 사이트 같은 게 있다. 필름메이커스라고. 거기서 품앗이에 올라온 한 공고에 지원했다. 지정대본을 올렸기에 그걸로 연기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후에 함께하자는 문자가 왔다. 미팅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천안에서 그들은 열차 타고 서울로 올아왔다. 그렇게 5분도 안 되는 미팅이 끝나고 나머진 촬영 당일에 만나는 거였다. 일촬표나 시나리오, 콘티 등은 사전에 메일로 다 보냈었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다른 대학교의 촬영이 있었다. 그렇게 밤샘 아닌 밤샘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금요일 오후에 천안아산역으로 내려갔다. 제작팀 중 한 명이 픽업하러 왔었고 숙소에서 짐을 푼 다음 저녁을 먹고 쉬었다. 저녁은 프렌차이즈 식당으로 갔는데 돈까스가 맛 없어서 실망했다.


콜타임이 밤이었던 탓에 잠깐이라도 자고 촬영하려 했다. 그런데 깨우러 왔었다. 예상보다 일찍 슛이 들어갈 것 같다고 해서 갔지만 그러진 않았다. 대기는 한 2-3시간 한 거 같았다. 그동안 미술팀에서 나를 분장시켜주고 의상을 주고 놀아줬다(?).


금요일 새벽 3시 정도에 촬영이 끝났다. 제작팀 중 한 명이 또 픽업해줬다. 대충 씻고 뭐하니 4시였던 거 같다. 


일어나니 12시 쯤이었다. 콜타임까진 4시간 정도가 남았던 거 같고 배가 고팠다. 제작팀한테 연락하자 봉구스 밥버거를 갖고 왔다. 콜타임이 다가오자 또 픽업하러 와준 제작팀의 그. 군대 후임을 닮았던 친구였다. 랩을 하는 친구여서 더 인상 깊었다.


그렇게 찍고 하다 보니 또 새벽에 끝났다. 몇 시였지. 3시까진 안 되었던 거 같기도 하고 2시는 넘었던 거 같긴 한데, 시간 개념이 잘 안 되었다. 뭐 어쨌든 그렇게 찍었다. 눈물 연기가 있던 씬인데 만족하지 못 했던 기억이 난다. 


씻고 바로 잔 거 같은데 그래도 3시간 정도밖에 못 잤던 거 같다. 일요일 아침에 픽업해주러 온 제작팀의 그. 점점 지쳐보이는 스태프들의 얼굴이 영락없었다. 다들 피곤해보였다. 그런데 나도였다. 저녁부터 몸이 이상했다. 손 떨림이 멈추질 않았고 저녁엔 컵라면을 먹다 살짝 쏟았다. 왼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있었는데 왼손에 힘이 풀린 거다. 몸이 이상한 걸 느끼자 갑자기 추웠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비 탓인지 몸도 으슬으슬했고.


이따가 있을 절정 씬이 걱정됐다. 감정이 폭발하는 씬인데 몸이 이러니까 불안했다. 타이레놀을 달라고 하자 스태프들이 걱정했다. 사실 스태프라고 해도 나보다 어린 대학생들인데.. 대학교 2학년이 평균인 스태프 친구들한테 미안해졌다. 타이레놀을 먹자 몸에 한기가 덜 하긴 했지만 손 떨림은 멈추질 않았다. 다행이 카메라엔 잘 안 담겼던 거 같다.


그렇게 절정 씬에 들어갔고 열심히 감정을 표출했다. 스스로도 많이 의심하고 걱정했던 씬이었고 컨디션까지 안 좋자 불안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찍었던 거 같다. 매 테이크마다 울진 못 했다. 사실 첫 테이크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 했다. 그래서 프레임에서 아웃된 후에 감정을 숨 죽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소리가 새어나올까 봐 문에다 머리를 박고 꾹 참았다. 그렇게 '컷' 소리가 나자 밀어둔 숨을 밖으로 다 내뱉었다. 콧물도 눈물도 제어가 안 되었다. 


이런 감정씬이어서 그런지 미술팀의 한 친구는 나의 매니저를 자칭하듯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물과 휴지를 줬다. 코 묻은 휴지를 버리게 시켜서 미안했다. 눈이 빨갛자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거의 뭐 왕이 아니라 애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새벽 1시 정도에 끝난 거 같다. 밀린 단체사진을 찍고 의상을 돌려받고 반납하고. 한 명씩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 돌아가자마자 씻고 바로 뻗은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문자가 와 있었다. 뒷풀이 중인데 참석할 거냐는 내용이었다. 체력들이 엄청난 친구들이었고..


아침엔 스태프 중 한 명이 역으로 픽업해줬다. 그는 뒷풀이 참석 후 차에서 자다 아침 수업을 듣고 난 후 나의 픽업까지 도와준 거였다. 동갑이었던 친구였는데 체력이 엄청났다.

그는 어제 나에게 녹차라떼를 사준 고마운 친구였는데 일화를 잠깐 풀자면


'음료 마실 사람?!'


하고 그가 외치자 여러 스태프가 '저요저요'를 외쳤다. 그런 스태플 사이에서 나를 보고 


'배우님은 뭐 마실 거예요?'

'아.. 전 괜찮아요.'

'지금이 마지막일 텐데?'

'..!'


뭔가 협상을 굉장히 잘할 거 같은 학생이었다. 난 고심 끝에 녹차라떼를 말했다. 학교 앞의 메가커피를 간다는 그. 그러자 한 명이 촬영 중인데 어디 가게, 이런 뉘앙스로 말했던 거 같다. 그러자 그는


'배우님이 녹차라떼 먹고 싶대.'


..? 나는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맞는 말이지만 이게 뭔가 좀 이상한데 뉘앙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ㅜ

근데 이해가 너무 된다. 내가 먹자고 하면 사실상 치트키니까. 거의 군대에서 감독관 같은 사기 아닌가. 대대장이 이거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말해도 감독관님이요, 말하면 커버가 되니까.


뭐 그랬다. 여긴 진짜 배우를 왕으로 대우해줬다. 이런 곳이 진짜 있구나 싶었다. 화장실 가면 따라와. 혼자 있고 싶다 해도 따라와. 1대1 마킹이 원칙. 라면 물 받아와. 도시락 배달해. 비가 오니까 자기 옷 벗어줘.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오히려 불편하다고 그 정도는 ㅜ


뭐 더 생각나면 적겠지만 여기까지인 거 같다. 상영회 때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음.. 그럼 그땐 내 돈으로 천안을 가야하나.. 모텔도.. 모르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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