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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춘이라고

by 수호

삶을 살아가는 지금도 인생이라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삶이란 게 유한하다는 것도 퍽 실감 나질 않고. 만약 언제 죽는지 알게 된다면 인생을 유의미하게 보내게 될까. 근데 그건 또 아닐 거 같다. 아마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유의미의 관점과는 다르게 살 것 같다. 난 일단 초록 머리를 할 거니까.

우리는 종종 ‘인생 공부’라는 표현을 쓴다. 뭐, 좀 안 좋은 일을 겪었다고 하면 옆에서

“인생 공부했다고 해~”

푸념이나 한탄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련을 겪었으면 만화 속 주인공처럼 주저하면 안 되고 시력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옛날 영화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은 꼭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시련을 겪을 땐 조력자가 나타나 주인공의 역경을 도와준다. 그렇게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런데 우리네는 무슨 <트루먼 쇼> 마냥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고 있다. 시련도 진짜 시련이 있고 가짜 시련이 있어서 청춘을 불태워야 할 MZ세대에겐 어쩌다 필수 요소 중 하나가 번아웃이 됐다. 어쩌면 지금의 역경이 앞으로도 계속되는 건 아닐까 하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오히려 지금의 행복감이 너무 커서 불안을 가지기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낙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개복치 같은 요즘 청년들 사이에선 말 한마디 내뱉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중 가장 개복치스러운 내가 조금 끄적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알량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시련을 얘기하고자 하는데 사실 나도 잘 못 견딘다. 그래서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벌써 걱정이 줄을 선다.

아마 의례적으로 이별은 필수 시련이다. 이별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앞서 유한한 삶이 실감 나질 않는다고 했지만 나의 친한 친구는 자살했다. 사별도 이별도 겪었지만 그럼에도 적응되질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그날 하루가 멍하고 다음 날은 눈물로 하루를 보낸다. 수업도 알바도 과제도 헬스도 글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며칠까지 지속될까 봐 의문이 드는데 주사위 굴리듯 랜덤인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거다. 전지적인 어떤 것이 자꾸만 내 기분을 가지고 주사위를 굴린다. 브루마블마냥 어떤 날은 무인도에 갇혀서 나흘을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만 있기까지 하다. 사별은 오죽했을까.

20대 초반 한창 불타야 할 청춘이 불쌍해 보였는지 교수는 내게 팁을 하나 줬다. 햇볕을 받으며 산책해보라고 했다. 단 길은 올곧고 생각에 끝을 짓지 말라고 했다. 떠오르는 생각으로 계속 꼬리를 물다 보면 생각의 끝이 알아서 매듭지어질 거라고 했다. 속는 셈 치고 경춘선 숲길을 걸었다. 몇 시간째부터는 마스크가 젖었다. 눈물 때문이었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걸었다. 3시간 정도를 걷자 생각이 정리됐다. 신기했다. 더는 미련이 남지 않았다. 꼭 이별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쓰이지 않아도 된다. 어떤 일이든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면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MZ의 특징 중 하나는 할 말 다 하는, 자기가 최우선인 개인적인 성향일 거다. 그렇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걸 알 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쉬는 거를 못 했다. 아프면 쉬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이게 당연했던 적이 있었을까. 힘들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에 머물기 싫었던 건지 내 착각 속에 살았던 건지 모르겠다. 어릴 때 내가 생각한 어른은 너무나도 멋진 거였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아가는 그런 멋쟁이. 막상 성인이 되자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책임질 것도 짊어진 것도 너무나 많았다.

어른스럽다는 성숙하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본 대다수는 덩치만 큰 녀석들이었다. 그럼에도 어른은 행복할 거로 믿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까. 물론 행복이란 굉장히 난해한 기준이지만 옛날엔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땐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란 뭘까 싶었다. 군대에 있을 땐 근무 끝나고 먹은 컵라면이 최고였다. 그땐 그게 행복이라 여겼다. 남은 휴가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던 날들이 나의 군 생활 버팀목이었으니까.

전역 후 그때의 컵라면 맛을 아직 못 찾았다. 추운 겨울이면 일부로 손 떨어가며 호빵을 실외에서 먹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때의 맛을 못 느낀다. 전역하고 나이가 드니까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부족할 줄도 몰랐다.

행복의 기준은 계속 바뀌었다. 여자친구와 꽁냥꽁냥 거리며 남들을 눈을 더럽혔던 시절이 있었다.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듣게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그 친구가 먼 곳으로 여행을 간 것만 같다. 언젠간 갑자기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도 든다. 특유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만화 주인공이 시련을 겪을 땐 조력자가 나타나는데, 나의 조력자는 어딨을까 생각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남은 친구들이었다. 개복치 같은 나는 술에 힘을 못 빌리는 탓에 친구의 힘을 빌린다. 몇 마디 털어놓으면 마음마저 편해진다. 낯선 사람과 만나면 낯을 가리고 집 밖보다는 안이 좋은 나에게 몇 없는 친구는 가족보다 든든한 조력자다.

너무 덥고 습한 요즘이다. 비가 원래 이렇게 오래 왔었나 싶다. 작년에 이랬던가 생각이 드는데 내일이 친구의 기일이다. 1년이 벌써 지났다. 벚꽃이 피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땐 꽃도 인생을 찾은 거 같은데, 나는 아직도 헤매는 거 같다고 심란하기도 했다. 벚꽃이 피기 전에 300일 안 되게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었다. 석촌 호수에 갈까, 벚꽃 축제 어디로 가지 찾고 있었는데.

시련은 응당 힘들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얘기했던 걸지 모른다. 인생 공부했다 치라고. 언젠간 병동 팀장님이 그랬다. 사회생활 배우는 학원에 돈 받고 다닌다고 생각하라고. 일하러 온 게 아니라. 그 말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됐다. 자기 때문에 그만둔 간호사가 수백 명은 될 거라고 말했던 분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할 줄 아는 분이었다니, 놀라웠었다.

나에겐 사랑도 꿈도 청춘도 사람도 너무나 어렵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대학에 와선 내가 뭘 배웠나 싶을 때가 있고 훌쩍 지나간 어제를 생각하면 당장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나질 않는 내가 뭘 알겠는가. 난 여전히 어린아이를 꿈꾼다. 금방 잊고 해맑게 웃으니까.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우리의 통념에 반하는 지적을 어린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할 때가 있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일 때도 많아서 고개를 끄덕이게까지 하고. 사실 그걸 다 떠나서 일하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다.

아마 어른이니까 감내하는 거겠지. 인생이란 이런 거로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기엔 내가 너무 조급하니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성격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을 할 거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걸 잊지 않는다. 결국 순간순간의 즐거움이 모여 행복이 되는 거니까.

작년 여름 친한 친구의 입관을 보며 아기처럼 울었던 내가 있었고 언젠가 소리를 꽥꽥 질러가며 누군가와 싸우기도 했다. 어떤 날은 3시간을 계속해서 걸었고 하루는 소나기를 맞으며 자전거를 탔다. 그 모든 것이 쌓여서 인생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쌓이고 있다.

인생을 공부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거다. 수능 특강처럼 서점에 가서 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우리가 겪은 혹은 겪는 시련 뒤엔 행복이 오기에 지금의 고생은 행복을 위한 발돋움인 거다. 항상 행복할 수도 없고 항상 행복하면 행복이란 개념을 잊거나 익숙함에 속아 권리로 느낄 거다. 우리는 잃어보기도 하고 찾기도 하면서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조금은 멍청한 아주 인간적인 사람들이니까.

요즘은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려고 노력한다. 이마저도 귀찮아지기 시작했지만 연락 닿은 친구와는 밥을 먹거나 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같이 나누고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을 느꼈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난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알아버렸다. 그리고 자꾸만 잊어간다.

흰 국화를 알아보는 중이다. 8월 5일은 내 친구의 기일이자 우리가 만나는 날이다. 졸업식 빼고 꽃을 주는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이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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