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약 2-3주 전 하나의 메일이 왔다. 공모전 시상식에 대한 참석 여부였다. 대뜸 아무 설명도 없는 불친절한 메일에 뭘까 싶었다. 그 공모전을 검색했다. 당선작 발표에 들어가자 우수상에 내 이름이 있었다. 아, 맞아.
작은 공모전이었다. 우수상임에도 10만 원인 수상금. 돈이 작다고 하는 불평이 아니다. 수상금으로 유추 가능한 규모를 얘기하는 거니까. 학생 때부터 실기를 준비했고 문예특기자 전형에 대한 꿈이 있었기에 공모전 수준은 어느 정도 편견으로 유추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편견의 다른 이름은 빅데이터였다. 슬픈 말이지만 맞아 떨어질 때가 많았으니까.
공모전 공고를 보니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당선을 취소한다고 했다. 대회의 규모를 봐야 하는 이유는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전에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당선을 취소하는 대회는 없었다. 최소한 이름 있는 데선 말이다.
10만 원에 귀찮음을 팔 것인가. 사실 팔아야 하는 게 맞았다. 일이 있어도 뺄 수 있으면 빼면 좋은 거지. 문제는 하나 더.
참가비 3만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음만 나왔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뒷풀이 비용도 포함한다고 하는데, 무슨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10만원 주면서 3만원을 빼간다? 그리고 10만원에서 세금 공제해서 오는 걸 텐데. 그렇다면 남는 돈은 얼마지.
이런 사실을 알고 엽서시에 공모전을 보고 있었다. 히말라야 공모전? 신기한 게 있네 하면서 눌렀다. 여기 또한 괄호 속에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시상식 불참 시 당선 취소.
성북구청장상까지 주면서 왜 이렇게 구는 걸까. 사정 없는 사람 없고 모든 사정을 들어줄 순 없다지만 저런 강압적인 태도엔 불만이 생긴다. 지금까지 15개의 크고 작은 수상을 하면서 시상식을 저렇게 들먹이는 곳이 있다는 걸 몰랐었다.
대전의 한 대학교와 미팅이 있었다. 단편영화를 찍겠단 그들은 3만원의 페이를 불렀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교통비만 나오겠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연출은 대면 연습을 요구했다. 교통비 지원되냐니까 그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나의 태도가 불만이었는지 미팅이 끝나도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과도 알려주지 않은 채 몇 주가 지났다. 그는 어제 필메에 새로운 공고를 올렸다. 배우가 구해지지 않았는지 3만원에서 5만원으로 페이를 올리고 연습은 없앤 것 같았다. 그는 남녀 배우가 서로 애무하는 장면이 들어가길 원했다.
그런 학생을 보면서 안타까움만이 생겼다. 결국엔 대우해주는 만큼 배우도 참여하고 열정을 높이기 마련인 건데.
사실 다른 그 어떠한 것보다 미팅 후에 결과를 통지도 안 했다는 게, 나한텐 선을 넘은 거였다. 문자 하나 복붙해서 보내는 게 어려운 게 아님을 충분히 알기에. 그렇다고 내가 이 연락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새로운 재공고 글을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영상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 탓에 정말 아무나 찍는 시대가 왔다. 어떤 학생들은 취미의 영역보다 못 했고 조별 과제 수준이기까지 처참하기도 했다. 그래도 환경보단 사람이었기에, 사람이 좋으면 그 마저도 추억으로 미화됐다.
내가 불평, 불만이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걸 입 밖으로 꺼내느냐 안 꺼내느냐 차이일 만큼 나는 비관적인 사람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예의를 지킨다. 아무리 이상하고 문제가 있어도 내 역할에선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그냥 나이를 먹은 탓인지 꼰대가 되가는 기분이다. 젊은 꼰대가 이런 걸까. 26살에 벌써 요즘 것들이 문제란 말이 나온다면, 나는 서른이 넘어선 어떤 사람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