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요즘 유튜브를 들어가면 시끌시끌한 영상들이 자주 보인다. 아마 내 알고리즘 탓이겠지. sbs뉴스를 봤던 탓인지 요즘엔 계속 동덕여대와 서울여대 뉴스가 내 유튜브 화면을 차지한다.
분명 서울 어딘가에선 지금도 시위 중이고 무언가와 싸우는 중인데 나는 이불 속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다. 아늑하게 이불 안에서 영상을 보며 피곤하면 잠을 자고.
학과 창설 3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가 있었다. 어딘가에선 공학 전환을 위해 싸우는데 여긴 평화롭구나. 그 평화롭다는 게 신기했다. 지구 어딘가에선 지금도 누군간 실시간으로 죽어갈 텐데. 나는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걸까. 그 생각에 못 이겨 글을 쓰기로 했다.
신춘문예 시즌이 코앞이다. 사실 코앞이 아닌 이미 돌입했을 거다. 29일을 시작으로 신문사들은 신춘문예 접수를 마감하기 시작하니까.
여러 생각이 오간다. 어떤 말을 하든 위험한 것 같아서 일기에서 마저 사리게 된다.
그냥, 2018년 내가 스무 살 시절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아마 처음 겪은 조별과제일 것 같다. 그때 당시 교양 과목에 학과 동기 네 명과 한 조가 되어 조별과제를 했다. 사실 자의는 없었고 랜덤이라기엔 좀 별로였던 그런 상황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 조별과제를 진행했고
무임승차 한 두 명의 이름을 제외한 채 나는 과제물을 제출했다. 그 중 한 명을 과방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는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싸움이 싫었던 나는 그 자리를 피했던 거로 기억한다. 사실 이 부분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기억 속에선 그가 신경을 건드는 소리를 했던 거 같은데 어쩌다 그 얘기가 오게 되었는진 모르겠다. 과방이라는 장소도 한몫했던 거 같고.
그렇게 그와는 동기지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1학년이 끝나고 군대를 간 나에게 그 친구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복학 후에도 비슷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한창이었고 비대면 수업이 끝나자 졸업반이 되었다. 학교에서 마주쳤던 거 같긴 하지만 인사는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러다 학과 행사가 있던 어제 그와 마주쳤다. 사실 못 알아봤다. 그 친구가 인사를 했다. 어?
놀라보게 달라진 그는 적나라하게 뚱뚱해졌다. 몸무게가 세 자리를 넘을 거라고 했다. 여전히 눈치가 좀 없었던 거 같긴 한데 뭐, 친구한테까지 눈치 볼 필요는 없으니까. 여전히 재학생이라는 그의 얘기가 신기했다. 뭐, 나도 대학원생이 되면 비슷한 거겠지만.
그렇게 거의 6년만에 대화를 나눴다. 18년도에도 딱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으니까. 해도 인사? 밥도 같이 먹었던 적은 없었던 거 같고.
행사 땐 또 다른 동기를 만났다. 이미 석사를 졸업한 친구였다. 그가 석사를 졸업할 때 난 학사를 졸업했는데. 그 친구와도 사실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인사 정도로 그치는 사이였고 진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6년 만에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대학원에 대해서, 이런저런에 대해서. 뒷풀이 참석할 거냐 등.
96학번부터 24학번 재학생까지 참석한 이번 행사에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자리에 무얼 하러 왔을까. 대학원에 원서를 접수하지 않았다면 나도 참석하진 않았을 텐데. 교수님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선배님에게 인사를 하고
극단 단원에게 인사를 하고, 선배, 후배와 인사를 하고. 나도 대학에 오고 졸업을 한 이상 하나의 인맥, 카르텔에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누군가가 봤을 땐, 결국 나도 인맥을 이용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난 그 인맥이 싫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글이 좋았다. 글만 보고 평가했으니까. 그 글을 쓴 사람의 인성도, 얼굴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글의 쓴 사람의 학교와 나이, 이름만이 보였으니까. 나는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동경일고등학교, 김기범(19세)이 적힌 그 수상자 목록을 좋아했다. 저기서 안동은 나뿐이겠지. 서울에 있는 경일이 아닌 안동에 있는 경일, 성수동에 위치한 그 경일 아니라고.
내 밑에 안양예고와 고양예고 학교가 적힌 것도 좋았다. 뭔가 이긴 거 같은 그런 기분에 착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게 그렇게 중요했을까 싶다.
명예교수가 이런 말을 했었다. 무언가를 하려 했던,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다고. 살다 보니까 등단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다고. 그냥 무언가를 열심히 도전했다는 그 자체가 멋진 거라고.
그는 그런 말을 남긴 채 학과에 1억을 기부했다. 사람이 저렇게 빛날 수도 있구나.
1억,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학과를 위한 온전한 장학금. 부러웠다. 난 대학원생이라 없겠지. 사실 대학원에 이래놓고 떨어질 수도 있다. 자대밖에 원서를 안 썼기에 나도 참 문제지. 떨어지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등록금 때문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학기마다 360을 내야 하기에. 아니면 열심히 알바를 하거나. 근데 아마 둘다 해야 할 거 같다. 아, 1억은 바라지 않고 장학금으로 등록금 절반만 내줬으면. 180 정도는 학생 하나씩 돌려도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