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요즘은 매일 일기를 쓰는 중이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습관도 아니고.
사실 습관이 되면 참 좋을 텐데. 문시인이 말한 적 있다. 일기를 묶었더니 책이 됐다고. 난 그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해 요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젠 그냥 키워드만 입력하면 이미지와 동영상, 글이 나온다. 나는 블로그 글을 하나하나 입력했었는데 이젠 맞춤형 글도 알아서 작성해준다. 시간이 배로 줄어들었고 편하다. 말투까지 이젠 알아서 고쳐준다.
그게 가능해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다.
과제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젠 인공지능의 힘이 당연해진 시대다.
그렇다면 일기도 생성형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무서워졌다. 그게 일기인가. 그런데 그 논리로 접근하면 글도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쓰지 않은 글에, 그림에 우리는 반응하고 감탄해야 할까. 감정에 어떤 반응을 얻었는데 그것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작품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 난 잘 모르겠다.
사람냄새를 좋아하는 건지,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젊은 꼰대인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 게임을 할 때, 사람이 아닌 컴퓨터랑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흥이 팍 식어버린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린 표절에 대해서 예민했다. 신춘문예 작품 중에도 당선 후 표절로 시비가 붙어 낙선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창작물이 아니기 때문인 당연한 결과였으니까. 그런데 인공지능의 힘을 빌린 작품도 그렇지 않을까. 생성형 인공지능의 원리는 결국 인터넷 상의 정보니까. 인터넷 상의 정보는 자신의 데이터가 아닌 인터넷의 것이니까.
어렵다. 어떤 말로도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듯 어떤 말로도 분류할 수 없는 결과물이 있다.
세상은 앞으로 더 그렇게 바뀌겠지. 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보는 많아졌고 사람의 신념은 가지각색이 될 테니까. 그리고 맞고 틀리고의 논제는 중요해지지 않을 거다. 이미 그럴지도 모르고.
대학원 면접을 볼 때였다.
교수자는 내게 겸양하다고 했다. 겸양해서인진 모르겠지만 준비가 덜 되어 보인다고. 일단 대학원에 도전한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난 준비가 되어있고 공부할 각오가 되어 있진 않았다. 그냥 일단 가보자, 이 마인드였다. 정확하게 내 모습이 간파 당하자 쪽팔렸다.
교수자는 이어서 말했다.
공부라는 게 하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막막할 때도 너무나도 많을 거라고.
부정할 수 없지. 사실이니까.
학사와 석사는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각오가 필요할 지도 모르는 거고. 그렇다면 정해진 답변은 여전히 하나였다.
해봐야 알지.
뭐, 이래 놓고 떨어지면 하릴없지만.
근데 내가 봐도 너무 보험을 안 들어 두었다. 대학원 떨어지면 내년엔 뭐하지. 사실 이건 막막한 건데.
뭐, 세상이 언제부터 내 뜻대로 되었다고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