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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에서

그냥 일기

by 수호

나에겐 일종의 루틴이 있다. 열차 안에서 일기를 쓰는 것. 정확하게 좀 더 말하자면 상행선 KTX를 타면서 브런치에 일기를 남기는 것이다.


이 루틴에서 깨지는 조건은 하나다. 피곤하거나 귀찮거나.

근데 예외가 발생했다. 누군가 내 브런치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친구는 당당하게 구독과 함께 카톡을 남겼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였다. 네이버 블로그에 일기를 남기던 친구가 일기를 남기지 않게 됐다. 이유는 부모님이 자신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뭔가 그 오묘한 감정선이 있다. 공공재이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혼잣말처럼 혼자만 듣게 되는 글이 되긴 싫고. 그리고 사실 수순이기도 했다. 언젠간 아는 사람이 보게 될 거란 걸 염두는 했다. 아마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것이 전에 만났던 친구일 수도 있다. 보고 있다면 건강하렴.


사실 오늘의 일기 주제는 이런 소소한 것이 아니다. 여행 직후이기 때문에 쓸 게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뭐부터 써야하지 하다가 사실 안 쓸 것 같기도 하고


3박 4일이라는 군대 휴가 같은 여행이 끝났다. 출국했던 게 어제 같은데 귀국을 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있으니까. 일본은 평화로운 나라였다. 단지 사람이 많았다. 관광지를 돌아다녔던 탓이겠지. 그 정도 인파면 토요일의 홍대랄까. 토요일의 서울 시내였다.


시민의식이 마음에 들었고 대체로 친절했다. 지하철은 굉장히 넓었고 길가는 깨끗했다. 하늘은 맑았고 파랐다. 뭐 익히 아는 그런 것들을 나도 보고 온 거다. 다음엔 조용한 도시를 가보고 싶다. 한적한 동네를. 너무 한적하면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냥 유유자적하고 싶달까.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오는 그런 느낌을 원한다. 뭐 나도 n회차 일본 여행자가 된다면 소도시도 가고 그러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첫 회차라 관광 도시 맛보기 같은 느낌을 하고 왔다.


여행은 여행인지라 생각보다 돈이 깨졌다. 확실히 국내가 돈을 더 아끼는 것 같긴 하다. 음.. 일단 언어의 장벽을 살짝 느끼기도 했다. 파파고가 있어도 돌아다닐 때 제약이 컸다. 구글맵은 생각보다 최신 업데이트가 안 되었고 구글맵에 나오는 맛집은 안 가는 편이 나았던 것 같다.


한 동안 일본 여행의 마음가짐 때문인지 인스타 알고리즘이 바꼈다. 요즘은 일본 여행 관련 릴스가 가득하다. 일본 편의점에서 사야할, 일본 여행시, 일본 가챠 등

일본으로 시작하는 여행 콘텐츠가 가득하다. 아마 한동안 날 계속 괴롭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짧게 갔다 온 탓인지 여행 휴유증은 없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땐 자꾸만 파란 하늘이 그리웠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 느낌 없다.


엇, 그런데 생각보다 열차에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계속 막차만 이용했던 탓인지 한적한 매력이 사라졌다. 계속 막차만 타고 돌아갔던 게 엄마는 걱정되었던 건지 일찍 올라가라고 했다.


분명 일찍 올라가는 17:57분 차인데, 밖은 이미 어둡다. 겨울임이 실감나는 건 항상 이 시간대인 것 같다. 저녁만 되면 잃어버린 햇볕을 그리워한다. 별로 파랗지도 않은 낮 하늘이 보고 싶기도 하고.


어제 귀국 후 본가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프로젝트의 팀장이었다. 전화를 한 이유는 사과였다. 일이 있어서 제대로 서류 작성을 하지 않았음을 사과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나왔다.


왜 저한테 말하세요?


상대는 내 말이 당황스러웠던 걸까. npc처럼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 사과한다고.

나는 한층 더 시니컬해졌다.


알면 됐어요.


그는 좋은 저녁되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나도 좋은 저녁되라고 되풀이했다. 그렇게 무의미한 전화는 끝났다. 전화가 끝나고 생각했다. 빌런이 되고 싶지 않은 빌런인 걸까.


사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자면 길다. 팀장은 버스 운전수가 아니었으며 승객이었고. 조원 다섯 명은 각자 빈 운전석을 보며 눈치 싸움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팀장은 눈치를 볼 생각도 없이 버스 맨 뒷자리에서 누워서 잠자는 중이었다.


우리는 서류 작성을 분배했으나 팀장 본인은 자신의 몫을 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어떠한 감정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냥, 그는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사과 전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꿍꿍이가 있기에?

27일에 한번 더 만나야 하는 대면의 장이 있기에?


모르겠다. 사실 더 적나라하게 쓰고 싶기도 하고 표현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귀국하자마자 집에 돌아와선 서류 작성을 했다. 작성을 하자 단편영화 촬영에 대한 파일을 정리했다. 미술팀으로 참여하게 되었기에 소품을 정리했고.


밀린 필메를 봐야 하는데 귀찮다. 블로그도 다시 돌봐야 하고.

사실 이 정도면 사서 고생하는 수준이기도 한데 모르겠다.


가방엔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이 가득하고

일본에서 사온 과자가 가득하다. 나는 옷을 사고 싶었다. GU를 가보고 싶었고 H&M에서 바지를 사오고 싶었다. 결론은 유니클로에서 4000엔을 썼다. 티 하나 반폴라 하나.


나는 일본에 옷이 싸다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옷을 챙기지 않았다.

물론 속옷은 챙기고.


겨울이라 다행이었다. 사실 롯백에서 봤던 H&M이 아른거렸다. 바지 핏이 마음에 들었기에 일본 본토에 가면 훨씬 더 싸지 않을까. 뭐 싼 건 맞았지만 내가 찾던 바지는 없었다.


유니클로랑 GU도 세일 중인 상품 잘 찾으면 득템할 게 많았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싼 곳은 싸다. 비싼 곳은 비싼 거지.


이만 말을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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