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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가는 길

그냥 일기

by 수호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다. 그렇다.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내 브런치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 수도 있다. 필자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브런치를 작성한다는 것. 그러니까 이건 내게 아침 일기가 되는 거다. 마침 글을 쓰는 중에 아침 해가 적나라하게 덤빈다.


눈뽕을 당해 눈이 살짝 어지럽지만 이미 익숙한 자판이기에 타자엔 문제가 없다. 난 타자가 빠른 편이다. 초등학교 컴퓨터 시간마다 타자 연습을 좋아했다. 왜인진 모르겠다. 유에스비에 스타크래프트를 담아가서 애들과 게임을 하기도 했다. 점심먹고 노라라 같은 사이트에서 아빠와 나도 했고 전쟁시대도 했다.


15일 출국을 위해 고향에 내려가며 대구 공항에서 이륙한다. 가족 여행이지만 가족 중 3/5만 간다. 아이러니한 가족 여행


그래도 절반보단 더 가는 거니까 다행인 건가. 여긴 매서운 추위가 덮치는 한국이지만 일본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였다. 오사카는 6도에서 10도를 유지하는 기온이었고 온도만 봤을 땐 가을에 가까운 날씨가 아닌가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영하의 날씨에 너무 익숙해진 걸지도 모른다.


패딩을 챙기지 않았다. 친구는 내게 왜 챙기지 않냐고 했다. 나는 오사카가 따뜻하다고 말했다. 뭐, 이것도 상대적인 거긴 하겠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30분에 역으로 출발했다. 씻지도 않고 그냥 선크림만 바르고 모자를 쓴 채 나왔다. 짐은 어젯밤에 싸놓았다. 출발하고 생각했다. 아, 맞다 치실.


뭔가 하나씩 놓고 오는 게 디폴트라 이젠 익숙하기까지 한다. 휴대폰의 보호 필름을 뗐는데 떨어뜨렸다. 이제 더 떨어뜨렸다간 폰을 바꿔야할지도 모른다. 전에 쓰던 폰도 떨어뜨렸던 탓에 강제로 폰을 바꾸게 됐다. 아직 더 쓸 수 있었는데.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하늘은 신기한 색깔로 바뀐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그 오묘한 톤. 그러다 몇 시간 뒤가 되면 영락없는 아침이다. 밝고 화창하고 봄 같은. 현재 시간 08:35분.


머리를 깎자 헤어 스타일이 애매해졌다. 흠. 모자를 쓰자 괜찮아졌다. 역시 짧은 머리엔 모자인가.

왜 짧아졌는진 사실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 보니?


짧다고 해도 뭐 그렇게 짧은 건 아닌데, 그 전에 비하면 확실히 짧아졌다. 앞머리만 더 짧게 자른다면 정해인 컷이랄까.


시국은 시끌벅적하다. 사실 정치에 대해서 무지한 편에 가까우나 그런 나에게도 소식이 자꾸 전해들려오니까.


일본에 간다. 일본에.

내가 가장 예쁠 때는 오늘이니까, 하루라도 더 예쁠 때 놀러 가야 하는 걸까.

일본의 한 시인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땐, 전쟁이 났다고 했다.

일본의 천왕 또한 어릴 때 겪은 전쟁 트라우마로 전쟁 반대를 주장했고.


넷플릭스 아케인을 보던 중 나온 인상 깊은 문장이 있다. 선과 악은 동전 같아서 항상 붙어 있다고. 이원성의 세계에 대해선 우리도 모르게 간과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라는 전형적인 것보다 그것들은 공존한다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도.


이 세계를 이해하기엔 아직 난 어리고 부족하다. 얼마나 더 많은 배움이 따라야 이해 가능할진 모르겠다. 점점 식견과 시야를 넓혀가는 중인데 사실 모르겠다.


아케인에서 빅토르가 말한 것처럼, 배울수록 무지했던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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