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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백도

그냥 일기

by 수호


차백도를 알게 된 건 한 달 전이었다. 신촌을 지나다 엄청난 줄을 봤다. 카페로 보이는 건물 앞에 줄은 눈대중으로 봐도 수십 명은 되어보였다. 오픈 기념으로 반값에 파는 중이었고 그 카페의 이름은 차백도


차백도는 파란 판다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푸바오의 인기 때문인지 판다는 가게 곳곳에 위치했고 인형탈 알바도 있었다. 파란 판다라, 공차 같은 느낌의 차백도는 중국에서 건너온 듯했다. 가게 점원 또한 중국인 같기도 했었다.


음료를 사자 쿠폰을 줬다. 12월 22일까지 기한인 반값 쿠폰.


오늘에서야 알게 된 건 두 번째 잔 50% 할인이었다. 건대역점에 위치한 차백도에 들렸을 때야 알게 됐다. 나는 6900원 짜리와 5700원짜리의 음료를 두 잔 샀다. 그런데 5700원 짜리 음료에게 할인이 들어갔다.


음료가 나오는 동안 오래 고민했다. 고작 1000원 차이인데, 아 근데 아까운데, 아 알바는 왜 저러지, 말할까, 그렇게 고민하다 음료가 나왔다. 마음 같아선


비싼 음료에 할인해주면 안 될까요?


하고 싶었다. 쿠폰엔 두 번째 잔 50% 할인 이외에 어떠한 작은 글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떤 음료가 할인 대상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아마 안 가게 될 것 같았다.

차백도, 파란 판다를 기억에서 잊어야지. 그런데 밀크티가 내 취향이긴 했다.


오늘 아침엔 블루클럽에 갔다. 저번주에 머리를 잘랐던 곳이었다. 뒷머리가 난잡한 걸 일본에 가서야 알아챘다. 할 말들을 머릿속에 정리하여 블루클럽에 입장했다. 사장은 나를 모르는 듯했다. 저번주에 여기서 머릴 잘랐는데요, 라며 서두를 떼자


사장은 손님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난 설득 당하고 돌아왔다(?)


무언가를 따지진 않아도 뒷머리를 수선 받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색해졌다. 그래, 뭐, 후드 달린 옷 위주로 입으면 되지. 겨울인데 뒷머리로 목 좀 따뜻하게도 하고. 안 되면 모자 쓰고 다니면 되지.


어라, 나 왜 자꾸 자위 중이지.


차백도도 블루클럽도. 나는 원하는 걸 얻어내지 못 했는데 계속 정신승리 중이었다. 심지어 제대로 정신승리를 즐기지도 못하는 타입인데 말이다. 자위를 얼마나 못하면 이렇게 일기에 푸념을 늘어놓고 있겠는가.


이상하리 만큼 돈 관련된 일이면 오래오래 잔상이 남는다. 예전에 만났던 친구가 그랬던 것 같다. 오빠가 이상해졌을 때가 있어. 돈을 많이 쓴 날


맞는 것 같다. 그때 당시 멍청한 계약으로 인해 300만원을 일시불로 끊었던 적 있다. 맞다, 사기였다. 난 내가 그런 것에 당할 줄 몰랐다. 그날 300이 자꾸 아른거렸다. 물론 지금도 약간은 그렇다.


사기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텐데. 그 당시엔 몰랐다. 한 6개월 정도 지나고 알게 된 거지. 그것도 반 년이란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미화되기도 했고.


사기의 수법은 점점 강화된다. 최근엔 무슨 사진작가를 사칭하면서 연락이 온 적 있다. 이상하다, 스냅사진 찍는데 예약금을 5만원 달라고?


나는 돈이 없다고 말하며 나중에 예약금을 내도 되냐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답장이 없었다.


내 주변에도 그 자칭 작가라는 사람이 접근한 듯했다.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갈렸다.

해보고 알려드릴게요, 사기인지 아닌지.

전 저한테 사기친 사람은 끝까지 쫓아가요.


둘밖에 안 물어봤는데 둘의 반응이 재밌었다. 그렇게 둘은 돈을 잃었을까.


아,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스무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5만원을 입금했다는 얘기를 순수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어, 그거 사기일 텐데?


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웃지 않았다. 네?


나도 이 세계에서 나름 짬밥이 쌓여가고 있었다. 촬영장에서 내가 겹지인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내가 품앗이를 좀 많이 하긴 했었다. 만나면 인스타 맞팔이 약간 문화 아닌 문화이기에 서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채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내 팔로우는 200 근처에서 625가 됐다. 물론 팔로잉도 그만큼이긴 하다.


오늘은 토익책을 팔았다.

참고서와 단어장, 그외의 잡다한 것들. 그렇게 5권을 25000원에 당근에 올렸다.

나는 왜 안 팔리는지 의문이었다.

새 거나 다름 없는 책이었는데


오늘에서야 팔렸다. 왜일까. 토익은 요즘 공부를 안 하나? 물론 나도 안 해서 할 말이 없다. 나는 졸업을 위해 토익을 준비했고 턱걸이를 했다. 정말 턱걸이였다. 600점 이상부터 졸업 요건에 해당하는 점수였는데 내 점수는 600점이었다.


아침에 블루클럽에서 지고 오는 길, 도서관에 들렸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어볼 생각이었지마 이미 누군가 대출 중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빌릴까 하다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책과 어떤 희곡을 빌렸다. 그 희곡의 작가는 배소현, 황나영, 박춘근 작가였다. 배소현, 익숙한 이름이었다. 물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보고 놀란 이름이기도 했었다. 와, 저 누나가 벌써?

했는데 아마 이 작가일 듯했다. 동명이인은 때때로 본의 아닌 오해를 낳았고


도서관에서 무인 반납과 대출을 이용하고 싶지만 비번을 까먹었다. 그래서 사서에게 부탁해야 한다. 문제는 사서가 날 안다는 거다. 안녕하세요, 대출이요.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뭔가 본의 아니게 뻘쭘해진다. 그 누구도 무해하지 않지만 내 성격이 유해할 뿐이다.

인사 후 사실 할 게 없기도 하고.


마을 도서관인 탓인지, 사서들이 날 기억한다. 대학 도서관이었으면 날 모를 텐데. 생각하니 근로를 했던 학교 도서관 사서는 날 까먹지 않았을까? 흠. 그때 그 사서는 신입사원이었다. 사원? 신입 사서라고 해야 할까. 국립대 육성 프로그램으로 인해 계약직(사서)을 늘렸고 그때 들어온 사서였다. 그러다 보니 나이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 가능했다.


내일은 촬영 날이다. 다른 촬영과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스태프라는 거.

아침 일찍부터 콜이던데 벌써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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