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유명한 첫 구절 중에 그런 게 있다. 나는 지금 부억 개수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기억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런 문장이었다. 나에겐 하나의 루틴이 있다. 열차 안에서 브런치를 쓰는 것.
지하철 열차를 뜻하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열차는 KTX 열차다. 상행이거나 하행일 때. 그러는 이유는 하나다.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잠들기엔 애매하기에. 그리고 생각보다 브런치가 시간이 잘 가기에..
원래 사실은 창가 좌석에서만 썼었다. 창가이기에 사람들이 잘 안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엔 통로 측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볼려면 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의 일기에 그렇게 관심 많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고.
정신없이 1월이 지나갔다. 사실 아직 1월이 다 지나간 건 아니지만 벌써 끝난 느낌이다. 설이라니. 설? 나는 명절이어도 별 느낌을 받지 못 한다. 그저 나에겐 학자금 대출만이 아른 거리고
촬영 마지막 날엔 렌트카 안에서 무릎을 박았다. 그 덕인지 아직도 아프다. 걸을 때 불편하기까지 한데, 오늘 아침에 보니 빨갛게 멍 들었다. 뭐에 제대로 찍힌 건가 보다.
편집 감독의 댁에 어젠 갔다 왔다. 외장하드를 들고.
2테라 외장하드를 구했고 데이터는 그 안에 전부 백업했다. 생각보다 용량이 많진 않았다.
열차 안에 오르면 익숙한 듯 잡지를 꺼낸다. 잡지를 보는 취향은 없지만 괜히 보고 싶다. 그런데 왠지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강릉 갈 때 읽었었구나.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나도 서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26살까진 몰랐는데 27살이 된 올해는 나이가 부쩍 실감난다. 나 20대 후반이구나.
본가로 내려가는 열차는 06:32분이었다. 상봉에 6:28분에 도착했고. 나는 분주하게 뛰었다. 열차를 놓칠까 봐 뛰었고 내 앞에도 어떤 분이 뛰고 있었다. 그는 헤매는 듯해보였고
안동 가는 열차냐고 물었고 길을 알려줬다. 그는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시간에 좇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냥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33분에 상봉에 도착한 열차다. 32분이었으면 아마 나도 놓쳤을 거다.
단편영화 후반 작업이 시작되자 돈이 깨지기 시작했다. 맞지, 돈이 깨지는 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게 맞는 거지. 편집에 돈이 나가고 믹싱에 돈이 나가고.
그래도 촬감한테 나름 나쁘게 보이지 않았는지 다음 작품 제의도 받았다. 근데 나는 이쪽을 해내기엔 체력이 너무 약하다. 두 번은 못 찍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보자 해가 뜨고 있다. 어제도 예쁜 하늘이었는데 오늘도 예쁘다. 이런 하늘을 난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설이라는 게 실감난다. 열차 안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평소엔 진짜 빈 열차인데 말이다. 그러니 새해 복 많이 받길. 이 글을 읽는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