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프로덕션이 끝났다. 1월 21일부터 24일까지 프로덕션이 끝났고 이제 포스트 프로덕션이 남았다. 프리 프로덕션을 끝내고 프로덕션이 끝나고 이젠 후반 작업이 남았고, 이건 무슨 만화 속 악당 같다. 프리 프로덕션은 우리 중 최약체였다, 프로덕션 형은 나보다 더 강하다고.
진짜 촬영팀이 멱살 잡고 끌고 가주는 현장이었다. 그 많은 장비를 세 명이서 감내하고 모든 걸 했으니까. 그래도 진짜 편한 분위기, 좋은 현장을 만들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게 나름 실현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런 현장은 다들 오래도록 기억해줬으면 한다. 물론 우리들의 열정이 실력에 비례하는 건 아니었겠지만.
다들 부족하고 서툰 것 투성이였다. 아마추어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배우 중 한 분이 말한 것처럼 아마추어니까 열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만회하는 건 열정.
정말 열정적인 스태프가 있었다. 그 친구의 부족한 경험과 실력이 열정으로 메워지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초심을 잃었었구나.
어젠 촬영이 17:40분에 끝났다. 09시에 모여서 거의 일과 시간에 맞춘 엔드. 바라시는 제때하지 못 했지만 뭐 이러쿵저러쿵 어쨌든 끝이 났다. 그렇게 간단한 저녁 식사를 배달로 해치웠다. 그렇게 약 21:30에 장비 반납을 시작해서 렌트까지 마치자 집엔 새벽 3시에 들어갔다.
새벽에 한강이 보이는 도로 위를 달렸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끝났다고 후련하지도 않고 끝난 것 같지도 않았다. 내일 또 촬영에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싶었다.
배우를 빛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태프들. 스태프가 되어 보니 다른 많은 것이 보였다. 배우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구나. 두 번째 촬영 날엔 사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밖에서 연출하는 내가 아닌 카메라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
그 생각이 들자 집중이 깨졌다. 세 번째 촬영 때부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내가 집중하자 좋은 샷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 단순한 진리를 세 번째 촬영에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3, 4회차 촬영 땐 대관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강했다. 시간과의 싸움은 무모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것 같달까.
새벽 세 시에 집에 들어가서 씻고 뭐하자 3:30분이 되었던 것 같았다. 이불을 덮었는데 자기 싫었다. 휴대폰을 만지자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곧 끄고 눈을 감았다. 아무 알람도 맞추지 않고.
12시 정도에 일어났던 것 같다. 아침은 사라졌고.
일어나자마자 연락들을 확인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고 글을 써야할 시간이구나. 근데 귀찮다. 편집 감독도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것도 귀찮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귀찮았다. 그래서 과자를 먹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맛있긴 했다. 그렇게 초코 과자를 먹고 나니까 빨래가 다 돌아졌다.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귀찮아져서 브런치에 들어왔다. 브런치에 일기를 작성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 밀린 일들을 더 미룰 수 있다고 할까.
일들을 자꾸만 미루자 그냥 멍해졌다. 빨래나 다시 널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