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공연을 보지 않은지 오래 됐다. 그래서 좋아하는 극단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보려고 했다. 매진.
음, 두산아트랩에서 하는 거라 그런가.
매진, 혹시나 하고 다른 작품들도 봤지만 역시나 매진.
두산, 인기 많구나.
도서관에서 22학년도 고1 3월 모고를 풀었다. 국어, 15번까지 풀다가 잠들었다. 이런 내가 학원 강사라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 고1 국어라서 쉽지만 어려웠다. 공부도 안 하니까 녹스는구나.
오전엔 디엠시에 갔다 왔다. 디엠시에 가면 뭔가 프로필 투어를 해야할 것만 같다. 눈에 보이는 큰 건물들엔 내로라하는 방송사들이 가득하다. 상암, 뭔가 방송국의 성지처럼 느껴진다. 간단한 숏츠를 찍고 오후엔 신당으로 넘어갔다. 유명하다는 칼국수 집에 갔지만 내 입맛엔 맵기만 했다.
힙한 소품샵이 몇 개 있어서 구경했다. 구경하는 재미는 좋은데 가격이 재밌질 않다. 그런 가게에 가면 나도 모르게 돈이 우선된다. 그러다 예일 브랜드를 봤다. 예일은 믿고 보는 친구라서 뭔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그렇지, 옷은 이런 금액이어야지.
그런데 자꾸 옆에 있는 혼다가 눈에 띄었다. 가슴에 혼다 로고가 크게 박힌 티셔츠. 롱슬리브라고 해야 하나, 블록코어에 어울릴 것 같은 스포츠 소채의 긴팔 티. 저 티셔츠를 보자, 낯익었다. 어떤 배우님이 입고 있던 옷과 같은 거였다. 그렇다면 저 혼다는 내년에 유명해지겠구만.
미래엔 교과서 자습서와 창비 문학 교과서 자습서를 펼쳤다. 펼치기 전부터 하기 싫었다. 생각하니까 이번 주가 첫 수업인데 난 애들 진도도 모르고 있었다. 방학이라 괜찮은가. 첫 수업엔 뭘 해야하지. 난 옛날에 뭘 했더라.
학원 강사는 뭐랄까. 잘 모르겠다. 내가 잘 가르치질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런지 어렵다.
이번 학원 원장은 뭐랄까. 잘 모르겠다. 면접 때만 봐서 그런 것 같긴 하다. 원장 선생은 가볍게 이런 얘길 했다. 선생은 두 가지 중 하나면 된다고, 재밌거나 카리스마 있거나.
맞는 말 같았다. 예전 조교 시절, 내 담당 선생은 수업을 재밌게 하셨다. 학원생들도 얘기했다. 국어는 000이지. 얼마나 재밌게 하면 저런 말이 나올까 싶었다. 참관한 적 없지만 애들의 반응이 확실히 좋았다.
나는 뭐였을까. 나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원장은 마저 얘길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애매한 거라고.
나는 애매한 선생이었다.
수강생이 자꾸만 줄어드는 걸 느꼈다. 그걸 인식했을 땐, 선생도 줄어들 때라는 걸 알았을 때다. 분명 5이 한 팀이었던 것 같은데 선생이 어느 순간 셋만 남았다. 나도 잘렸으니 이제 둘인가. 그러곤 학원도 사라졌다.
그 후론 학원에 복귀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없다기 보다는 잘 몰랐다. 이게 맞는지도 몰랐고 사실 아직 대학생이기도 했었고. 그러다 중계동에 어느 학원에 면접을 봤다. 계약서를 썼다. 출근 이틀 전이었나,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불안했다.
불안함은 틀리질 않았다. 미안하단 얘기였다.
사실 그 자리 자체가 대체였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구했던 시기도 여름 즈음이었고. 원장의 말에 의하면 학생들 부모가 반발이 크다고 했다. 학기 중에 선생이 바뀌는 거에 대해선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일이긴 했다.
그래서 나도 급하게 진도를 받고 준비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다, 사실 준비는 안 했던 것 같다.
요건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리적 조건이 나에겐 좋았다. 그 전 학원은 구리였기에(이전 후엔 남양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지금의 학원은 도보로 약 25분. 걸음이 빠른 나에겐 20분도 가능했다.
솔직히, 오랜만에 괜찮은 알바를 구한 것 같아서 너무 좋다. 학생들이 이제 관건인데, 뭐 그건 가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원 옆에 작은 카페가 있는데 일본식 푸딩을 판다. 가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좋았는데 양이 나쁘다. 이러면 가격과 수지가 너무 잘 맞았다. 그런데 맛있었다. 그리고 학원 옆에라 그런지 메뉴에 1리터 단위가 있었다. 역시 학원 옆엔 대용량이지.
처음 학원에 나갔을 때가 기억난다. 담당 선생은 아메리카노를 내게 건넸다. 1리터 짜리. 커피를 안 마시는 나에겐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너무 더운 여름이었다. 뭔가 한 모금 시원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난 한 모금의 유혹을 이기질 못했다. 그렇게 퇴근할 땐 화장실 변기에 커피를 버린 기억이 난다. 그 다음부턴 학생들에게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