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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결심

그냥 일기

by 수호


~할 결심, 이라는 말이 자주 보였다. 헤어질 결심, 이라는 영화 때문인진 잘 모르겠다. 버릴 결심, 버려질 결심, 용기 낼 결심 등 생각보다 자주 통용되는 말이 결심이기도 했다.


나는 작심결심이다. 결심은 단단히 먹는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결심만 단단히 먹기 때문에 삼일도 못 가는 듯하다. 그렇기에 나는 말을 뱉어놓는다. 뱉어놓은 말들을 하나씩 찾다 보면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를 찍자고 결심한 것처럼, 뱉은 말을 위해 영화를 찍었다. 후반 작업이 더 짜증 난다는 걸 체감하고야 알게 되었다. 영화가 왜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줄 알았을까.


도서관이 휴무인 월요일. 카페에 가려고 했다. 동네 카페엔 사람이 적어서 오래 있기 애매했다. 무인카페를 갔다. 고급진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먹는 느낌이었다. 무인이라 노트북을 몇 시간 두들겨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주말 동안엔 친구가 자고 갔다. 감기에 걸린 친구였기에 우리 집에 남긴 건 감기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아팠고 떠나간 그 친구를 떠올렸다. 감기에 걸린 탓인지 몸이 자꾸만 늘어졌다. 이대로 자꾸 늘어지다 보면 물처럼 흐느적 거릴 것만 같았고


카페에선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자꾸만 목이 앞으로 나가려고 하고 어깨가 굽어지고 허리 또한 굽어진다. 아, 난 카페와는 안 맞구나.


요즘은, 심심하다. 심심하다는 말이 뭐랄까, 진짜 심심하다는 말이다. 알바를 구해도 심심한 건 하릴없다. 피시방에 가서 롤이나 할까 하다가도 높아진 물가에 게임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수능특강 문학을 펼쳤다. 현대소설 1지문엔 이광수의 <무정>이 있었다. 내가 수능을 봤던 그때도 첫 지문이 <무정>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질 않는 게 있었고


<무정>의 수록된 부분은 2018년도 수특과는 당연 달랐다. 그 다음 지문은 이상의 <날개>


카페에선 아이스 망고 요거트를 시켰다. 맛 없다. 이게 무슨 맛일까 생각했다. 망고향이 나는 얼음물이랄까. 물이라도 좀 부으려고 하는데 무인카페엔 물이 없었다.


유튜브에 자취남이라는 채널이 있다. 자취하는 사람들의 집을 소개해주는 채널이다. 저기에 출연하면 돈을 줄까,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금액에 대한 말은 없었다. 요즘, 돈이 궁한가 자꾸 소일거리를 찾게 된다.


요즘은 진짜 잘 모르겠다. 원래 아는 것들이 많진 않았지만, 뭐랄까. 삶에 대한 적적함이 생긴 것 같다. 뭔가를 하고 싶지도 않고. 뭐.. 그런 번아웃 같은 거랄까.


번아웃이란 말이 없을 땐, 이걸 뭐라고 표현했을지 모르겠다. 그땐 뭐 우울증도 병으로 받아들여지질 않았을 테니까.


<장손>이라는 영화를 봤다. 왜 그렇게 유명한 건진 모르겠지만 인디그라운드에서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영화는 굉장히 한국적이었고 극사실적이었다. 이렇게까지 사실적일 줄은 몰랐고 굉장히 익스트림 와이드샷이 많았다. 보면서도 굉장히 영화적으로 느꼈고 인물은 바스트샷보다 더 타이트한 샷은 없었다.


사실 영화를 제대로 보질 않았다. 120분이라는 러닝타임도 그렇지만 나에겐 좀 지루했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길었다. 만약 이걸 영화관에서 봤다면 여운이 오래 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패밀리세일이라는 게 있다. 임직원들 전용 프로모션 뭐 그런 건데, 사실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그냥 뭐 그렇게 싼가? 그건 잘 모르겠는데 몇몇 세일은 정말 진심일 때가 있긴 하다.


쇼핑은 돈이 들어 아깝지만 아이쇼핑은 자유다. 내 시간만 할애하면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간다. 아까도 델리라는 문방구 세일 품목을 보며 갖은 상상을 펼쳤다. 수납함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에 장바구니까지 담고 회원가입도 마쳤지만 끝내 주문은 하질 않았다.


나는 결국 살 결심까진 있었지만 결정은 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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