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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서

그냥 일기

by 수호


3월과 함께 포근한 날씨가 찾아왔다. 포근한 날씨도 잠시 바로 비가 내린다. 그래도 뿌옇던 하늘이 맑아질 것만 같아 비가 싫지만은 않고


삼일절엔 만해 백일장에 갔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동국대를 둘러보니 세월이 더 실감 났다. 10대 후반에 왔던 곳을 20대 후반에도 오게 되었다니.


국어 학원에서 일을 시작한지 2주가 됐다. 내일이 되면 3주 차다. 뭘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갔다. 교과서를 보니 9개 였다. 수특을 빼면 8개다. 순수 교과서만 따지면 8개라니. 국어를 이러다 마스터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어문학을 배웠어야 했다. 문창과는 어문학에 대해선 안 알려주는데. 난 국문학사가 아닌 문학사인데.


그래서 하나씩 공부 중이다. 버겁다. 비문학은 여전히 난해하다. 인강을 보면서 공부를 하면 그나마 좀 나은데. 생각하니까 내 전공 공부는 또 언제 하나 싶기도 하고. 밀린 책들이 너무 많아져서 개강 후의 내 미래가 그려진다. 얼마나 많은 책에 좇길지.


오늘은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날씨 예보를 봤다. 외출 나가기 전의 시간은 오후 2시. 나는 이마트를 가려다 도서관에서 <마녀> 만화를 완독해 버렸다. 16시가 덜 된 시간이었지만 바깥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마트에서 세일을 한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새송이버섯은 평소에도 싸게 팔았던 것 같은데. 고기는 확실히 세일 하고 있었고.


비가 내리면 외출하기가 싫다. 그래도 타임어택을 도전했다. 비 내리기 전에 모든 걸 끝내자.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질 않는다. 계획대로 흘러갔으면 난 아마 서울대에 들어가질 않았을까.


수업을 할 때면 절실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 내가 정말 대충 알면 안 된다는 것. 확실히 알지 않으면 나 또한 수업에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사실 학교가 많아서 힘든 것보단 가방이 무거워서 싫다. 8개의 자습서를 책가방에 들고 다니는 건 시험기간 때도 허락할 수 없는 무게다. 한 교과서 당 지문 하나만 읽어도 8개의 지문이 된다고 생각하니 선생의 무게가 실감 난다.


수강 중인 학생 중엔 아역배우도 있었다. 정이 더 가기도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내 최소한의 태도인 것 같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긴 힘들어도 공정하겐 대우해야 하니까. 당연한 거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다. 나는 인색한 사람인 듯했고


통장에 남은 숫자를 본다. 30만원. 2월 달은 유독 짧아서 그런가 공과금을 내는 턴이 짧아진 듯하다. 이번 달부턴 월세도 내야 하는데. 그러면 30만원으론 이번 달을 버틸 수 없다는 걸 안다. 인생이 왜 자꾸 쉬워지려고 하면 하드해지는 건지.


이번 학기가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 난 또 학자금 대출을 빌려야 할 거다. 그렇게 차곡차곡 300이 600이 되고 다음 해엔 1000이 되고. 늘어가는 건 나이와 빚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어젠 충무로 일대를 걸어다녔다. 친구는 내게 고양이를 잘 찾는다고 했다. 이상하게 골목 곳곳엔 고양이가 있었는데 내 눈에만 먼저 들어온 것 같았다.


서울엔 고양이가 많다고 느낀다. 인구 밀도에 비례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지방을 생각하면 여긴 고양이가 확실히 많다. 이것도 이유는 모르겠다. 고양이가 많은 이유는 천적이 없어서일지, 아니면 인간과의 공생 관계를 잘 형성해서인지. 심지어 중성화 수술까지 함에도 고양이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3월에도 많은 고양이를 볼 거다. 4월에도, 5월에도 마찬가지일 거고. 여름이 되면 더위에 신경이 쏠려 고양이를 덜 보게 될 수도 있다. 냥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주거권이라나 뭐라나. 우리 빌라엔 고양이가 두 마리 산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곳이 냥세권일까.


나는 더워도 추워도 계속 고양이를 보게 될 거다.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고양이와 긴밀한 사이를 유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코지하는 사람은 또 아니고. 고양이 입장에서는 밥 주는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 그냥 지나가는 행인1 정도로 느낄 거고.


그 정도 사이가 좋은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한 관심이 있는 정도. 상처 주지도 상처 받지도 않을 사이.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고양이 같은 관계를 원한다. 배고플 때만 애교 부리고 다가와도 귀엽게 봐줬으면 하는, 그런 소박한 욕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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