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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가 죽었다

그냥 일기

by 수호


언젠가 날이 덥다고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이젠 추워졌다. 심지어 눈까지 내리고 있다. 모레면 4월인데. 산불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더 빨리 비가 내렸더라면 어땠을까 싶고.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럽다. 집회는 점점 커지고 있다. 404인의 작가가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집회 장소인 광장을 슬픈 광장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슬픈 광장에 나가고 있다는 말은


5.18을 다룬 황지우의 극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어떤 교수자가 말했다. 이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말에 당당해지기 위해서 광장에 나간다고 했다. 광장, 사실 잘 모르겠다. 국가 원수의 부재로 인한 자연 재해를 원인으로 말하는 건 어딘가 비이성적인 느낌은 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냥 경제도 사회도 안정적이 되길 바랄 뿐이고.


저번에 글을 썼는진 모르겠지만 빌라의 고양이가 죽었다. 내 자취방은 냥세권으로 빌라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하나는 얼룩덜룩하지만 치즈가 더 많이 있는 엄마 고양이와 그의 아들인 회색 고양이. 치즈와 고등어 모자는 사이좋게 지내는 중이다. 이제는 엄마보다 더 커버린 고등어를 보며


훌쩍 지나버린 시간을 체감하기도 했다. 그런 고등어가 3월 24일에 생을 마감했다. 분명 낮에만 해도 아기(사람)와 놀고 있는 모자 고양이를 봤는데 말이다. 고양이들은 아기에게 관심도 없었지만 아기의 눈은 고양이게 꽂혀 있었다.


약 23시에서 자정 사이의 시간에 집에 들어갔는데 어미 고양이를 만났다. 어쩐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고등어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고양이의 눈에서 처음으로 슬픔을 느꼈으니까. 어쨌든 어미 고양이는 내게 관심이 없었다. 밥 주는 사람과 안 주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아는 고양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를 계속 봤다. 그러곤 인도(내 주변)로 내려와서 천천히 걸었다. <고양이의 보은>에서 봤던 것처럼 무언가를 인도하는 느낌이었다. 따라가니 고등어 사체가 있었다. 너무 태평하게 누워 있어 자는 것처럼도 보였다. 순간적으로 느꼈지만 확신이 없었고 손을 갖다 대자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털에 닿은 손끝이 간지러웠다. 집에서 오래 씼었지만 여전히 간지러웠고.


소방서에 전화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소방서는 아닌 것 같았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관할 구청에 연락하라고 했다. 02-120을 누르자 당직이 전화를 받았다. 00:30분에 접수된 신고. 그러곤 다음 날 08:30에 수거 완료라는 문자가 남겨 있었다. 일처리가 굉장히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학우가 말해줬다. 고양이 수거할 때 그냥 봉투 하나 들고 와서 담아간다고.


그렇구나. 빠를 수밖에 없구나.

당직은 전화에서 얘기했다. 고양이 사체 사진 남겨 드릴까요?

네?

사진 징그러울 수도 있으니까 빼드릴까요?

아니요. 넣어주세요.


그렇게 답했지만 사실 연락온 건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다. 고등어가 화장되었는지 어떤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지나갔고.


고등어가 죽고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어미 고양이는 보이지 않다. 3일 뒤 만나게 되었다. 어미 고양이는 날 보며 울었다. 고양이의 울음은 짖는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했고 소리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야옹, 하고 울었다. 처음이었다. 날 보면서 우는 건. 두 번 울고는 눈을 피했다. 할 말이 없던 나는 미안하다고 중얼거리곤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 후로 어미 고양이는 보질 못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 다섯을 낳았는데 빌라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세 마리는 어디론가 간 듯했고 고등어가 치즈 두 마리만 빌라에 남게 되었는데 치즈 새끼는 발을 다쳤다. 그 발이 화근이었는지 어느 날부터 보이질 않고 고등어만 남게 되었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3-5년 정도라고 했다. 고등어는 약 1-2년 정도를 살았다. 새끼들 중에서도 유독 호기심이 강했던 친구였다.


고등어가 죽은 날, 빌라의 급식소엔 모르는 치즈냥이 있었다. 사료를 먹고 있던 모르던 치즈냥과 고등어의 사체가 너무나도 깨끗했다는 점. 죽음의 출처는 여전히 모르지만 그날 고등어를 만졌던 손길을 기억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졌던 털은 부드러웠고 미적지근했다. 간지러웠던 손끝은 그날 후로 느껴지질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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