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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학원 생활

그냥 일기

by 수호


슬기롭게 보내는 중인진 모르지만 어떻게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잘 살고 있다의 기준도 사실 잘 모르겠다. 학원은 매주 새롭다. 이번엔 나를 성대모사(내지 흉내)하는 친구가 생겼다. 사실 내 목소리의 객관화가 정확하게 되어있질 않아 얼마나 비슷한진 모르겠다. 그런데 학생들이 웃는 거 봐서는 비슷한가 보다.


내 톤이 신기하다고 했다. 진정해요, 고마워요란 말을 많이 쓰는데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고 말하긴 한다. 매번 감정을 담을 수도 없다. 중1 수업에서 유독 많이 쓰는데 수업 당 10번 씩은 말하는 듯하다.


학생들은 재잘재잘 거린다. 뭐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 많은지. 그리고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볼에 꿀밤을 때려서 맑은 소리 내기를 2025년도에 하고 있었다. 저건 누가 관습을 알려주는 건가. 고등학생만 올라가도 저런 건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유독 중학생 때 시도하곤 했다.


여자애들은 장기자랑으로 춤 연습하기 바빠 보인다. 그리고 춤에 진심이다(?) 내가 학생 때도 장기자랑 팀은 되게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점심시간마다 연습하고 그랬던 것 같고. 오늘은 김포 공항에 갔다. 어디 떠나는 건 아니고 배웅이었다.


마석고? 학생들이 공항에 가득했다. 다른 학교도 있었던 건지 학생들이 엄청 많았다. 그중엔 여학생들도 당연 많았는데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꾸민 게 보였다. 수학여행은 아마 학교 다니는 날 중 가장 최고로 잘 꾸며야 하는 날 중 하나일 거다.


학원에서도 실감 나는 건 중1 여학생이 화장을 하는 거였다. 요즘은 초딩 때부터 한다고 하던데. 사실 화장을 한다, 이것보다 화장할 시간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아침 잠 부족하지 않나. 학교 가서 화장을 한다고도 하는 것 같은데 뭐 신기할 뿐이다. 아침에 씻기만 해도 힘든데.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학생들이 나한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뭐, 문제는 나도 익숙해졌다는 거고. 중1 반은 학생 수도 많을 뿐더러 남자보다 여자의 비율이 더 많은데, 당연스럽게 이름을 외우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름을 잘 안 부르는데, 한 여학생이


쌤, 제 이름 뭐게요?


무시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컸다. 쳐다 보면 안 되는 거였는데. 급하게 출석부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


알고 있어요


라고 거짓말 했다. 이어서 학생은 쌤! 말해 봐요! 했다. 끈질긴 녀석,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잠드는 주제 왜 하필 이 순간에 깨어있을까.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아이들의 반응은 잠잠했다. 내가 맞추나 못 맞추나 모두가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급하게 짱구를 돌렸고 칠판에 초성을 적었다. ㅈㅈㅇ, 됐지?

올~ 하는 반응과 함께 그 친구는 잠들었다. 아, 생각하니까 어이 없네. 중1 학생들은 1초라도 더 몰래 폰을 만지기 위해 고민하고 고행하는데 놀라울 만큼 내 눈에 잘 보인다. 정확히는 폰이 보이진 않지만 무언가에 집중하는 옆태가 너무 잘 보인다. 사실 휴대폰을 거둬도 낙서를 하거나 자거나 해서 효과는 비슷한 것 같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면학 분위기.


고딩들은 숙제를 안 해와도 별로 신경 안 쓴다. 해오는 애들만 봐주면 된다. 뭐, 슬프지만 하기 싫다는 애한테 억지로 시키겠는가. 그런데 중딩은 예외다. 규칙을 깨뜨리면 규칙을 지키는 아이들이 바보가 되는 것처럼 된다. 이게 법과정치할 때도 배운 개념이었는데, 생각보다 중딩들한텐 중요한 게 적용된다.


쌤, 얘 폰 만져요.

쌤, 얘 숙제 안 해왔어요. 혼내주세요.

쌤, 얘 혼내세요.


서로의 잘잘못을 너무 잘 지적한다. 난 혼내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사실 검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숙제 해오든 안 해오든 별 관심도 없다. 근데 이제 해오는 아이들이 자꾸 의지를 잃어가는 게 보인다. 방법을 모르겠다. 나도 교육학을 좀 배웠어야 하는데.


어려운 것 투성이인 학원 생활이다. 사실 대학원 생활만 해도 너무 벅차다. 과제가 너무 많고 그럼에도 나는 자꾸 나태해진다. 시간이 나면 딴짓을 하고 놀기 바쁘니까. 그것도 좀 건강하게 밖에서 놀고 친구랑 놀면 문제 없는데 자꾸 폰, 노트북, 게임이랑 놀려고만 한다.


3월이 끝났다. 잘 모르겠다 여전히. 어떤 게 맞고 틀리고도 모르겠고. 3월 동안은 촬영을 한 번 했다. 점점 연기와는 멀어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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