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ktx에 타면 항상 하는 게 있다. 일단 객석에 있는 미니 탁자(?)를 꺼낸다. 그 탁자의 끝 부분에 노트북을 거치한다. 그러곤 브런치에 들어가 일기를 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독자가 많은 어떤 사람이 내 글들에 좋아요를 가득 누르고 갔다. 구독자가 5천 명이라, 나는 10명 정도니까 흠. 뭐, 내가 할 일은 시간을 축이는 일이다. 기차 안에서의 2시간은 애매한 시간이다. 사실, 내가 그냥 기차 안에선 잘 잠을 못 잔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에선 잘 자는 편인데 기차는 그게 잘 안 된다. 근데 이것도 예외는 많다. 그래서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2시간 거리면 사실 그냥 깨어있는 편이다. 그 동안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생각보다 이럴 시간이 잘 없기도 하니까.
두산아트센터에선 생츄어리 시티?라는 연극이 올라가는 중이다. 사실 별 생각 없고 아는 분이 참여하는 공연이라 인스타에서만 본 정도였다. 그런데 ktx메거진 잡지에 그 공연 소개 글이 있었다. 짧았지만 뭔가 수준 높은 연극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표를 알아 봤는데 정가가 35000원. 흠. 배우표 달라고 할 만큼은 안 친한데. 그냥 다음에 봐야겠다.
아침 거의 첫 차에 가까운 열차 안은 조용하다. 한적하고. 막차도 마찬가지다. 대각선에 위치한 어떤 승객은 누워서 갔는데 하필(?) 옆자리에 승객이 탑승했다. 사실 다른 두 자리 빈 좌석도 많은 상태라 그 승객도 안일했던 것 같다. 탑승하려던 승객은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었고 고민을 조금 하더니 자는 승객을 깨웠다. 화들짝 놀라는 승객, 아주머님이었다.
요즘은 사실 학원, 대학원 말곤 일상이 잘 없다. 후반 작업 중이던 단편영화는 음악 작업까지 끝났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 보이는 듯하다. 이래저래 하다 지연되긴 했지만 뭐. 학원에선 매번 일상이 재밌다(?) 쓸 게 가장 많기도 하고.
중학생 친구들은 말이 많다. 할 말이 많은 건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하필 내가 그 앞을 지나간 건진 잘 모르겠다. 어떤 한 아이는 내게 고마워해달라고 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뭐를 해달라고?
고마워요라고 해주세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간 쌍둥이 남학생 친구. 사실 쌍둥이라서 그 친구가 동생인지 형인진 잘 모르겠다. 구별할 방법이 점이라고 했는데 허헣. 난 눈이 좋질 않아 사람을 얼굴로 외우기보다는 스타일과 느낌으로 외운다. 그래서 난 비슷한 느낌을 안 좋아한다. 구별이 안 된다고 느껴서일까.
요즘은 그래도 각자의 개성이 더 드러나는 느낌이다. 2018년, 대학교의 신입생일 때만 해도 한국 사회는 아직 덜 개성적이었다. 자세히 그때를 떠올려보면 남자는 투블럭, 여자는 시스루컷이었의 헤어가 많았고 겨울철 많은 사람들이 검정 롱패딩을 입었다.
그때 간호조무사 실습하던 분과 나눴던 얘기가 있다. 사람 사는 것과 생각은 생각보다 비슷했던 것 같다. 조무사 실습 중이던 쌤은 남자들이 구별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 똑같은 머리라고. 나는 여자도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병원에서 간호사 쌤들을 구별하긴 정말 어려웠다. 남자는 최소한 적어서 구별이라도 됐는데.
카톡이 왔다. 민방위. 그런데 난 대학원생인데 학생 예비군 아닌가? 뭐지.. 직접 신청해야 하나.
고민이다. 민방위 세 번과 학생 예비군 한 번.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이 낫긴 한데 사실 그냥 안 가고 싶다. 이번에 산불로 인해 피해사실확인서를 뽑으면 예비군 면제(?)를 해주는 것 같았다. 면제가 아니라 열외(?)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이기적이었다. 부모님이 걱정이 안심으로 바뀌자 예비군 안 가도 된다는 행복 회로가 돌아갔으니까. 나에겐 산불보다 내 개인적인 이기심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런데 피해확인사실서를 발급 받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집은 산불로 타버렸지만 빈집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람이 안 살아도 집이 탔는데?
공무원 피셜로는 빈집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다. 정부에서 피해 가구에게 조립식 집을 지어주기로 했기에 빈집은 피해 사실로 인정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려웠다. 부동산에 대해선 피해 사실이 입력이 안 되는 건가.
최근에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영화였고 그 속엔 전쟁으로 인해 형제인 진석과 진태는 생이별한다. 할아버지는 참전 용사셨다. 호국원에서 본 할아버지에겐 하사라는 계급이 붙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진태는 하사였다. 그런데 아빠는 전쟁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해주질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얘길 안 해주신 걸까. 아니면 나에게까진 굳이인 걸까.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가 적힌 모자도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없는 건지 안 쓴 건지. 사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잘 없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시기도 했고. 그런데, 어릴 때라고 해도 13년 전이라고 생각하니 오래된 것 같지도 않다. 기분 탓인가. 국가에서 할아버지에게 어떤 지원을 하고 도움을 줬는지 난 잘 모른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집이 탔어도 국가는 피해라고 인정하질 않았다. 당연한 거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아포칼립스 수준에 치달았던 안동 시민들에게도 피해 사실은 인정되질 않았고.
물론 이런 인명적인(건강) 위협을 피해로 수치화하기엔 너무 많긴 할 것이다. 재난특별지역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최근에 항공권 특가를 봤다. 청주 공항의 처음 들어보는 항공사였는데 울란바토르 행 왕복권이 18만원이었다. 일본의 후쿠오카나 삿포로도 10만원대였다. 청주 공항이 아니었다면 혹할 뻔했다. 뭔가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많이 지쳤다는 걸 느꼈다. 대학원 진도는 따라잡기 힘들고 학원 생활도 지쳤던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중학생은 여전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자유학기제라 시험을 안 치기까지 해서 수업의 필요성을 더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냥 애들이 어떻든 진도를 나가면 나도 편한 건데 자꾸만 욕심이 난다. 뭔가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기왕이면 도움이 되는 내용을 알려주고 싶고. 그런데 사실 수업도 안 듣는 애들이 뭔 얘길 들을까 싶기도 하고.
이렇게 뭔가 끄적이고 웹툰도 보고 하다 보면 상봉에서 어느새 영주까지 온다. 영주 다음은 안동.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불로 인해서 고생이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