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이틀 전이었던 것 같다. 주변 공원엔 고양이 세 마리가 있다. 고등어, 치즈, 하얀 턱시도를 멘 검정 고양이.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길래 다가갔다. 그때 난 장바구니에 조기 구이가 있었다. 그때문일까 고등어는 자꾸만 내 장바구니를 엿봤다. 손도 대길래 장바구니를 뺐었더니 내 손을 때렸다. 냥냥펀치에 맞은 건 처음이었다. 손등에 고양이 발톱 자국이 살짝 남았다.
그렇게 고등어는 생선 냄새 탓인지 내 주변에 머물렀다. 그때 멀리서 어떤 여자아이가 "고등어"하면서 달려왔다. 익숙한 듯 가까이 다가와 고등어의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 알려줄 거 있는데.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말을 했다. 뭔가 안 받아주기엔 무안해서
뭔데요? 했다. 그러자
전데요.
무슨 의식의 흐름일까 당황했다.
뭐가요? 라고 반문하자 그 친구의 표정에도 ?가 떴다. 서로의 얼굴엔 ?가 가득한 듯했고
저 고양이 알러지 있다고요.
아, 알러지가 있다고.
그 친구는 그렇게 쿨하게 떠났다. 오해를 해명해서 가는 걸까. 아니면 고양이 알러지가 뒤늦게 걱정되었을까. 아마 고양이 알러지라는 건 털 알레르기를 말하는 거겠지. 고등어는 우리보단 여전히 내 장바구니가 탐났고.
오늘인 27일,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여전히 아침, 밤으론 일교차가 심했고. 봄을 알리듯 길엔 여러 꽃이 폈고 거리엔 꽃가루가 날렸다. 학원에선 반팔, 반바지의 여름을 맞는 듯한 옷차림의 친구들도 보였다. 중1 친구들 중엔 쌤, 여자친구 있어요? 묻는 질문이 있었다.
어쩌다 그 질문이 나왔는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있어요, 라고 하려고 하려는데 옆에 남자 아이가 반문했다. 저 얼굴을 봐, 없겠어?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런 외모지상주의라니. 이건 내가 어릴 때부터 절대 바뀌지 않는구나. 난 내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얼굴로 왕따를 당한 적은 없던 것 같다. 슬픈 현실이지만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외모로 왕따나 차별을 받는 친구가 하나씩 있긴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잘생긴 친구한테 호감을 더 느꼈던 것 같다. 외모가 뭐라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헤어졌다. 사실 예고된 이별이었다. 서로가 말을 안 할 뿐이지 꽤나 쌓였다. 그게 몇 달이나 간 거 같긴 하다. 사실 관계로서는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고. 이제 학원에 가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실대로 말하면 그것대로 귀찮아 지는데.
처음 입시 학원에 일을 할 때였다. 그땐 조교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그때 당시 만나던 친구와 헤어졌던 것 같다. 아닌가 일주일 정도 텀이 있었나. 모르겠다. 그냥 예고된 이별을 말하기까지 통화는 약 30분이 걸렸던 것 같다. 통화의 주된 내용은 침묵 혹은 바람 소리였다. 주변 소리가 계속 들렸다. 서로가 별로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냥, 마지막 말이 기억난다. 잘 지내.
네가 잘 지냈으면 해.
잘 지내, 라는 말. 이렇게 타이핑을 하자 마음이 아픈 것 같다. 잘 지내라는 말은 살아 있는 친구에게 쓸 수 있는 말이라서 그럴까. 그래도 어딘가에서 살아있으니까. 목요일 강의에선 그런 얘기가 오갔다. 사별과 이별은 뭐가 다를까. 둘다 평생 못 본다는 동일성을 둔다면 말이다. 그때 얘기한 건 가능성의 바깥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죽음은 현생과 구별되는 거고 서구에선 죽음은 내세일 뿐이었다. 현세만큼이나 내세도 중요한 기독교관이니까.
우리에겐 가능성의 일말도 없다는 것. 나는 그 얘길 들으면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이 없다는 것. 헤어져도 우린 같은 시간을 살아가니까. 이때까지 만난 연인들이 지금도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7일인 오늘이 지나면 28일을 맞을 거다. 내가 먹어본 맛있는 음식도 그 친구들이 언젠간 먹을 거고.
최근엔 조현철 감독의 <너와나>를 봤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의 은유였다. 보는 동안 힘들었다. 수학여행 전날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 두 친구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보여서. 어떻게 될지 알아서. 한국에서만 통하는 문법이었다. 영화 속 둘에겐 아니 정확히 한 명에겐 내일이 없었다. 더는 손을 잡을 수도 서로의 집에 갈 수도 발뒷꿈치에 각질도 볼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내가 먹은 음식을 예쁜 풍경을 더는 공유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게 되니까.
영화를 보는 동안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두 번 끊어서 봤다. 하루가 살아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 일상은 최악인 것 같다. 매너리즘에 빠진 건지 번아웃이 온 건지. 목표도 없다. 유튜브 제작도 포기했다. 몇 달을 고생해서 협업했지만 사실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다. 그 채널이 잘 된다면 뭐, 나에겐 혜안이 없는 걸 테다.
그러니까 오늘 난 두 가지를 버렸다. 잃은 건가. 사실 자의인가 타의인지도 중요한 말이지만 그게 중요한가. 어쨌든 사라졌다. 형식상이든 명목상이든.
https://www.youtube.com/watch?v=dP8gC3FYpis&list=RDKHbg4y6EiQE&index=27
마침 나오는 노래도 애쉬 아일랜드의 <굿바이>다. 예전에 만나던 친구랑 코노에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내가 노래 가사를 "헤어지자 우리" 부르자 그 친구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음치인 탓에 노래가 아닌 대화로 들렸던 것 같다.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