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5월 5일과 6일 동안 천안을 갔다 왔다. 연휴 기간 동안 여행을 간 건 아니고 나사렛 대학교 학생의 촬영이 있었다.
5일에 콜타임에 맞춰서 출발했다. 네이버 지도로 찍어보니 약 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석계역에서 1호선을 쭉 타고 쌍용역까지 지하철은 무지하게 멀었다. 나는 청량리역에서 급행을 갈아탔다. 사건은 여기서 시작한다. 급행에 오르고 어느 때처럼 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꺼냈다. 매주마다 읽는 게 과제이니 항상 가방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래도 이젠 9권인 갇힌 여인 편을 읽는다. 끝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중 배가 아팠다. 석계역에서 사 먹은 옥수수 1봉지가 생각났다. 맛있게 먹었지만 건강하진 않았나 보다. 그런데 급행은 놓치면 간극이 컸던 게 기억난다. 특히 신창행은 잘 없었다. 고민이 됐다. 그때의 난 그 선택을 후회한다.
잠에 들었다. 자고 나면 도착해 있길. 그리고 배가 안 아프길.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별거 아니라고 여겼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성균관대역을 향해 달려갈 때 잠에서 깼다. 그러곤 배가 아팠다. 급행인 탓에 역을 세 개나 건너 뛰고 다음 역인 성균관대역에 내릴 예정이었다. 열차는 나의 배아픔과는 별개로 정말 잘 달려나갔다. 지나치는 금정역을 보면서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곤 속이 매스꺼웠다. 토할 것 같았다.
성균관대역에 어떻게든 내렸고 바로 출구로 달려갔다. 화장실이 제발 가까이 있길. 다행스럽게도 개찰구를 나가자마자 바로 보였다. 살았다,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2개의 양변기 칸이 이용 중이었다. 속은 이제 괜찮아졌지만 급똥은 괜찮아지질 않았다. 다른 화장실을 향해 최대한 달려갔다.
다행스럽게 멀지 않았고 누군가 이용 중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정말 그 순간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확한 표현이었다. 화장실을 보고 정말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용 중일 중이야.
그렇게 다음 천안행 열차를 타고 갔다.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콜타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던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건가 싶었다. 다시 확인하자 콜타임이 바꼈었다. 하핳.
천안역에 내려선 나사렛 대학교까지 택시를 탔다. 내 돈.
촬영은 수월했다. 연출 감독은 외주를 고용했다. 좀 신박했다. 120주고 외주 업체를 고용할 줄이야. 하긴 영화는 돈 쏟아붇는 게 최고지. 세 명의 외주 촬영팀은 능수능란했다. 그렇게 첫 날은 가볍게 끝났고 난 주변에 숙소를 예약했다. 도저히 3시간 편도로 6시간 왕복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뜌즈르에 갔다. 천안의 성심담이라길래 궁금했다. 사람이 정말 많았고 빵집 자체는 크게 특별하진 않았다. 그런데 빵돌가마마을이라는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데 마을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적합했다. 컸다. 그리고 사실 내가 빵에 대한 미식이 없다. 빠리빠게트 빵과 유명한 빵집의 빵 맛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그래서 뜌즈르에서도 유명하다는 돌가마빵(?)을 먹었는데 잘 모르겠다. 거북이빵은 품절이었다.
주변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한정식당밖에 없었다. 한 곳은 한 명이라 안 받아줬고 보리굴비 집은 받아줬다. 그런데 돈을 더 내라고 했다. 2인분부터 기준이라고. 알겠다고 하고 굴비 반마리 정식을 시켰다. 16000원인 메뉴판의 가격이 계산할 땐 19000원이 됐다. 사실 금액을 생각하면 괜찮지 않지만 맛은 있었다.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음식이 단 편이었다. 그런데 인공적인 단 맛보다는 과일 같은 단 맛이랄까. 개인적으로 이런 단 맛이 내 취향은 아닌데 나쁘지 않았다. 돼지감자 삶은 물이 인상적이었다. 먹고 난 후의 후식인 오미자차도 괜찮았고.
다시 숙소로 가려고 버스를 타려는데 정류장이 신기했다. 정거장 표시가 없지만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거였다. 그리고 실제로 버스가 멈춰섰다. 신기한 버스정류장이었다.
다음 날엔 숙소 주변 중국집에 갔다. 리뷰가 많고 유명한 곳이었는데 사람이 많았다. 인상적인 건 짬뽕이 뚝배기 그릇에 나왔다는 것과 후식이 있었다는 거였다. 차돌 짬뽕의 가격은 14000원. 후식은 딸기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먹고 나사렛대까지 걸어갔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정말 한적했다.
스파이더맨이 건물에 메달려 있었다. 어떤 가게일까 궁금했는데 병원이었다. 병원과 스파이더맨의 관계를 생각하며 걸었고
나사렛대학교는 예뻤다. 학교가 일단 웅장했다. 역시 건물은 크고 봐야 돼. 촬영은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첫 날과 달리 다른 배우들과도 친해졌다. 한 친구는 작년 다른 촬영장에서 만났던 사이였다. 심지어 자기 룸메가 나와 촬영을 같이 했던 친구이기도 했다. 예대 연기과를 나온 친구였는데 작년 생각이 났다. 세상은 좁았다. 다른 시니어 배우의 경우 안동 출생이라고 했다. 고향 동문까지 만나다니.
대학원에도 안동에서 온 선생이 있었다. 세상이 참 좁을 뿐이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 자정이었다. 수원역까지 어떤 배우가 태워줬지만 그럼에도 먼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몸이 피곤했고 내일 오전 수업에 늦잠 자는 게 아닌가 걱정 됐다.
걱정과 다르게 08시에 눈이 떠졌다. 왜지? 난 더 자고 싶은데.
오전 강의를 듣고 미팅을 진행하고 편집실에서 색보정 각을 보다 포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구나. 오늘 저녁엔 학원 회식이 있다. 출근 날도 아닌데 학원을 가야 하다니.
이번 천안 촬영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난 왜 촬영을 하고 싶을까. 사실 학생들 촬영은 안 해도 무관하다. 사실 포폴로도 별로 도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왜 천안까지 가서 찍은 걸까. 돈도 당연히 안 된다.
난 그냥 촬영이 좋았던 것 같다. 촬영장에 가면 배우가 있고 스태프가 있고.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이 내 또래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고 자위하고. 진짜, 이런 현장에 가면 열심히인 배우가 한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귀감이 된다. 정말 노력하는 게 보이기도 하고 대단하고. 나는 그만큼 노력하는가? 나는 놀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과 반성도 하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꿈을 좇는 사람을 보면 괜히 위안이 된다. 나 혼자만 발버둥치는 건 아니구나 하는.
다들 공연도 촬영도 열심히 하는데, 나는 열심히 하는 게 맞을까.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면 지식이 쌓이는 지적인 기분이 좋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런 타입이긴 했다. 지식을 쌓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긴 한다. 과제가 없으면 뭔가 성과를 내지도 않기에 데드라인을 강제로 만들어줘야 하고.
그런데 결국은 다 돈으로 귀결되니까.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강제로 인간관계가 좁아졌다. 진짜 활동범위가 집, 도서관, 학교, 학원 끝이다. 여자친구가 있을 때는 어딘가를 주마다 가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천안 일정에선 여행을 겸했던 것 같다. 그냥 맛난 거 먹고 카페 가고 뭐 구경하고 자면 그게 여행이지.
그런데 혼자는 여전히 제약이 많았다. 맛있는 음식은 왜 항상 2인분부터일까. 그래도 여행인데 편의점 가서 밥 먹으면 슬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