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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끊겼다

그냥 일기

by 수호


월요일 날 와이파이의 연결이 끊겼다. 그 동안 도둑처럼 iptime 와이파이를 쓰고 있었는데 인터넷 연결이 끊기고 이틀이 지나 비번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현재 약 5일 동안 강제 인터넷 디톡스 생활 중이다.


지금은 도서관에 와서 일기를 끄적이는 중이다. 아무래도 인터넷이 안 되니 제약이 크다. 휴대폰도 데이터가 얼마 남지 않아 덜 만지게 된다. 내 대각선 방향에는 어떤 학생이 자꾸만 피아노를 치는 시늉한다. 처음엔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인가 했는데 쓱, 곁눈질로 보니 악보를 그리고 있었다. 피아노 치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 피아노였던 것 같다. 얼마나 열심히인지 눈길을 주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피아노 치는 게 보인다.


비가 그치자 날씨는 화창하고 좋았다. 다소 덥기까지 했다. 어젠 백예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그친 날씨, 습하지만 바람이 부는 시원한 날과 백예린의 스퀘어는 완벽했다. 가을을 떠올리게도 하고 축제의 끝이라는 것도 실감나는 목소리였다. 물론 난 축제를 즐기진 못하고 산책을 겸해 몰래 구경 나온 정도였다.


비가 어젠 너무 심하게 내려서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공연 시간이 되자 비도 그치고 학우들도 즐기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어떤 반응일까 궁금하여 에브리타임에 들어갔는데 생각한 것보다 반응은 좋질 않았다. 흠..


총학생회로 보이는 어떤 여학생은 다리 깁스를 했다. 그 상태로 경봉을 든 채 자꾸만 운동장에서 관리 중이었고 그 모습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분명 비 때문에 신발도 양말도 다 젖을 수밖에 없을 텐데 불편하지 않을까. 다리를 살짝 절뚝이는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대견했다.


와이파이 공유기에 대해 알아보는데 여러 조건이 많았다. 휴대폰 요금제와 비슷하구나. 챗지피티한테 물어보자 도움이 많이 됐다. 대견스러운 녀석. 상담원과 얘기할 템플릿까지 만들어준다. 아정당 광고가 많길래 궁금했는데 뭐 그렇게까지 친절한진 잘 모르겠다. 사실 친절은 모르겠는데 실시간 카톡 상담이라면서 실시간으로 해주질 않는다.


딜라이브와 lg 중에서 고민 중이다. 헬로비전은 노원구에 설치가 안 된다고 하고 딜라이브도 지역마다 다르다고 하니 상담을 받아봐야 알 것 같다. lg는 나쁘지 않은데 한 달에 22000원은 어쨌든 부담이 된다. 내 폰 요금제보다 비싼 건 용납되질 않는다.


근데 없으면 안 되긴 하니까 고민이다. 강제 디톡스 생활을 해볼까 했지만 제약이 정말 크다. 한편으론 그냥 학교 가서 살면 되지 않나 했는데 불가능하다. 에어컨 없는 자취방이니까 여름엔 어차피 떠나긴 해야 하는데, 모르겠다. 세상은 역시 어려운 것 모르는 것 투성이다. 여전히 내 앞에는 피아노를 치는 학생이 있고 그의 심오한 예술관은 더욱 모르겠다. 신기한 건 나만 신경 쓰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


캐스팅 연락이 왔다. 1분 남짓한 전화였다. 삭발이 되냐고 물었고 나는 정확하게 2초 뒤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분명 1년 전이었으면 대답을 못했을 것 같다. 오디션 대본을 받아보니 삭발보단 변발이 아닐까 하는 캐릭터였다. 뭐, 삭발이나 변발이나 어쨌든 밀어야 하는 조건인 것 같았다.


대학원에선 많은 지적을 받았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 박사 과정의 선생이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첫 대화였다.


어떤 선생은 내게 톡을 보냈다. 학교에 있냐길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끝난 대화라 궁금했다. 뭘까, 왜 연락했지.. 그래서 이따 백예린 올 때 간다고 하니 답장이 왔다. 비도 오는데 막걸리 한잔할까 싶어서 연락했다고. 신기했다. 저분도 나처럼 친구가 없는 걸까.


사실 접점이 있는 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둘이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선배기도 했고 뭐랄까 뭐 그랬다 그냥. 정말 친구가 필요해서 연락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뭐 그건 알 방법이 없지만


요즘 실감하고 있는 건 친구의 존재다. 확실히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자 친구가 없어졌다.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면 어딜 갈 일도 없고 나가지도 않는다. 주말에 갈 곳은 도서관. 영화 쪽에 일을 겸하면서 쌓이게 된 친구관도 사실 비즈니스식에 가깝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1-2년만에 만나고 연락해도 서로 떨떠름하질 않는다. 그냥 어느 촬영에서 만날지 모르니 굳이 적으로도 또 너무 가깝게도 지내질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친구 중에서도 가깝게 다가오려는 친구도 있지만 결국엔 촬영장에서 만나야 하는 한계가 있으니 사이가 더 발전하진 않는다. 사적으로 따로 자리를 가지는 경우도 잘 없고.


그런데 난 이런 친구 개념이 편해졌다. 필요할 때 연락하는 거.

문제는 그러다 보니 대화를 안 하게 된다. 친구가 없으니까.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실 친구의 존속을 아니 정의를 스스로도 헷갈리는 것 같다. 대화는 하고 살아야 하는데 학교, 학원에선 사실 대화가 아니니까. 학원 선생들과도 스몰토크 내지 형식상 대화일 뿐이다. 학생들과는 더욱 마찬가지. 대학원에선 더욱더. 거기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가 없다. 처음부터 거긴 친구가 아니라 서로를 선생으로 부르니까.


고향에 내려가면 친구가 있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근데 고향에 내려가질 않는데. 이젠 그들도 대학생이 아닌 사회인이 되었기에 시간을 조율하지 않으면 만나기도 힘들어졌다. 대학교 때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같은 서울 안에 있어도 만나긴 애매하다.


그렇게 난 또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걸까. 이게 맞나. 사실 이럴 때면 성욕을 지워버리고 싶다. 어떤 유튜브가 말한 게 인상 깊었다. 20-30대에는 성욕 때문에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서 성욕을 이성에 대한 관심, 연애 등으로 넓은 관점으로 인식하면 맞는 말로 보였다. 그리고 사실 성욕이라는 표현도 적잘한 듯했다. 욕구니까.


나이가 든 사람들이 왜 자꾸 얘기를 거는 걸까 싶었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조금씩 차자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말하고 싶으니까. 대화가 필요하니까. 우리는 서로 단절된 사이가 아닌 어쨌든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니까. 사람과의 관계는 뗄 수 없다, 이건 명징한 명제였고


생각을 정리하는 책을 읽고 있다. 어렵다.

교수자는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했다. 이별했는데 괜찮다면 덜 사랑한 거고 이별해도 괜찮은 사이였다고 했다. 학원에서 어떤 선생은 내게 덜 사랑했다고 말했다.


덜? 부족했다는 의미일까.

이별했다고 하고 헤어졌다고 하면 사람들은 괜찮냐고 묻거나 위로를 해주려고 한다.

나는 근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위로? 그 정도인가.


헤어졌으면 헤어진 거 아닐까.

교수자는 젊을 때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은 살아가면서 내 뜻대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려주는 것 중 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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