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맑은 날과 흐린 날, 비 오는 날 중에 어떤 날씨를 가장 좋아해?
어떤 시에서 읽었던 문장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내가 비와 관련된 다음 문장은 이거다.
비를 맞지 않는 곳에서 내리는 비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거겠지.
나는 비가 내리면 싫다. 우중충한 날씨도 흐린 날씨도 쌀쌀한 날씨도 그리고 젖는 신발과 바지 끝자락도. 비가 좋다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비가 오면 나가기 싫어진다.
오늘은 이태원에 가려고 한다. 뉴웨이브코미디클럽의 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스탠드업 코미디 궁금하기도 했고. 표가 2장이나 생겼다. 사람은 한 명인데 두 장이나 있어서 뭔가 괜히 아깝기도 한다. 같이 갈 사람을 당근에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장소를 보니 해방촌과 가까웠다. 해방촌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구경도 하려고 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생각보다 난 자유로웠구나. 사실 다음 주에 발표가 두 개나 있는데 아직 손도 대질 않았다. 이게 무슨 자신감일까. 과제도 당연히 물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디폴트.
비가 오자 새끼냥이 걱정된다. 누가 데리고 갔을까. 갔다면 소식 하나만 전해주면 좋겠다.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살고 있다고. 물론 그런 소식은 듣기 힘들 거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쓸쓸한 죽음만은 피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니까 벌써 5월이 10일이나 지났구나. 너무 빨라서 놀라울 뿐이다. 왜 세상은 잠깐의 멈춤도 없는 걸까. 다들 분주하고 바쁘고. 연구 회의에 매주 금요일마다 참석하고 있다 보니 새삼 놀라움 투성이다. 공대생들은 저렇게 바쁜 걸까. 아님 그냥 내가 너무 나태했던 건가.
거울을 봤다. 이젠 수염이 얼굴 전체적으로 나길 시작했다. 턱이랑 인중만 했던 것 같은데. 이젠 어릴 때 내가 본 아빠처럼 얼굴 전체에 쉐이빙폼을 바른 다음 면도를 하게 됐다. 진짜 아저씨가 된 것 같다. 목에도 볼에도 털이 이렇게 굵게 자라는구나. 옛날엔 솜털이었는데 이게 이젠 수염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가고 있다. 아직 난 어른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