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내게 위로를 건냈다

그냥 일기

by 수호


누가 죽었어요?

네?

젊은 나이인 것 같은데 안 됐네요.

..

저도 어제 상 치루고 왔는데.

..

에구.

..감사합니다.

힘내요.


인덕대 학생들의 촬영을 갔다. 이틀 동안 촬영이었고 나는 양복에 완장을 차고 있었다. 상주가 차는 그런 완장. 명칭을 모르겠다. 장례식 때 상주가 팔에 차고 있는 그거.


숙취 메이크업까지 마친 탓일까. 다른 촬영 때보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말을 건네는 경우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보통 말을 걸어도 "뭐 찍어요?" 정도였는데 말이다. 나에 대한 개인적인 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촬영이 진행되는 중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감정도 잡을 겸 혼자 구석에 앉아 있었다. 바이크샵에서 나온 아버님은 위와 같은 말을 내게 건넸다.


중간에 말을 끊을 수 없어 어쩌다 보니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사실 아버님의 '에구'라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자신도 어제 상을 치뤘다는 상황과 위로가 동시에 느껴졌다. 속이는 것 같아 죄송했다. 촬영.. 그게.. 학생들.. 과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그때의 난 얼굴에 숙취를 표현하기 위해 메이크업이 된 상태였다. 그 정도로 취한 사람 옆엔 잘 안 올 텐데, 그럼에도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거겠지.


재밌었던 촬영이었다. 학생들이 열정이 넘치고 열의가 있으면 덩달아 힘을 얻는다. 열심히 찍고 싶어 하는 마음과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은 아이러니한 재미를 만든다.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너무 대견하고.


드디어 종강이 다가왔다. 오늘 한 수업은 종강했다. 마지막 수업을 기념하여 교수님께서 밥을 사주셨다. 물론 과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학교는 안 나가니까. 어떤 선생님은 시집을 주셨다. 첫 시를 읽어봤다. 당연한 거지만 잘 쓴다. 시인이라는 게 실감났고.


작년 여름에 찍었던 단편영화 하나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강대학교 영화동아리 학생들이었다. 영화공동체였나, 동아리가 유구가 깊은 곳이었다. 명성에 걸맞는 작품은 아니었다. 45분 가량 되는 긴 러닝타임 동안 허술함도 의문도 많았다. 이게 뭐지 싶었고 이걸 새로운 실험으로 봐야할까 무엇으로 봐야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긴 시간을 보고 마지막에 다다르니 무언가 감동이 있었다. 신기했다.


감독은 크레딧이 다 올라간 다음에 한마디 말을 건넨다. 외로운 모든 사람들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닭이 해변가에서 모래를 밟는 장면이 마지막에 나온다. 닭에 발에는 끈이 묶여있다. 날 수도 없고 다리 하나가 끈에 묶여있기까지 한 닭은 바다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모래를 밟는데 바다를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어쩌면 나는 법을 잃어버린 닭인 걸까.


영화는 좋게 말하면 시 같았다. 연극적이었고. 이런 전개를 어떤 연극에서 본 적 있었다. 유명한 상까지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였나. 그 연극도 다 보고 나면 알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뭘까. 사실 촬영 현장을 경험했기에 기대가 전혀 되질 않았다. 그렇기에 신기했다. 감동을 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든 장면들이 파편화되어 있고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의미는 전달될 수 있다.


만취한 사람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것과 날지 못하는 닭이 끈에 묶여있기까지 한 것.

언뜻 보면 닭을 강아지 산책하는 것처럼 산책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앞의 장면에선 나오긴 한다. 주인공이 아닌 닭을 보여준 이유. 우리는 바다 너머로 날 수 있는 존재일까.


영화 속에선 일관된 장면이 중간에 자꾸 삽입된다. 어떤 인물이 자꾸만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 먹는다. 음료를 사자마자 바로 열어서 마신다. 무언가 갈증이 심한 것처럼.


어떤 인물은 자꾸만 사람을 안고.


결핍된 사람들은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닭에겐 비행 능력이 결여되었다. 우리 모두 결핍이 있고 그것을 채우고 싶지만 쉽게 채워지질 않는다.


한 달 전에 지원했던 공고에 연락이 왔다. 금요일 미팅 가능하냐고 했다. 내가 지원했다는 것도 까 먹은 상태였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 걸까.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대학원 첫 학기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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