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닮았어요

그냥 일기

by 수호


이번 주는 시험기간이다. 시험을 이미 치루는 학교도 많은 한창인 때다. 학원은 시험기간에 맞춰 보강을 한다. 직전 보충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보강이라고 하기도 하고 학원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명칭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고등학생 수업 때였다. 나는 텀블러에 담긴 물을 마셨다. 내 텀블러는 다이소에서 산 2000원 짜리인데 라이언이 그려져 있다. 학생 중 하나가 닮았다, 라고 말했다. 뭐가 닮았다는 걸까 쳐다보니 라이언 닮았다고 했다. 라이언? 물병에 라이언을 바라봤다. 곰이지만 이름은 라이언, 노란 몸에 일자 눈썹, 동그란 눈에 하얀 배를 가진 라이언.


예전에 만났던 이성 친구가 나한테 라이언 닮았다고 했었다. 이유는 기억나질 않는다. 나도 일자눈썹이라 그런 걸까. 뭐, 어쨌든 귀엽다는 뜻일 테니 상관 없었다. 그땐 그랬던 시절이니까.


오늘로 라이언 닮았다는 소리를 두 번 듣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닮았다는 게 객관적인 정보보다는 주관적인 것이니까. 그러니까 가장 자연언어에 닮은 말 같다. ~~와 닮았다는 건 정답이 있는 기술 언어가 아니니까. 오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강연자는 자연언어와 기술언어를 얘기해줬다. 우리가 만약 기술언어로 소통했다면 세상은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정답만 있는 언어로 사람들이 소통한다면 서로 오해할 일이 없을 테니까. 자연언어는 필시 오해를 낳고 쌓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일 거고. 강연이 끝나고 주최자(?)가 마무리하는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오래오래 자연언어로 서로 이야기해야할 것이라고. 맞는 말 같았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겠지만 그것만이 평화에 가까워지는 길이니까.


강연자는 우리 학과 교수였다. 처음 강의를 들어보는데 강의력이 좋아서 놀랐다. 사람들의 호응도 잘 끌어냈고 이해하기 쉽도록 말해주었다.


무더웠다. 더운 날씨라 그런가 사람들은 예민해 보였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정전이 일어났다. 선풍기가 갑자기 꺼졌기에 눈치 챘다. 공사가 계속 진행 중이던데 선이라도 건들였나. 몇 분 안 있고 바로 전기가 돌아왔다. 나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대피했다.


열대야가 기승이라는 게 실감난다. 밤에 잠들기엔 너무 덥다. 이불을 이제 덮지 않게 되었다.


이번 주는 오늘과 내일을 제외하곤 학원에 출근한다. 그러고 나면 한 주 쉰다. 쉬는 동안 어딜 갈까 생각했다. 제주항공 이벤트를 한다길래 비행기 표도 봤다. 가까운 일본으로 갈까. 제주도로 가볼까. 생각은 생각일 때 가장 활발하고 재밌는 것 같다. 결국 아무 예약도 하지 않고 그냥 뒀다. 그래도 어디 잠깐이라도 쉬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싶다. 대학원은 도저히 모르겠다. 1학기가 이렇게 끝이 났고 3학기만 더 하면 어쨌든 수료를 할 텐데


내가 석사 졸업생이 된다고 삶이 버라이어티하게 바뀔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아닌가, 그냥 삶이 이런 걸까. 나는 내가 모자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난 여전히 부족한 게 많고 모자란 게 많았다. 남들처럼 사회에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왜 없는 걸까. 아니, 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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