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ale: Man’s shoes. Never.

by 수호

무대엔 벤치 하나. 우리는 그곳을 공원이라 부르기로 약속한다. 그 벤치 위엔 여자가 앉아 있다. 여자 옆에는 종이백이 놓여 있고 여자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 곧 무대 위로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여자 쪽으로 다가간다.


남: 혹시, 당근이세요?

여: 아. 네. 신발 맞으시죠?

남: 네네. 한번 봐도 될까요?

여: 넵. 물론이죠.


여자는 종이백에서 신발 상자를 꺼낸다. 꺼낸 신발 상자를 벤치 위에 올려두고 그 옆에 남자가 앉는다. 남자는 여자와 신발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앉았으며 벤치의 거의 가장자리에 자리한다. 여자는 신발을 꺼내 들며 얘기한다.


여: 한 번도 안 신었어요.

남: 깨끗하네요.

남자는 여자가 꺼낸 신발을 건네받으며 밑창을 확인한다.

남: 260맞죠?

여: 어, UK7이었어요!

남: 아하. 그럼 맞아요.

이리저리 신발을 확인하는 남자.

남: 혹시 신어봐도 되나요?


잠시 말이 없던 여자는 살짝 미소를 띠며


여: 그럼요.


남자는 신발을 신어본다. 끈을 조일 때까지 둘은 아무 말이 없다.

짧은 침묵.


남: 예쁘네요. 살게요!

여: 좋아요. 현금이신가요?

남: 계좌로 해도 괜찮을까요?

여: 네네. 물론이죠.


둘은 휴대폰을 꺼낸 뒤 행동을 취한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은 채 거래를 진행했고 수월하게 끝난다.


남: (아무렇지 않게) 저 그런데, 왜 파시는 거예요?


침묵.

남자의 질문을 여자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못한다. 아무 말이라도 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될 것처럼.

남: (당황하며) 아. 의심하거나 그러는 건 아닌데 그냥 좀 그렇잖아요. 새 신발이고 너무 싸게 팔고 또 정품이고 그리고 사이즈도 모르는 거 봐선 외국 신발에 관심 갖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이 시리즈는 나온 지도 오래됐는데. 그게, 말이 좀 길어졌는데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닥터마틴이 얼마나 비싼데.

여: (시선은 아래로) 이 신발 좋아해요?

남: (여자를 쳐다보며) 네? 네. 예쁘잖아요.

여: 맞아요. (한숨을 쉬며) 예쁘죠.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여자를 남자는 낯설어한다.


여: (남자를 쳐다보며) 얘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남자는 손목에 시계를 확인한다.


남: 5분 안에 끝날 수 있죠?

여: (웃으며) 글쎄요. (짧은 침묵) 아버지는 광산 노동자였어요. 어릴 때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기러기 가족이었대요. 아빠는 태백에 살았고 저희는 노원에서. 주말에도 잘 안 왔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어릴 때 아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남들은 뭐 친구같이 지냈다, 가부장적이었다, 짜쯩 난다 뭐, 아빠에 대해 그랬는데 저는 그게 그저 부러웠거든요.


여자를 쳐다보고 있던 남자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군다. 반대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는 고개를 들고 마저 얘기한다.


여: 주말이었어요. 엄마가 쇼핑을 하러 가자고 했고 우린 백화점에 갔죠. 엄마가 들어간 매장이 닥터마틴이었어요. 그땐 몰랐죠. 근데 엄마가 얘기하더라고요. 옛날 먼 나라 영국에선 광부들이 이 신발을 신었다고. 제가 보기엔 의아했어요. 제가 생각한 광산은 먼지가 날리고 퀴퀴하고 더럽고 그런 곳인데, 이건 너무 예쁜 신발이잖아요. 그땐 청바지를 입고 이 신발을 신었다고. 들으면서 아빠를 떠올렸어요. 아빠가 청바지에 멋진 신발을 신고 곡괭이를 휘두르는 모습을요. 제가 그걸 그림으로 그렸더라고요. 아직도 그때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제 방에 남아있어요. 아빠는 청바지에 검은색 신발.

사춘기가 왔을 땐, 아버지가 미웠거든요. 그땐 이제 그런 힘든 일을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가 크다는 걸 알게 됐고.


여자의 마지막 말에 남자는 눈이 커진다. 눈이 커지면서 쳐다본 여자는 눈에 눈물이 맺혔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는 채 굳어버렸다. 잠시의 침묵 뒤 얘기를 꺼낸 건 남자였다.


남: (신발을 만지며) 그럼 이 신발은 (잠시) 아버지의 것인가요?


여자는 정면의 허공을 바라보다 남자에게 시선을 준다. 그러곤 눈웃음을 짓는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신발을 쳐다본다.


남: 저,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여자는 손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낸 뒤 눈물을 닦는다.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남: 이게, 그러니까 (잠시 생각하며) 지금은 품절된 시리즈이긴 한데 그래도 그렇게 오래된 제품은 아닌 거로 알거든요. 나이가 그래도 못해도 20대이실 거 같은데, 아니, 그 실례일 수 있는데 언제 돌아가신 걸까요?


여: 누가 돌아가요?

남: 네? 그, 방금 얘기하신 아버님이요.

여: 저희 아버진 살아 계신데요?

남: (황당해하며) 네? 그럼 뭐가 부재하다는 건데요?

여: 아. 우리 아버진 지금은 자영업해요.

남: 아니, 그러니까요. 그럼 왜 부재했다는 거예요?

여: (연극 배우 톤으로) 연긴데요?

남: 네?

여: 제가 배우 지망생이거든요. 그런데 몇 살로 보였어요? 20대는 너무 애매하고 조금 더.

남: 어, (생각하며) 한 스물셋?

여: (기뻐하며) 오오. 고마워요. 저 스물여섯이에요.

남: (어이 없어하며)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여: 저 앞에 보실래요?


여자는 검지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따라 시선을 고정한다. 관중석 어딘가를 바라보는 남자.


남: (잘 안 보이는지 눈을 찌푸리며) 카메라에요?

여: 넵. 맞습니다!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저희는 유튜브 **티비입니다. 지금까지 사회 실험 ‘중고거래하는데 상대가 즙을 짠다면’ 편이었습니다. 다들 구독, 알람 설정 꾹꾹, 부탁드려요. 다음에 더 재밌는 영상으로 찾아뵐게요. 안녕~


여자는 옆에 남자가 있다는 걸 까먹은 것처럼 허공에다 애교까지 아끼지 않는다. 남자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남자는 정신을 이제야 차렸는지 다시 얘길 꺼낸다.


남: 그러니까. 몰카라는 거죠?

여: 몰카라뇨. 저흰 사회 실험 영상을 찍는 거랍니다.

남: 그게 그거 아닌가요? 저는 몰랐으니까.

여: (머쓱하게) 하하. (눈을 반짝이며) 혹시 유튜브에 올려도 괜찮을까요? 선생님 얼굴도 잘 나올 거예요.

남: 몇 명인데요? 구독자.

여: 1만 좀 넘어갔어요.

남: 얼마 주실 건가요?

여: (당황하지 않고) 그, 신발 드릴 겁니다! 한 번도 안 신은 거고 실제론 아빠께 아니라 오빠 거에요. 오빠 몰래 갖고 온 거니까 그냥 갖고 가세요. 아마 자기 신발 사라진 거 알면 난리 칠 걸요.

남: 제가 이체한 거는요?

여: 아하. 근데 선생님도 알다시피 이거 너무 싸잖아요. 이거 신발 중고로 다시 팔아도 출연료는 쏠쏠할 거예요. 그럼 선생님, 허락해주신 거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 (손을 뻗으며) 잠시만요!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수거하러 간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남: 하아. 그래. (체념한 듯) 내가 찾던 신발이니까. (전화가 울린다.) 어. 왜왜. (남자가 신발을 상자 안에 담는다.) 아, 당연하지. 야야. 예쁘냐? 오케이. 내가 닥마 하나 샀거든. 내가 내일 합석 무조건 한다. 형 알지? 야. 근데 나 유튜브 나온다. 어? 채널은 모르겠는데. 어. 몰라. 유명한 거 같진 않은데 예쁘긴 하더라.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무대를 나간다. 닥터마틴 신발 상자를 옆구리에 낀 채 말이다. 여자는 남자가 나간 방향의 반대로 무대를 나간다.

*제목은 헤밍웨이의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를 차용함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