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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Oct 12. 2022

자유주의자 선언

- <명동백작>의 김수영을 보고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즉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한다. 저녁에는 소를 몰며, 저녁을 먹은 후에는 비평도 해본다. 그러면서 사냥꾼도 아니고, 어부도 아니고, 목동도 아니고, 비평가도 되지 않아도 된다.’ 마르크스가 유일하게 서술했다는 공산주의에 대한 서술이다. 김수영이 말한 자유와 닮아 보인다. 그렇지만 김수영은 좌파의 산물이 아니다. 이봉구의 말대로 그는 자유주의자다. 학생들이 피 흘려 이뤄낸 사일구혁명을 알기에 군사혁명이 아닌 쿠데타라고 화를 냈다.

EBS <명동백작>

김수영의 생애를 알수록, 그의 정신을 엿보게 될수록 그의 시가 단단해 보였다. 김수영의 모던함과 참여시는 반서정적이어서 내 취향 아니었는데, 읽을수록 가슴에 남았다. 그가 겪은 레드 콤플렉스는 거제 포로수용소를 벗어남에도 회복되질 않았다. 기원적인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왕의 저주 같아서 어쩌면 죽어서 해방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수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엔 그를 도와주는 이들이 많았던 것도 다행인 사실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외도가 난 아내인 김현경은 몇 년 뒤 다시 김수영을 찾아왔고 민중이 주가 되어 민주주의를 이뤄낸 순간을 목격했다. 사상이 더해진 잔인한 폭력에 생긴 인간 불신에도 그는 자유를 외쳤다. 버스에 치여 죽은 김수영은 <명동백작>에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나타난다. 바다에 뛰어들어 물장난을 치는 장면은 순수해 보였다. 그가 말한 자유처럼. 

그가 말한 혁명은 고귀했다. 그의 시처럼. 부정 규탄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자유를 외쳤다. 순수한 자유, 타협 없는 인간 정신의 완벽함을 추구했다. 김수영에게 자유란 순수한 물과 같았고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쿠데타에 분노했다. 그는 서정을 쓰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그가 썼던 시는 고결했다. 산문적인 어투는 타동사 같아서 베다, 찌르다, 뚫다가 필요로 하는 목적어에 민중이 있을 것만 같았다. 시대적 아픔을 겪은 그의 정신이 지금도 읽힌다는 건 단순한 역사적 가치로 한정되는 게 아니다. 김수영이 말한 혁명과 자유는 사실상 공산주의처럼 이상적이었던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도해보아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끝까지 혁명의 가능성과 자유를 노래했던 그의 시가 지금까지 공감되고 읽힌다는 건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유되는 어떤 사실이 있다는 것인데, 시대적 아픔이 전이된다는 건 세대 갈등 완화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

김수영이 지녔던 레드 콤플렉스는 꼭 버려진 개가 마음을 여는 과정 같았다. 군인에게 애국심을 빼면 살인자에 불과하다는 어떤 잔인한 말처럼 당대의 사상을 강요받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님을 김수영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더 피를 흘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지 모른다. 4월 이후에도 시는 필요했으니까. 후에 시인 같은 시인이 더 많이 나올 거로 믿었으니까. 진짜 시는 자네(우리)들이 흘린 피였으니까. 그렇기에 진짜 시는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가는 거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고.

‘시도 시인이 시작하는 것이다. (중략)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한’다는 건 그의 시어를 빌리면 ‘김일성만세’일지 모른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아는 시인은 ‘김일성만세’를 부름으로써 자유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의 아이러니함을 적절하게 설명한다. ‘혁명은’ ‘고독해야’ 한다. ‘무된 밤에는 무된 사람을 축복하’는 세상이 올 때까지. 잡초 같았던 민중이 이뤄낸 사일구혁명 그 이상을 나아가야 진정한 자유였다. 모두가 모두를 축복할 수 있길, 그것은 춤을 출 수 있어야 진정한 혁명이라 말한 68혁명과 닮아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자유의 가치를 다시금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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