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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Oct 13. 2022

어느 가족

구름이 달의 속살을 사과처럼 한입 베어 물은 날 할머니는 난데없이 재혼한다고 하였다

화장대에 바싹 붙어 앉은 채 눈썹을 그렸고 분칠을 끝낸 할머니는 보따리에 꽁꽁 싸맨 꽃신을 꺼내 들었다

복 나간다고 몇 번이나 야단쳤던 문지방을 할머니는 제 발로 밟는다 녹이 슬어 끼이-익 고라니 소리 같은 대문을 열고

택시가 전조등만 킨 채 기다리고 있었다

뒷좌석에 타는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었고 알츠하이머 씨는 고개를 살짝 까닥, 하곤 출발하였다 


아침이 되고 햇살은 방안을 고양이걸음으로 돌았지만, 이불은 온기를 간직 못 한 채 추위에 어질러 있었다 머리맡엔 허연 머리카락이 오순도순 모인 채 잠결에 뒹굴고 있으며 장롱 위엔 새벽에 일어난 먼지가 난잡했었다 


화장대에는 은은한 빛을 뿜는 가락지가 놓여 있고

내 손가락에 끼우기엔 뼈마디에서 걸릴 것만 같았다 


거울 속엔 어린 내가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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