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9월 중순이다. 3개월도 남지 않은 올해, 이맘 때면 세월의 야속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었다. <단순한 열정>. <빈 옷장>도 앞부분을 읽었다. 한국에서 통용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어디까지 솔직해도 될까. 솔직함은 때론 무레하기까지 했다. 너무 솔직한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을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생활은 적당한 솔직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 같고.
대학원 수업을 3개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빡센 일이었다. 아, 하나 포기해야 하나. 오늘까지 정정기간인데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만만한 월요일 강의? 빡센 화요일 강의? 수업이 너무 뜬구름으로 가는 목요일 강의?
이렇게 듣다 보면 내 몸이 혹사할 것도 같은데 모르겠다. 하필이면 이번엔 중간고사가 일찍이다. 이번 달 말에 어떤 고등학교는 시험을 본다. 그래서 벌써 시험기간이다. 어쩌면 그 학교가 잘 선택한 것 같긴 하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중간고사를 보는 것보다는 그 전에 보는 게 나으니까.
아침 8시에 눈이 떠졌다. 요즘 계속 커피를 마신 탓인지 머리가 멍했다. 잠을 잘 때도 뭔가 깨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민센터에 가 스패너를 빌렸다. 샤워기 호스를 갈았다. 이제는 물이 안 새겠지.
오늘 학교엔 너드커넥션이 온다고 한다. 한때 정말 많이 들었던 가수 같은데 오늘까지 작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하... 발제가 제일 어렵다. 책 내용은 이해도 안 되는데 뭘 요약하고 발제하라는 건지. 읽으면서도 막막했다. 산책 느낌으로 노래만 듣고 올까... 그런데 그러면 내가 과제를 할 순 있을까.
어려운 일 투성이다.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영화를 찍기 위해서 투잡을 뛰는 아는 형이 있다. 영화가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을 앞부분만 읽었는데 느낀 점은 하나였다. 뭐라는 걸까. 첫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긴 하다. 불법 낙태 장면이라고 할까. 뭐라고 정확히 형용해놓진 않았지만 되게 끔찍하게 시작한다. 그 이후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너무 1인칭 본인 얘기라 무슨 말인지 잘 판단이 안 선다.
그에 반해 <단순한 열정>은 굉장히 깔끔하고 읽기 좋다. 그리고 내용은 뭐, 충격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을 할 수 있는 열정은 우리들의 바람이자 사치일지 모르겠단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부러움 즉, 사치 아닐까.
책에는 이러한 문장이 있다.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고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고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22쪽.
화자는 외국인 남성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의 아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발정난 암고양이' 정도로 생각할지 모른다. 비단 외국이라고 해서 성 관념에 열려있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나라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테고.
세상은 여전히 넓고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곱씹어 보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통찰력에 놀라기도 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이것은 기록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그렇기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오르게 된 걸지도 모른다. 단순히 기록에 그쳤다면 일기였을 테니까.
소설, 참 어렵다. 옛날엔 잘 쓴 소설 하나를 참 부러워 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