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어디가서 풀 곳이 없어서 영화를 얘기를 하려고 한다. 진득하게 얘기할 건데 스포가 기반이니 보실 분은 뭐, 굳이 싶기도 하다.
일단 첫 번째는 <부고니아>다. 오늘 보고 왔고 뜨끈뜨끈하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일단 <지구를 지켜라>라는 장한준 감독의 작품을 안 봤다면 당연히 부고니아 관심도 없었을 거다. 부국제에서도 핫했던 친구이지만 굳이, 싶기도 했다. 그래서 만약 추천 유무를 묻는다면
지구를 지켜라를 재밌게 봤고 어떻게 리메이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기본적으로 청불이기에 수위가 세다. 와, 진짜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이런 걸 보니 나도 멈칫하고 눈을 찌푸리게 될 정도였다. 사실 난 이런 걸 잘 못 본다. 공포도 싫고 무서운 건 더 싫고. 자꾸 월식 며칠 전, 두둥하면서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놀랐다. 그리고 잔인하다. 근데 생각해보면 체인소맨 레제는 왜 진짜 19세가 아니지.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일단 돈의 캐릭터가 재밌었다. 특히나 리메이크 측면에서 자꾸만 눈이 갔다. 돈은 순수한 친구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친구는 테디인 형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 세상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친구다. 테디처럼 일을 하지도 않는 것 같고 그가 의지할 곳은 테디밖에 없다. 하지만 테디를 온전히 믿는 느낌은 아니었다. 테디를 사랑하기에 또 그밖에 없기에 그가 유일한 친구이기에 동조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에일리언이라고 미셸을 생각했다면 전기 충격기에서도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개머리판이 아닌 총구를 그대로 미셸에게 겨냥해 쐈을 테니까. 그는 미셸의 말에 넘어간다. 테디를 배신하라는 미셸의 말에 돈은 점점 넘어간다. 그렇지만 세상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 않다. 집 밖으로 나가면 자신이 어떠한 처지가 될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테디가 경찰에게 잡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테디가 없는 세상은 곧 자신이 세상 밖에 노출되는 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다. 테디가 경찰에게 잡혔을 거란 생각에 돈은 자신의 유일한 세상이 없어진 상태가 된다. 세상이 없어지자 미셸의 말은 효용이 없어진다. 다른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니까. 미셸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데려다준다고 약속했지만 돈은 싫다고 한다. 돈은 우주로 자기를 데려다 달라고 한다. 미셸을 알겠다고 한다. 돈은 테디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고 우주에서 보길 기원하듯 자결한다.
미셸의 큰 눈은 동요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가해를 가했기에 지구는 승자의 세상이 되었을까. 미셸이 테디에게 외쳤듯, 난 승자고 넌 패자라는 이분법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돈은 항상 패자였다. 나는 이 부분이 결말까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돈의 자결이 없었으면 미셸이 인류를 멸종시켰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계인을 닮은 인간이, 하등한 인간이 서로 힘을 합쳐서 사는 게 아닌 혐오와 전쟁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패배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은 없어져야 했다.
돈의 자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떤 나라도 싫기에 지구를 떠나야 하는 소외된 사람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까. 형을 위해 화학적 거세도 마다하지 않고 진행하는 그의 삶을 말이다. 그에겐 테디가 세상이고 세상이 테디인데 그렇다고 형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건 아니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장단 맞춰주기라는 걸.
그런데도 아이러니한 건 진짜 외계인이었다는 것이다. 원작과 같은 결말이다. 아니 다른 점이 있다면, 지구 파괴와 인류 멸망이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
인류가 없는 지구는 평화로웠다. 고양이나 강아지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다.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평소 같았다. 바다엔 파도가 치는 것처럼. 자연의 소리는 강력한 미장셴 사이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인간이 없는 자연은 분명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 모든 공간마다 인간의 피가 가득했다. 자연의 소리는 평소와 같은데.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동안 자연의 소리가 났다. 어느 순간부턴 빗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긴 크레딧이었다. 자연의 소리가 영화관을 울렸다. 지구를 괴롭히는 인간이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자연의 소리가 끝나자 불이 켜졌다. 혐오와 전쟁으로 살아온 시대의 후손들이 영화관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영화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화장실에 들렀다. 추악한 인간이 거울 앞에 있었다. 나는 <부고니아> 속 어떤 인물에 가까울까. 경찰관일까? 미셸일까? 아니면 테디나 돈일까?
영화 초반부엔 테디가 풍선줄을 쥐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테디 앞에서 미셸은 금전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테디가 손에 쥔 풍선줄을 따라가면 어머니가 나온다. 테디의 어머니는 풍선처럼 테디의 손에 메달려 있다. 그런 어머니를 테디는 직접 죽였다. 물론 미셸의 꼬임이 있었지만 미셸의 말처럼 테디가 직접 죽인 거다. 부동액을 수액에 태웠으니까. 풍선처럼 한쪽이 손을 놓으면 언제든 끝나는 사이
다음으론 무슨 얘길해야 할까. <그저 사고였을 뿐>은 꼭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읽고 보길. 물론 나도 안 읽었기에 쪽팔리지만, 아이히만의 이야기라도 알고 가길. 그리고 그 영화에선 정말 미친 연출이 나온다. 간부를 나무에 묶어두고 주인공은 계속 돌면서 이야기한다. 간부는 눈이 가려진 상태이기에 자꾸만 주인공을 찾는다.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경계하는 듯 말이다. 경계한다는 건 여러 명이 있거나 누군지 모를 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다. 그 상태일 때 간부는 계속 거짓말한다. 하지만 시바를 마주한 순간 간부는 경계하지도 고개를 두리번 거리지도 않는다. 가려진 상태이지만 시바를 온전히 직시한다. 그때서야 간부는 진실을 얘기한다. 카메라 또한 시바와 간부에 맞춰 왼쪽으로 패닝한다. 균형감 있던 카메라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는 기울어진 상태에서 상대를 이해 가능하다. 상대에게 마음이 기울어져야 공감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한 상태일 때 우리는 사회생활하듯 가면이 씌어진 상태다. 놀라운 연출이었다. 이 얘길 영화 모임이 끝나고 얘기했지만 내 말주번이 없는 탓인지 아무도 반응하질 않았다. 이거 진짠데...
<세계의 주인>은 무척이나 섬세하다. 어떤 평론가가 그랬던 것 같다. 규정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줬다고. 뭐 그런 식이었다. 맞는 말이다. 주인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드디어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이 된다. 세계의 주인이 되는 과정은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차장 씬은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브레이크를 밟지 마세요, 라는 문구처럼 주인이는 참지 않고 말하게 된다. 처음으로 울분을 쏟아내는 주인이와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는 엄마. 주인이가 뱉고 울자 세차하듯 조금씩 세상과의 벽이 씻겨지기 시작한다. 주인이는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하는 세계의 주인이 되어갔다.
세상엔 좋은 영화도 재밌는 영화도 많다. 체인소맨 레제는 사실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귀멸의 칼날처럼 눈물 폭풍일 줄 알았다. 그런데 감독의 말처럼 레제는 첫사랑이자 저주였다. 첫사랑을 저주라고 말하는 건 인상 깊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수영장 씬에선 거미가 나비를 집어 삼킨다. 첫사랑에 우리 모두가 잡아 먹혔듯. 수영장 씬은 예뻤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물놀이를 한다는 것, 나도 사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말, 사실 사랑은 동정심과 한끝 차이일까. 분명 레제는 덴지를 죽일 수 있었다. 카페에서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지에게 수영을 가르쳐 줬다는 건 그가 덴지를 사랑한다는 것, 동정한다는 것.
덴지는 레제를 죽이지 않는다. 용서한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수영을 가르쳐줬기 때문이라는 것. 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의 이런 영웅적인 자세가 좋다. 탄지로처럼 용기를 불 태우는 자세, 루피와 나루토처럼 적이어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 덴지도 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격의 거인의 에렌 예거는 사실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끝내 영웅적이었다. 소인은 할 수 없는 대인, 군자만의 생각이랄까. 아니다, 그래도 에렌 예겨는 소인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저런 호걸적인 자세가 좋다. 짱구처럼 사는 것. 적이어도 용서할 수 있는 것. 나를 죽이려고 했어도 내일부터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나는 소시민이고 짱구처럼은 살 수 없다. 오늘도 난 건강검진 때 하는 구강검진에서 충치를 발견했고 7개를 떼워 55만월 치과에 태웠다. 나는 55만원을 오래 기억할 거다. 이런 나에겐 적을 용서하는 건 불가능하다. 55만원을 쓴 나도 용서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