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의 <마작>

그냥 일기

by 수호


에드워드 양의 영화 <마작>을 약 3일에 걸쳐 끊어서 봤다. ott가 보급된 세상에서 영화는 영화관 스크린이 아닌 노트북으로도 그리고 연속하지 않고 불연속적으로도 감상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영화의 매력은 아쉬워졌을 것이 분명한데


<마작>을 다 보고나자 휴유증이 너무 심했다. 청춘들의 아픔이 너무 공감된 걸까.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잠을 자려는 나를 계속 괴롭혔다. 그러니까 지금부턴 스포일러를 주의하길 바란다.


영화에는 4명의 청년 무리가 나온다. 미인계 홍콩, 대장 홍어, 사짜 소부처, 그리고 그속에서 정도를 고민하는 주인공. 주인공의 이름이 룬룬인가 린린이다. 이들의 사업은 사실 부자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사기에 가깝다. 그렇기에 모두가 사짜이자 영화 <도둑들> 같은 포퍼먼스를 상상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그 중 홍어라는 인물이 너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버린 아빠를 이기기 위해 사업을 진행했고 이제는 아빠보다 돈도 더 많이 벌게 된다. 그런 홍어의 앞에 아빠가 나타난다. 아빠는 홍어의 울부짖음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홍어의 화를 묵묵히 듣기만 할 뿐. 홍어가 이젠 내가 아빠보다 더 많이 벌 거라고 얘기해도 말이다. 홍어는 그렇게 아빠를 이기기 위해 최선의 패를 가졌고 올인했다. 필드에서 이기고 돈을 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빠라는 플레이어보다 내 패가 높기만을 바란 것처럼.


아빠의 애인도 만나게 된다. 어쩐지 아빠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는 애인. 홍어는 답답하다. 아빠 말고 자기한테 오라고 얘기하지만 여전히 그는 아무 반응도 없다. 난 이제 아빠보다 더 많이 벌 지도 모르는데.


그런 홍어의 눈앞에 아빠가 다시 등장한 건 자살 이후다. 아빠와 애인은 같이 동반 자살을 진행했다. 홍어는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바랐던 건 아빠를 이기는 거지 죽이는 게 아니었다는 걸. 내가 가진 패가 드디어 아빠를 이겼지만 아빠는 이미 필드에서 폴드한 플레이어일 뿐. 홍어는 목적을 잃는다. 벌려둔 사업도 무의미해진다. 죽기 직전에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을 찾아온 아빠를, 사실 홍어는 아빠를 누구보다 보고 싶어했던 걸까. 홍어는 자책하며 운다. 내가 한 마작은 필드 위의 패들을, 흐름을 바라보고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아빠라는 플레이어만을 이기기 위한 마작. 홍어의 마작은 실패했다. 사업을 포기한다.


홍콩이란 인물은 청년 무리 중 미인계를 담당하는 친구다. 남자니까 미남계인가. 영화 설정상 꽃미남이다. 홍콩에 살지 않지만 이름은 홍콩이다. 어쩌면 성적인 농담으로 하는 홍콩 보내줄게의 그 홍콩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콩은 침대 위에서만 활동하는 인물이다. 부자 여자를 한 명 낚으면 홍콩은 그에게 애인 역할을 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돈을 뜯어내는 것.


영화 초반부에는 이상한 규칙이 나온다. 홍콩이 데려온 여자는 무리들에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 낯선 여자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이 무리는 돈만 뜯어내는 게 아닌 정신도 갈취할 줄 아는 집단이다. 홍콩은 그렇게 여자를 데려오고 무리에게 공유해주는 역할이었다.


부자 여자를 홍콩은 묶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점점 홍콩에게 집착이 심해진다. 홍콩이 바라던 미래는 이게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바라온 성공에는 평범한 사랑도 있었던 것 같다. 홍콩은 부자 여자가 데려온 두 명의 친구에게 농락 당한다. 홍콩을 바라보는 아줌마들은 꽃미남이 있다며 좋아하며 홍콩의 성기를 만지는 등의 행위를 한다. 그리곤 만두를 사 왔다며 먹으라고 한다. 부자 여자는 홍콩에게 친구들 앞에서 쪽팔리게 만들지 말라고 하며 성행위를 빼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홍콩은 결국 포기하고 배부터 채우기로 한다. 만두를 입 안에 욱여 넣는다. 여자들은 칭찬한다. 아직 어리다며 이것도 저것도 먹으라고 강요한다. 계속 먹던 홍콩은 만두를 뱉어낸다. 입 안에 든 만두를 전부 뱉어내자 이제는 울음까지 뱉어낸다. 그런 홍콩을 보며 여자들은 웃는다.


청년 무리 집단에서 중요한 규칙은 키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가 내포된 건진 모르겠다. 그러나 홍콩은 키스를 하고 온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바라온 사랑과 삶이 이게 아니었다는 생각인지 멘탈이 붕괴된다. 그날 이후 정신없이 계속 울기만 하던 홍콩은 끝내 사업을 포기한다.


주인공 또한 무리에서 나온다. 그러자 소부처가 대장 역할을 한다. 홍콩의 자리도 홍어의 자리도 룬룬의 자리도 모두 대체했다. 그들이 없어도 사업은 돌아가고 누군가는 역할을 잇는다. 소부처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사짜이며 또한 이름에 어울리게 대머리이다. 이름도 무슨 상관이 있을 것 같은데 의미 그대로 부처인진 모르겠다.


룬룬은 마트라를 좋아한다. 청년의 방황 사이에서도 피어나는 한 줄기 사랑. 진흙에서도 꽃은 피었다. 모든 일을 포기하고 룬룬은 마트라를 사랑하기로 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사회 안에서의 청년들의 방황, 휴유증이 오래 남았다. 홍콩의 울음과 홍어의 울음은 마음을 내내 괴롭혔다. 타이베이라는 공간과 급격히 성장하는 도시의 모습과 방황하는 청년의 모습을 에드워드 양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았다.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종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알고 보면 종점이 아니었다는 것, 사실 인생에 있어 목표는 누군가를 뛰어넘는 수동적인 게 아닌 듯했다.


홍콩에게 부자 여자는 이런 얘길 했다. 남자들의 로망을 오늘 채워주겠다고. 남자들은 여자 여러 명이랑 하는 걸 좋아하잖아. 홍콩은 그런 삶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잡아먹히는 삶이 싫었던 것 같다. 자신이 바라온 성공은 이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홍콩은 언제든 자기 자리가 대체될 수 있는 자리였고 자신은 열쇠처럼 문을 따야만 하는 존재였다. 조종만 당하는 삶, 사랑 없이 행위만 해야하는 삶은 홍콩에게 토할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사정을 남들은 웃기만 할 뿐이다. 광대가 되어버린 삶에 홍콩은 눈물을 뱉는다.


아마 영화를 보는 청년들은 홍콩과 홍어에 공감이 갈 거로 생각한다. 홍어처럼 아빠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목표로 경쟁하는 삶을 살았을 테고. 그리고 그건 진짜 목표가 아닌 트릭이었다. 블러핑. 뻥카. 상대의 패가 진짜든 아니든 상관 없는 속임수 말이다. 청년들이 사회에서 벌이는 한 편의 마작은 블러핑만 가득하고 알멩이가 없었다. 그리고 폴드하고 나서야 필드가 제대로 보였다. 내가 가진 패가 가장 좋은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는 가장 낮은 수였구나. 그리고 그제야 필드에서 다음 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알게 됐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패는 사랑이었다. 사랑을 위해서 룬룬은 마트라에게 달려가서 키스한다. 그것이 방황하는 청년인 우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수 아닐까.


에드워드 양을 이번에 알게 됐다. <애프터 양>도 오래 휴유증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양... 그 이름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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