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일기

그냥 일기

by 수호


연말이 되면 뭔가 뒤숭숭한 느낌부터 아무 생각도 안 들기도 한다. 시작하자마자 무슨 이런 비문을 쓰냐고 한다면 글쎄, 시간이 발산한다 같은 것 아닐까. 시간이 발산한다면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시간 안에 있는 것이니까.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최진영의 <쓰게 될 것>이라는 소설집 마지막 소설엔 "시간이 발산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사실 제대로 이해는 못했다. 그냥, 그런 의식의 흐름 내지 뭐랄까 마르셀 프루스트 식의 방법 아닐까. 프루스트가 썼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제대로 읽진 않았으나 다신 안 읽을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연말에 난 무책임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같은 거다. 생성한 말에 대해서 인공지능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은 오롯이 인간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난 뱉어놓고 마는 인공지능 같은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인도에 가기로 했다.


챗지피티한테 물었다. 너는 어째서 할루시네이션을 만드냐고. 챗지피티는 대답했다. 무조건 대답하도록 만들어져있기에 대답의 정확성이 아닌 연결성이 키워드라고 한다. 즉, 정확하지 않아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과한다는 것은 말이 끊긴다는 것 즉,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대언어모델은 말이 계속 연결되도록 해야지 대화한다는 착각을 인간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난 저지른 일들이 많다. 정말로. 이렇게 많은 일들을 벌려놓고 난 어떻게 이렇게 여유롭게 구는 건지 신기하기도 한다. 단편영화의 조연출도 맡았고 1월 중순부턴 프로덕션이기도 하다. 어떤 제작사의 작가로 미팅을 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팀장이기도 하다. 근데 난 무책임하게 인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런데 왜 인도냐면, 인생이 요즘 안녕했다. 인도 여행 유튜브를 쭉 보는 중이다. 포테이토 터틀부터 빠니보틀까지. 그러다 어떤 42살의 아저씨가 그 얘길 했다. 인도에선 화 내는 나만 손해라고. 여기 사람들은 계속 빵빵거리지만 아무렇지 않고 평온하다고 했다. 길이 얼마나 시끄럽든 이곳이 얼마나 시끄럽든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고 했다. 화가 나는 건 이곳에서 자기뿐이라고.


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바뀌는 거라고 했다. 아저씨의 유튜브 영상을 보자 그 말이 와닿았다. 나는 나를 컨트롤할 수 있을까. 나는 거기서 체념 내지 순응할 수 있을까. 손으로 밥을 먹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평온할 수 있을까.


사실 그리고 인도의 한 영화제에 가려고 한다. 영화제보다는 시상식에 가깝다. 어떤 작은 영화제에 겸사겸사랄까. 그리고 생각보단 싸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자 보험(실속형) 포함 항공비는 70으로 해결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항공을 이용하면 비행기 값이 약 10은 더 비쌌다. 그렇기에 인디아(?) 항공사를 이용했다. 직항으로 9시간 정도였나. 사실 E-visa를 발급받는 일이나 호텔을 알아보는 등의 일들은 너무 귀찮다. 그런 귀찮음을 돈으로 메길 순 없지만 비자 발급은 진짜 상당히 귀찮았다. 어떤 나라보다 더 귀찮았다.


나는 그렇게 신년을 인도에서 보낼 예정이다. 무사히 돌아올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무사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배워와야지. 뭐, 이렇게 써 놓고 돌아온 뒤에는 10페이지에 해당하는 인도 욕을 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가봐야 아는 것 같다. 가지 말라는 곳도 가봐야 가지 말라는 이유를 아는 것이고


영상으로 보는 건 직접 경험이 아니다. 좋게 말해도 간접 체험이지. 손에 닿고 냄새를 맡고 만지는 것이 체험이지 인터넷 화면 너머로 보는 건 체험이 될 수 없다. 그저 시청이지.


사실 여기엔 부모님의 말도 보탬이 있었다. 인도에 가보길 원하셨다. 조금 더 내 방식으로 순화한다면 해외여행을 하길 원하셨다. 뭐랄까, 나도 만약 자식이 있다면 그럴 것 같았다. 남들 다 가보는 해외여행을 내 자식은 못 가본다면 미안할 것 같았다. 나의 확대 해석일 수 있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항공비를 보고 쉽게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학원에서 일하면서 번 돈, 이럴 때 써야지.


이제 월요일이 되면 여기저기 연락해야 한다. 교수님한테 일정 관련 문의를 해야 하고, 피디한테도 일정 관련 얘기를 해야 하고, 종강이 23일이기에 내일까지 기말과제도 제출해야 한다. 사실 아직까지 완성시키지 못했다. 여전히 책을 찾아 읽고 있다. 내가 쓰려는 내용과 떨어지는 책을 찾아 읽어서 너무 좋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책의 내용을 복사하고 있었다. 이러면 내가 창작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연말에 신기한 선택을 했다. 아마 내 인생을 돌이켜 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일 아닐까. 확실히 뭐라고 할까. 주체적으로 자신이 고생한 일에 대해선 오래 기억 남는 것 같다. 나에게 미국이 그랬다. 따라가고 따라가고 따라갔던 미국의 14일보다 내 스스로 홀로 오롯이 움직였던 하루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 하루도 무척이나 사실 짧았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 저녁 전에 돌아왔으니까.


그렇다. 그냥 밤 중에 갑자기 형들따라 카지노에 따라갔던 기억처럼, 예상하지 않았던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건 돈의 차원이 아닌 것 같다. 돈으로 따지면 그랜드 캐니언이나 태양의 서커스를 오래 기억해야 하지.


어떤 고생을 하게 될지 혹은 어떤 상처를 받고 돌아올 수도 있는 인도 여행이다. 마음 같아선 동행도 하고 싶다. 아빠와 함께 갈진 여전히 생각 중이다. 아빠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닌 그냥 좋아하실 것 같았다. 인도 사람들은 눈치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회라면 사실 생각보다 좋은 세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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