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쓰는 일기

그냥 일기

by 수호


나는 지금 KTX 상행선 열차에서 브런치를 작성 중이다. 저녁 시간인 탓인지 기차의 좌석은 대부분 차 있다. 매번 막차를 탔던 탓인지 만원인 열차는 낯설기도 하다.


함께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까닭은 우리는 혼자 살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누군가와 동행하고 함께한다는 것, 그것은 불편함을 뛰어넘는 이로움이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고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왔다. 인도를 일주일 여행하고 이제는 2-3주가 지나가는 시점이 왔다. 부모님 선물로 준비한 히무룩(스카프, 망토 같기도 하다)을 들고 면세점에서 산 과자도 준비했다. 과자는 현지 가격을 생각하면 정말 비싼 거였다. 패밀리 레스트랑에서 밥과 디저트를 먹은 것보다 내가 산 과자 하나가 더 비싼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본가는 시끌벅적했다. 형제가 다 모인 것도 오랜만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수록 가족 구성원 전체가 모이는 건 힘든 일이 되었다. 바쁘다는 게 핑계일진 모르지만 다들 이젠 각자의 독립된 삶을 꾸려나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내가 인도를 간 것처럼 가족들도 각자의 여행을 즐겼다. 싱가포르를 가거나 베트남을 가거나 홍콩을 가거나. 해외여행은 분명 나에게 사치로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동기들의 여행 게시물은 질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으론 사실 그렇게 질투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냥 다른 서버에 접속한 느낌 같았다. 내가 접속한 서버는 국내 서비스만 있었다. 해외 유저를 만나보고 하는 것은 사치가 아닌 서버 바깥의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인도를 내 돈으로 갔다 왔다. 부모님은 자꾸만 돈 얘길 했다. 돈도 없는 애가, 돈 준다니까, 밥은 먹고 다녀야 한다고. 얘기만 들으면 내가 굶으면서 갔다 온 것 같지만 나는 내 기준에선 풍족했다.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5만원 하는 히무룩을 두 개나, 면세점 과자를 사오기도 했으니까.


인도 여행 경비는 150이었다. 비행기 값과 여행자 보험 포함 70으로 잡았고 50만원을 환전해 갔다. 그리고 나머지 30은 숙소나 기타 비용이었다. 미리 말하자면 10만원이 오바되어서 160을 썼다. 사실 그 10만원은 바가지, 사기 등에 의한 것도 있고 나의 부주의로 인한 실수로 생긴 비용이기도 했다.


뭐, 돌이켜보면 이것보다 충분히 덜 들 수도 있었고 더 쓸 수도 있었다. 당연한 얘기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확실히 내가 쓴 150이 해외여행 기준에선 싸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이라는 기한을 생각하면 더욱이.


그리고 인도를 갔다 온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부르기도 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인도 여행은 관심사였다.


어쩌다 1월 말이 벌써 찾아왔다. 나는 여러 프로젝트가 밀려 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다. 매번 데드라인에 좇겨가며 작업을 진행하고 압박을 받기도 하는데


이제는 익숙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쩌면 이런 삶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할 일이 계속 있어야지 사람이 부지런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떳떳했다. 이게 돈이 되고 어떻고를 떠나서 그냥 스스로 떳떳했다.


아직 20대 후반인데 벌써 많은 친구가 없어진 느낌이다. 사실 처음부터 많지도 않았지만 연락의 텀이 길어진다. 친햇던 친구들과의 연락도 몇 년 동안 없기도 했다. 인스타로 훔쳐보는 소식들은 뭐랄까, 여전히 인위적이다. 나 잘 살고 있어,를 여전히 강조하는 느낌인 인스타.


올해 고생했어,를 여전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누군 어디 출연했고 무엇을 했고 하는 소식들은 여전히 여러 생각이 든다. 좋아요를 누르는 나의 감정은 오롯이 좋아요만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잘 됨을 분명 축하하고 응원해야 하는 것인데 그냥 이젠 남 같다.


남에 대해선 사실 감정이 마르는 느낌이다. 그렇구나, 딱 이 정도. 아닌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 감정도 잘 모르겠고 내 인생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꿈을 묻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면 사실 대답하기 어렵다. 그런 게 있어..?


학원생들한테 가끔 묻곤 했다. 꿈이나 미래나 하고 싶은 것 따위를. 그러면 애들은 생각보다 대답을 잘 한다. 그러다 보면 대답하지 못하는 친구도 분명 있기 마련이다. 작년의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올해의 나는 글쎄, 사실 쟤내들 보다 10살 더 먹은 나도 여전히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마찬가지라는 걸 깨닫곤 한다. 그건 뭐랄까, 내 껍데기만 선생인 느낌이다. 사실 나한테는 보고 배울 것이 없는데.


학원은 다음 달에 마무리하게 된다. 아이들한텐 언제 말해야 할까 싶다. 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초6 아이들이 예비 중1 과정을 준비하게 되어 새롭게 수업이 추가 되었다. 초6은 3명이었다. 왜 이렇게 적나 싶기도 한데 적어서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고 뭐 어쨌든


그 친구들한텐 얘기했다. 나는 다음 달까지. 속 마음은 사실 정 주지 말라는 뜻이었다. 차마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어쩌면 나한테 하는 얘기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학생들은 길게는 1년을 봐온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한텐 나도 모르게 정을 많이 준 것 같았다.


국민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11월부터 2만원 씩. 1년이면 24. 부담이다. 나는 사실 그에 상응하는 수익이 없다. 대학원생의 삶은 가난의 연속인 것 같다. 등록금 때문에 학자금 대출은 날로만 쌓여 가고


학원 일까지 그만두면 수익이 없어지지만 졸업을 위한 선택이었다. 석사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스스로 조바심이 나고 조급하다. 석사는 올해 바로 끝내자.


작년을 돌이켜 보면 뭐랄까, 정말 모르겠다. 촬영을 많이 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었나, 아니다. 내가 놓친 거니까. 엄마는 내게 올해는 삼재라고 했다.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사실 항상 조심하며 살아왔다.


메이드인코리아가 상영했다. 나는 작년 여름에 메이드인코리아2에서 보기 좋게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게 작년 마지막 오디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주어진 오디션을 나는 보기 좋게 말아 먹었다.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항상 되내었지만 나는 여전히 준비되어 있질 않았다.


뭐,


2년 뒤면 서른이 된다. 서른까지만 연기해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게 얼마 안 남았다는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나 사실 되게 쫄보였다. 서른 되게 멀게 느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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