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

그냥 일기

by 수호


나의 시력은 좋지 않다. 그러니까 세상을 흐릿하게 보고 살아가는 건데 이게 썩 나쁘진 않다. 귀찮다는 이유가 크긴 하지만 그냥 굳이 세상을 또렷하게 볼 필요성을 느끼질 못한다. 그렇기에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도 끼지 않으며 그냥 안 좋은 시력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는 숱한 디테일을 놓친다. 누구의 수염이나 잔털, 뭐 이런 것들. 사실 보이질 않아서 신경 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시력이 좋은 누군가는 한눈에 알아보곤 한다. 그러면 서로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게 실감난다.


근데 이젠 이것도 나름 익숙해져서 별로 신경 쓰이질 않는다. 눈이 좋든 안 좋든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이것도 내가 마이너스 시력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이긴 할 거다. 그냥 세상 좀 덜 보고 사는 게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질 못하겠다.


이런 눈 때문인지 나는 다른 사람을 잘 쳐다보질 않는다. 뭐랄까, 봐도 어차피 모르겠고 기억하지 못하겠으니까. 멀리 있는 사람을 볼 때면 정말 그 사람의 형체만 파악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내가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관찰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은 나를 보질 않는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방적 관찰, 일방적 시선, 나만 당신을 쳐다본다,


이런 감정은 생각보다 나를 아프게 만든다. 나만 그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건 너무 일방통행 같아서 괜히 눈을 감고 아픈 마음을 추스리곤 했다.


벚꽃이 예쁘게 폈고 세상엔 꽃 투성이가 되었다. 아픈 마음을 복기하면 다시 마음이 아파지는 탓이라 일기를 쓰는 지금도 괜히 마음이 쑤신다. 어차피 용기가 없어서 헤어질 때까지 마음만 아파할 거면서,


이런 인생을 28년 살아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는 겁쟁이고


사실은 이쯤되면 중증 환자처럼 내가 왜 아픈지도 모를 때가 있기도 한데

아픔의 원인이 사실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것

아픔은 꽤나 복합적인 것이라는 것

질병이란 것은 쉽게 전파되고 전이된다는 것


나의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알지만 나는 의사가 아니라는 게 너무 슬플 뿐이다. 어젠 예비군을 갔다. 예비군 군복이 엄청 타이트했다. 나도 살이 찌긴 했구나. 문제가 생겼다. 오전 훈련 중에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뭐지, 허리디스크가 터졌나? 근데 그 증상이랑은 좀 다르긴 했다. 엉덩이 근육에서 허벅지로 내려오는 통증이 찌릿하기보다는 근육이 뭉친 느낌에 가까웠으니까. 어쨌든 걷기가 불편했다. 아, 어쩌지


그렇게 어젠 18000걸음을 걸었고 나도 참 징하다고 느꼈다. 이 다리로 어떻게 이렇게 했지. 사실 내상 만큼 증명하기 어려운 아픔은 없는 것 같다. 외상은 눈에 보이니까 증빙이 쉬운데


내상은 뭐랄까, 환자가 직접 증명해야 하는 슬픈 아픔 같았다. 마음이 아픈 것도 내상인지라 내 마음이 아픈지 증명하려면 물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래 아파하다 잠에 들고 조금씩 아픔을 지워나가는 연습을 하면서 상대를 잊어간다.


가끔은 나의 이런 마음을 상대가 알아줄까, 생각도 해보지만 글쎄

그걸 알면 나도 이러고 있진 않을 것 같았고


괜히 쓸쓸한 마음에 동네 고양이 나비랑 세세세하는 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 마저도 나비는 잘 받아주질 않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이렇게 아무 말이나 끄적이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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