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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Nov 14. 2022

종이 일기는 어디로

그냥 일기

일기장에 일기가 쓰이질 않고 있다. 종이에 쓰지 않게 됐다. 블로그와 브런치 때문이다. 정확히는 브런치 때문이다. 블로그엔 주간 일기 챌린지 때문에 일주일에 한 편만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런치를 탓할까.


사실 누구를 탓하고 뭔가에 잘못을 넘기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냥 탓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인간의 나약함 혹은 이기심 때문일 테니. 음, 뭔가 이렇게 적으니 글이 무거워질 것 같다. 그냥 쓸 말이 없어서 이러는 거니까 이해 바란다.


이해란 말이 참 어렵다. 이해와 듣는 건 다르다. 이야기를 듣는다고 그를 이해할 수 있진 않다. 물론 이해한다고 듣는 게 온전하다는 것도 아닐 수 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하면


아멘. 무신론자를 위한 기도방은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자는 누구에게 기도하는 거냐고? 그건 굳이 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기도를 명상의 개념으로 본다. 심신 수양에 도움되는 명상 말이다. 자기 자신의 온전한 생각을 접하고 만나는 건 오로지 명상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 불가능하다. 손에 들린 휴대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딱히 배운 사람도 깨어있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다. 특히 연기에 있어서 말이다. 동아리를 나오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자신이 없어졌다. 큰일이다. 트라우마로 남지 않은 건 다행인데, 그래도 불안한 건 맞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돌아가 보면 어딘가에 선이 꼬여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세상은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동아리에 들면서 후배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젠 불가능해졌다. 멀어지면 멀어지지 친해지는 건 다음 생에 해야겠다. 학과에 친구가 많아서 뭐하겠는가. 이게 맞나.


영어 수업 중이었다. 파트너와 인터뷰를 하는 거였다. 파트너는 내게 나이를 물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1학년 수업인 영어 수업에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사실이 너무 슬프다. 어떻게 해야 나를 좋아할까, 이런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냥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는 내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였어도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머리가 어지럽다. 나만 진심이었구나.  또 나만 진심이었지.


오디션엔 떨어졌다. 보기 좋게 말이다. 어쩌면 당연했던 수순일까. 사실 붙으면 어떡하지 싶기도 했다. 3차를 보고 또 올라가야 하니까. 하핳. 합리화가 제일 어렵다. 자위도 못하겠다. 그냥 떨어졌구나, 사실 별 감정은 안 드는데 아쉽긴 하다. 


읽어야 하는 책이 너무 많다. 다 조금씩 보다 말았다. 책도 많으니까 무슨 넷플릭스처럼 미리보기 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넷플릭스에서 영상 조금 보다 재미 없네, 하고 넘긴 느낌. 그런 책이 내 책장에 가득하다. 김영하의 <작별인사>가 그중에 있다. 솔직히 작가의 명성에 또 그의 스타일에 기대한 독자로서 난 실망했었다. 그놈의 인공지능이니 AI니 로봇이니


난 공감 못하겠다. 차라리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을 다시 읽겠다. 물론 이 책도 앞에만 읽고 말았다. 이 책의 명성은 익히 알겠는데 고전은 내 취향이 아니다. 마저 읽다만 책을 나열하면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가 있고 <엘리트 세습>과 이소연 시인의 <거의 모든 기쁨>이 있다. 사실 더 많다. 근데 더 언급하긴 귀찮다.


예쁜 책을 하나하나 모으면 뭐가 나올까. 뭐가 나오겠어. 그냥 책이 나오지. 일기를 끝내야겠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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