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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Nov 26. 2022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냥 일기

기분이 좋지 않다. 속된 욕설을 쓰고 싶다. 사실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진 데는 이유가 있다. 영어 교양 때문이다. 2학점 교양 주제 시키는 것도 많고 하는 것도 많다. 어렵진 않았었다. 하지만 갈수록 귀찮음과 쌓이는 과제 그리고 부여받은 점수에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학생의 본분을 잊은 거냐, 그러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열심히 했는데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 그때의 기분이 너무 싫다. 하라는 거 다 했는데 B제로를 주는 교수가 있었다. 사실 강의 때부터 그 교수를 좋게 보진 않았지만 강평 후에는,, 그래도 강평은 만점 줬다. 솔직히 교수의 잘못이지 강의의 잘못이 아니니까. 뭔가 반대로 말한 거 같지만 아니다. 좋은 교수만 있으면 그것도 훌륭한 공동체는 아닐 거다.


아.. 누굴 까내리는 거 아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더 잘했으면, 다른 학우보다 더 잘했다면 된 거니까. 그럼 자본주의의 잘못일까. 교육의 문제?


아니, 일단 내 기분이 나쁘다. 진짜 영어 에세이 쓰라고 해서 열심히 썼더니 점수가,, 하. 진짜 하기 싫다. 또 내일까지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내봤자 이 점수일 텐데, 이런 생각이 든다. 악순환이다.


새벽부터 오늘은 일어나 일을 했다. 보조출연을 하면서 느끼는 건 절실하게 하나다. 하기 싫다. 저런 인성의 스태프가 있으면 그 작품이 잘 안 됐으면 하는 꼬인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빨리 보조출연을 벗어나 단역이 되고 싶다. 그러면 나도 이런 대우 안 받을 텐데.


일찍 촬영이 끝나서 좋긴 했지만 너무 추웠던 하루다. 너무 추워서 지하철이 그리웠다. 지하철 안의 그 더움이 그리웠다.


이태원역엔 새벽부터 경찰들이 있었다. 분향소에 놓인 수많은 꽃과 메모지를 보니 숙연해졌다.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을 봤다. 낯익은 골목이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이곳에서 그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게 비참했다. 꽃만큼이나 많은 빼빼로가 놓여 있었는데 빼빼로는 오래도록 상하지 않을 거다. 추모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과제를 하려고 이클래스를 들어갔고 영어 과제 점수를 보자 의욕이 사라졌고 그래서 브런치를 켰고. 오늘은 종이 일기를 쓴 탓에 인터넷 일기는 생각 없었는데. 너무 기분이 나빠서 어떻게 해야 하지, 했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풀린다. 신기하다.


수요일 날에 전화가 왔었다. 예전 유튜브를 찍었던 감독이었다. 수업 중이여서 받지 않았고 수업이 끝난 후 카톡을 보냈다. '수업 중이여서 끝나고 연락 드립니다' 잘못 보냈다. 수업이 끝났고 이제야 연락을 한다, 이런 의미로 보냈어야 했는데. 


그걸 난 오늘 알았다. 난 그동안 '왜 연락이 없지' 이러고 있었다. 내일 촬영인데 이미 연락하긴 너무 늦은 거 같고. 이렇게 연이 하나 끊긴 것 같다. 사실 미련이 남진 않는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은 생각이 찝찝함을 남겼다. 그 찝찝함은 뭐랄까. 죄책감, 미안함 등의 나에게 있어 부정적인 감정의 집합일 거다. 그 찝찝함의 대명사는 나에게 동아리로 남았다. 공연이 한 달 남지 않았을 때 동아리를 탈퇴했다. 물론 여러 사정이 있었고 재오디션 얘기도 나왔지만 어쨌든.


부원을 마주치면 그 마음 속 남아있던 일말의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주쳐도 인사하지 못하는 사이. 난 탈주범. 동아리에 들어가서 인맥이 아닌 적을 쌓고 나온 느낌. 동아리를 나오면 개운할 줄 알았다. 난 거기서 끝까지 했어도 하지 않았어도 혼자였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아무도 내 편은 없었고.


그런데 그 죄책감 비슷한 이 감정을 뭐라 형용할까. 


요즘은 정말 그렇다. 어제였나. 여우와 연락하던 중 그는 수업이 끝나고 연락하게 했다. 5시에 수업이 끝난다고 해서 5시 근처에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10시에 왔다. 우산 있냐는 거였다.


나는 5시부터 여우의 연락을 기다렸다. 존심에 먼저 연락은 하지 못했다. 그가 전화가 왔을 때 못내 좋았는데 그 어떤 이야기보다 우산이 먼저 나와 못내 서러웠다. 밖엔 비가 왔고 도서관에 있던 여우를 위해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갔다. 추운 날에 목폴라 티 하나만 입고 있었던 여우


초코우유를 저녁으로 먹을 만큼 미련한 아이다. 싫은 데 좋다. 이 절망적인 관계를 끊어내질 못한다. 

인터넷 일기인데 너무 사적인 얘기를 많이 담은 느낌이다. 훗날 이런 글이 나를 위험하게 만들진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죄는 솔직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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