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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an 10. 2023

어쩌면 우린 어려서

그냥 일기

잘 맞는 친구가 생겼다. 통화를 2시간씩이나 할 정도로 말이다. 우린 그렇게 만나게 됐다. 귀여운 친구였다. 정말로. 성격도 외향도 모두. 품에 쏙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내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냥 그게 너무 미안해서 오늘 하루가 엉망이었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엔 분명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럼


끝났지만 그후에 온 카톡은 다시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빠-동생으로 되돌아가기엔 많이 나아갔을 테니까. 카톡에 애써 쿨하고 싶었지만 난 쿨하지 못했다. 신경 쓰였고 짜쯩났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데 보고 싶어서 내가 했던 행동이 후회되서 


종일 컨디션이 이상했다. 쉬는 잠깐의 틈마다 자꾸 기어들어오는 그 친구의 관념을 어떻게 하질 못했다. 친구로라도 지내고 싶은데 그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아도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막진 못하니까.


길을 가다 그 친구로 보이는 사람을 봤다. 옆엔 어떤 남자가 있었다. 진짜 손이 떨렸다. 기분이 나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친구가 맞는진 모르겠다. 그게 너무 슬퍼서 


걸어오는 길이 너무 아득했다. 이렇게 긴 길이었던가 여기가. 어젠 2시간을 잤는데 어째서 몸이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겠고. 카뮈의 이방인을 꺼내자 귀신같이 잠든 것으로 보아 피곤한 상태는 분명한데


장문의 카톡을 결국 남겼다. 친구로 종종 연락하자는 그 친구의 말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까. 그걸 밝히는데 1줄이면 충분한 걸 난 장문으로 썼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으니까. 진짜 거짓도 연기도 없이 순수하게 좋아했는데 상황이 순수하질 못했다. 그럴려고 나 만나, 이 말이 맴돌 줄은 몰랐다. 나 그럴려고, 라는 말에 이젠 정말 무섭다. 그럴려고로 보였다면 보인 거니까. 의심에 확증은 말 한마디면 되지만 의심을 지우는데는 증거가 필요하다. 근데 상황은 순수하질 않았고.


말보로 포레스트 캡슐을 깼다. 딸기 맛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캡슐만 빨았다. 입김을 연기삼아 내뱉으면서 몇 번을 그러다 버렸다. 버린, 아니 재떨이 옆에 고이 두었지만. 아니, 아마 버려질 운명의 담배갑이었을 거다. 안에는 약 14개비 정도가 남았을 거다.


기분이 주식 차트처럼 시시각각 변했다. 아팠다. 짜증도 났다. 공허했다. 불안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답답했다. 일을 하는 중엔 괜찮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땐 괜찮지 않았다. 그것을 반복하다


일이 끝나고 설에게 싸인을 받았다. 격한 환영에 예상 외였다. 뭐지, 이건 좀 과하게 좋아하는데 싶었다. of us 앨범에 싸인을 받자 느낌이 이상했다. 성덕일까. 설호승님이 하는 얘기를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나보고 잘생긴 오빠라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외모 기준은 설이 정하는 거다. 설이 잘 생겼다면 난 잘 생긴 거 ㅎ


설렜다. 좋았다. 돌아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사진을 연신 찍었다. 앨범을 찍고 스토리에 올리고. 스토리에 올리려고 하는데 그 친구 아이디가 위에 떴다. 다시 기분이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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