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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Feb 16. 2023

미운 오리 새끼의 고백

그냥 일기


무신론자들을 위한 기도실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봤던 문구다. 아마 현대소설론 강의였던 것 같다. AI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였고 교수님은 자신이 쓴 소설만큼이나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았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공계열 교수의 입장은 분명했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이다. 그 어떤 반란도 반발도 일어날 수 없는 대응일 뿐이다. 문창과 교수처럼 AI가 미래 사회에 반란을 일으키는 디스토피아 따위는 없었다.


그런 인공지능을 증명하듯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졌다. 문구와 키워드 등을 입력하면 그것에 맞게 소설을 써주는 거였다. 물론 뭐 대단하진 않았다. 그냥 뼈대만 있는 스토리 완성은 되어도 그 이상은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만든 사람은 말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말이다. 무신론자들을 위한 기도실을 만들고 싶다고. 그게 어쩌다 인공지능이고 그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기도란 부족한 사랑을 메우는 일이라고 시에서 쓴 적이 있다. 시의 화자는 오른쪽 약지가 없는 신부였고 그에게 빈 손가락만큼이나 가리지 못하는 세상을 촛불에서 확인한다. 촛불을 끄기 위해 손을 내밀자 빈 손가락 사이로 빛이 새어 나간다. 약지에 사랑을 약속할 반지를 달 수 없는 신부의 손과 그의 직업은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기 좋은 사례였지만 그만큼 시가 빛나진 않았다.


고등학생 때 썼던 위의 시를 작년에 수정해보았지만 잘 되진 않았다. 약지가 없고 촛불을 끄려고 할 때 빛이 빠져나가는 걸 쓰기엔 너무 시가 설명적이 되었다.

 

기도란 시 쓰는 것도 수련도 명상도 모두 포함된 단어 같다. 그렇기에 기도는 바란다와 일맥상통한다. 무언가를 빈다는 건 소망한다는 거고 그것은 욕망의 실현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 욕망은 보통 지금 당장은 실행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서 생겨난다. 전쟁이 끝나길 기도하는 것도 로또 1등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 기도라는 뜻이다. 이렇게 따지면 모두가 일치하는 게 되겠지만 문창과 4년의 커리큘럼은 궤변만 늘어난 거다.

합장을 드리는 여승을 생각한다. 백석의 여승이라는 시에선 여인이 여승이 된다. 우연히 그것을 보게 된 화자는 복잡한 심경을 느꼈을 거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여인은 어쩌다 여승이 된 걸까. 일제강점기 시대를 투영한 배경을 생각하면 여인의 슬픔은 거시적이며 절대적인 게 된다. 그 절대적인 상황 속 바라는 기도는 독립과 연결되지만 백석은 거기까지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와 슬픔과 비애를 잘 드러낼 뿐이다. 윤동주와 다른 점이라면 시대를 어떻게 반영했느냐일 거다. 윤동주는 시대의 상황 속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부끄럽다. 자신이 일본에 유학할 수 있는 이유는 잘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배운 탓에 시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 자신만이 누리는 행복이 잘못되었음을 알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끊임없이 부끄러웠고 참회한다.

 

백석도 윤동주도 기도했을 거다. 세상이 행복하기를. 어쩌면 시인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건 내 착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착각을 믿는다. 랭보가 시를 쓰지 않게 된 것도 윤동주가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것을 시에 담았던 것도 이육사가 언젠간 올 독립을 꿈꾸며 시를 썼던 것 모두가 세상을 사랑했던 까닭이라고. 그래서 난 이들을 INFP라고 생각한다. 인프피 특, 세상을 사랑함. 언젠가 봤던 SNS 밈이었다.

 

현대소설론에서 시인들은 인프피라고 발표했었다. 어떠한 근거도 없었다. 아니, 근거라곤 저거 하나였다. 세상을 사랑함. 다른 엠비티아이는 안 사랑하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내 알 바인가. 요즘은 이걸 알빠노? 이렇게 쓰던데. 문찐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새로 나온 아이돌 같다. 눈 뜨면 자꾸 새로운 얼굴들과 이름들이 무대 위에 존재한다.


교수는 내게 물었다. 수호님은 (그들이) 인프피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예요?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세상을 사랑해서요. 교수는 주위 학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인프피 있어요? 몇몇이 손들었다. 수업을 듣지 않는 이가 7할은 되었지만.


말하는 감자는 오늘도 세상을 사랑해, 라고 에세이라니에 수필을 쓴 적이 있다. 제목이 좋다고 사장은 내게 칭찬했다. 교수 앞에 학생들은 모두 말하는 감자라고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그냥 교수 눈에 우리들은 말하는 감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땐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 스무 살 때 인문학을 공부하자 아는 척의 재미를 들였다. 사실 인문학이라고 해도 뭐 손가락의 손톱만큼도 안 담근 건데. 그땐 그랬다. 그렇게 인문학을 배우면서 의문이 들었다.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왜 신을 안 믿을까. 물론 시 교수님은 천주교인 거로 안다. 소설 교수님도 종교가 있긴 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공부에서 신을 제외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은 죽은 후의 벌을 반드시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아. 하지만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걷게 한다. 그것은 신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명예와 양심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187쪽)

     

안네의 일기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종교의 순기능은 이거라 생각한다. 종교의 시발을 생각해도 동감한다. 인간의 공포심을 없애주는 것에서 기원했으니까. 두려움과 공포를 인간에게서 배제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신적인 차원이다. 탈인간의 요건엔 욕망을 없애는 것에 있는데 그 욕망의 최상위는 두려움과 같은 본능적 차원의 욕망일 거다. 

    

“그래, 좋은 소년이다. 하지만 페터는 성격이 약한 아이니까 좋게든 나쁘게든 금세 영향을 받기가 쉬워. 그가 언제까지나 착하기를 나는 바란단다.”     


또한 종교는 사람을 순하게 만드는 역할이 있다. 페터의 종교는 알 수 없지만 종교인 특유의 친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배려할 줄 안다고 할까.


불자인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떤 신천지가 내게 물었다. (불교도) 어쨌든 신을 믿는 종교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도하고 싶으면 공부를 좀 하길 바랐다. 부처님을 신으로 생각한다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말을 삼켰다.


그때 그 신천지는 빡빡이였고 반짝이는 머리만큼이나 부담되게 접근했다. 나는 손목의 염주가 소용없음을 느꼈다. 평소에 내 공덕이 부족한 업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부처님께 귀의하든 기도하든 해야 했는데.

     

내 글은 너무나 솔직해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겁난다. 에세이라니에 쓴 글은 너무나 진솔하지만 글에 있어서 오해는 분명히 생길 거 같았다. 나는 스무 살 때 누구도 좋아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는 건 너무나 막연했던 감정이고 그런 건 티브이 속에서나 실현될 줄 알았다. 


너무나 행복해서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요즘이라 인프피 특유의 가시가 돋운 느낌이다. 그냥 공주가 너무 좋고 사랑스럽다. 삶의 질이 더 올라간 느낌이다. 비약이 상당히 문장 사이에 있었던 것 같지만 내 기분이 딱 그렇다. 공주를 만났을 때와 만나지 않았을 때의 상태가 꼭 비약 같다. 중간이 없다. 인과도 없고.

 

글을 쓰는 오늘은 공주와 애슐리에 갔다 온 날이다. 결혼식장에서 알바했던 때가 떠올랐다. 바구니에 담긴 접시를 치웠고 음식물을 비웠고 술을 갖다주고 치우고 닦고 잡다한 일을 했다. 그 일은 체력 소모가 심했고 배가 고팠다. 점심시간에 일을 하기 때문이었는데 한 손님이 음식에 손도 안 댄 채 접시를 치웠다. 나는 거기에 있던 빵(떡인가 어쨌든)을 입에 한입에 넣었다. 그때 매니저와 마주쳤다. 매니저는 내게 말했다. 끝나고 먹어요, 불쌍하잖아요. 웃으며 말하는 그는 나보다 2살 정도밖에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후로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몰래 먹었다.


그때가 2018년 2학기니까 대충 가을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하던 시절. 그해 겨울은 무지하게 추웠던 때. 황사가 무척이나 심했고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던 나의 스무 살은 알바천국이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알바를 했고.


김연수의 스무 살도 서윤후의 스무 살도 공감할 수 없었다. 사랑도 돈이 있어야 했고 가난엔 증명이 필요했으니까. 좋아한다는 건 사치였기에 돈을 좋아하기로 했다. 아무리 당겨도 밀어내는 게 돈이라 나는 항상 을이었다. 그랬던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게 신기하다. 밥을 사줄 수 있는 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 계속 먹이고 싶다. 계속 썼다간 뭔가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것 같다. 그만큼 공주가 좋다는 뜻인데.


                    

무슨 의미는 없고.. 그냥 귀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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