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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Feb 07. 2023

난 코미디언맨

그냥 일기



목소리의 형태



난 코미디언맨 난 코미디언맨


내가 죽으면 나를 밟고 누워


내 인생은 네게 희극


넌 코미디 난 비극



잠비노의 <코미디> 가사 중 일부다. ‘내가 죽으면 날 밟고 누워’라는 말은 마지막까지 상대를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맨의 숙명처럼 들린다.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라는 말처럼. 내 삶이 비극으로 끝나도 상대에겐 희극이면 된 거다. 웃겼으면 말이다.


불나방과 같은 하루살이가 있다. 이름은 기억나질 않는다. 그 하루살이는 달을 향하는 게 목표다. 인생의 의미는 달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을 향해서 날아간다. 날아가다 죽는다. 달에 끝내 닿지 못하고 바닥에 시체가 되어간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벌레의 죽음은 그렇게 쌓여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거리엔 가로등이 들어왔다. 가로등의 밝은 빛은 하루살이에게 달이었다. 그들은 가로등에서 광란의 밤을 즐기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가로등의 강한 빛에 몸이 태워진 거다. 그들은 그렇게 달에서 죽는다. 정확히는 달에서 죽었다고 착각한다.


어쩐지 난 그들의 인생이 멋있어 보였다. 남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은 무대 위가 단두대 같을지도 모른다.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은 필요가 없었고. 하루살이는 달이 아닌 가로등에 취해 죽는다. 누군가는 그 사실 자체를 비극으로 받아들이기도 할 거다. 그런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에서 죽었다고 본인은 생각하니까.


학교에서 북뿜뿜(독서 소모임 비슷한)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토론할 책이 조지 오웰의 <1984>였다. 옛날에 읽었던 터라 사실 이번에 읽지 않았다. 앞부분만 살짝 읽고 그랬다. 그런데 주인공의 태도에 대해서 나온 질문이 흥미로웠다. 만약 <1984> 속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면 당원으로 살겠는가.


나는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온 일반 소시민들은 잘못된 세계임을 인식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지하다. 난 차라리 주인공처럼 어중간하게 알 바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한 채로 살고 싶다. 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단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으니까.


가끔은 덜 몰랐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그럼 세상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냥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고 깨우치고 싶은데 우매한 내가 그 참뜻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물은 물이고 산은 산으로 보고 살아가고 싶다. 그게 코미디 같다. 세상은 내가 알아갈수록 모순적이다. 웃기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땐 그냥 멋쩍게 웃고 싶다. 하핳..



나를 가만 냅둬


나 좀 그만 냅둬



가끔은 가만히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글은 아침에 쓰려고 한다. 새벽의 이상한 감성에 잡히고 싶지 않아서다. 일기에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오히려 진솔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감정에만 잡혀있으면 하릴없이 나무를 보게 된다. 숲을 이루는 마음을 넓게 보고 싶다. 숲에 서식하는 사슴도 토끼도 하나하나 마음으로 새기면서 말이다.


우리네는 어쩌면 살아가는 의미를 잃은 족속일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 배운 고추잠자리 동화가 있다. 고추잠자리는 자신이 살다 간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름을 새긴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자신의 이름을 모두에게 알린다.


지금까지 그 내용이 기억에 남는 건 그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서일까. 김해경이 이상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소설 같았다. 사실 지금도 사실인지 소설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상의 이상은 이상하다 할 때의 이상이다. 본명인 김해경과 무관하다. 이상이 쓴 <오감도>의 이상한 아해는 이상 자신일지 모른다. 김해경으로서가 아닌 이상을 위해 일본 동경에서 자살했다는 불우한 천재.


코미디다. 인생의 이야기는 재밌다. 랭보는 천재적인 감각을 지녔고 그가 쓴 시는 그가 젊었을 때 쓴 거다. 그러고 그는 시를 쓰지 않았다. 그가 다시 썼다면 후대에 남겨진 그의 업적은 단순 천재로 마무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코미디를 받아들이는 일일지 모른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는 건 썩 희극적인 일이라 실감이 안 난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떻게 우리가 만나 인연을 가지게 된 걸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과 옷깃이 사실 굉장히 닿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느낌 같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행복하다고.



<구의 증명>이 그렇게 재밌다는 글을 봤다. 귀찮다. 오래 끊은 넷플릭스를 끊었다. 거의 반년 가까이 돈만 내고 보진 않았다. 본 게 우영우랑 더 글로리, 재벌집 막내아들 정도다. 6개월 간 드라마 3개면 선방인가. 사실 그냥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1월까지만 보기로 했다. 어짜피 학기 중엔 안 보고 더 글로리랑 재벌집은 방학 때 본 거다. 약 4-5개월 동안 우영우 하나를 본 거니 아까울 만도 하지.


11월 달에 신청한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저번주에 발급 신청했다. 일이 없으면 조용한 날이 반복된다. 어젠 노원에서 공릉까지 걸었다. 노원역, 중계역, 하계역, 공릉역, 태릉입구까지 몇 개의 역을 걸어간 거다. 물론 한 번에 걷진 않았다. 노원 롯데백화점에서 하계에 위치한 기숙사에 갔고 잠시 쉬었다.


사람이 많은 건 싫다. 특히 그들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오는 상태일 때. 단순히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물론 좋진 않다. 하지만 단체로 술자리를 가지는 등은 기가 빨린다. 어서 가서 침대에 눕고 싶다. 어젠 강하게 배가 고팠다. 빨리 저녁을 먹고 싶었다. 그때 공주한테 연락이 왔었다. 반가운 이름이 휴대폰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닉네임을 고민했다. 그냥 이름 옆에 하트를 붙일까. 이름만 있으면 너무 딱딱한데. 뭔가 실망하지 않을까. 내심 서운하다던가. 음. 고민하다 공주님이라고 적었다. 님은 너무 또 너무 딱딱한가 싶어 님을 뺐다. 공주. 우리 공주. 평생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나만의 공주.


공주엔 가본 적이 없다. 백제와 관련된 무언가가 많을 거 같은데. 충청남도는 잘 갈 일이 없다. 공주시엔 사실 관심이 1도 없었는데. 시인 거 봐선 사람도 꽤 사는 거 같다. 세종과 대전 바로 옆이니 인구 유동도 많을 거 같고 인프라도 잘 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서울에서 태안까지 1-2시간이면 바로 갈 수 있다고 들었다. 사람이 한적한 바다를 보고 싶으면 추천한다고 했다. 주말 동안 갔다 오기도 좋아 보였다. 서울은 교통이 정말 좋다.


월요일 아침이지만 바쁘지 않다. 공주는 월요일 아침의 행복을 절실하게 체험하고 있을 거다. 난 이미 오래돼서 무뎌졌지만 말이다. 기숙사는 다음 주에 방을 빼고 이제 몇 주간 살 작은 원룸에 짐을 옮겨야 한다. 3월 3일에 시작되는 자취를 위해 잠시 머무르는 거주 공간이다. 4평 안 될 거 같은 작은 원룸이다. 20에 빌렸고 저번 주부터 계약자 ‘갑’은 연락이 두절됐다. 을인 나는 달리할 방법이 없는데, 그냥 살아야지 뭐.



https://www.youtube.com/watch?v=zJizIrPme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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