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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Feb 27. 2023

나는 원하는 걸 잘 몰라서

그냥 일기

나는 원하는 걸 잘 몰라서     

밥을 먹을 때 항상 난처하다. 뭐 먹을래. 그러게. 뭐 먹지. 수많은 메뉴가 보일 때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가장 싼 거다. 김밥천국에 가면 비빔밥을 먹는다. 6천 원이 적힌 비빔밥. 언젠가 누군가 말한 적 있다. 좀 비싼 거 먹으라고. 돈까스도 그냥 돈까스 말고 카레돈까스 같은 거 먹으라고. 돈까스에서 가격 천 원 추가하면 되는 거잖아.

원하는 건 이렇게 다들 다르다. 원한다라고 말하고 욕망이라고 말해도 동음이의어다. 우리가 바란다고 말하는 건 되게 욕망이니까. 그래서 원하다, 라는 동사는 타동사일 거다. 원하는 것은 명사를 강제로 목적어에 앉힌다. 나는 원한다, 라는 1형식 문장은 비문이다. 나는 무엇을 원한다가 맞는 문장이니까. 나는 돈을 원한다. 나는 김치찌개를 원한다. 돈과 김치찌개와 같이 구체적인 명사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행복이라는 추상명사가 목적어에 자리하면 난처해진다. 

나는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아.

아무것이라는 건 추상적인 명사다. 원래 아무라는 관형사가 것이라는 의존 명사와 만난 것이지만 아무것이라고 하나의 단어로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해버렸다. 그렇게 아무것은 추상명사이자 온전한 하나의 단어다. 어쨌든 이 아무것이라는 것은 항상 애매하다.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지만 아무거나 얘기하면 그렇다.

어제 뭐 먹었어? 떡볶이. 그럼 분식은 빼고. 한중일 중에 뭐 먹을까. 하나씩 빼자. 느끼한 건 싫으니까 중식 뺄래. 난 일식 비싸니까 뺄래. 한식으로 통일되면 되게는 백반이다. 김밥천국이거나. 사실 두 개가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저녁이면 밀가루와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싶다. 내 옛날 룸메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욕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론 원하는 게 다른 거다. 나는 배부름만을 원하지 않는다. 건강함도 함께 원한다. 그리고 가격도 착하길 바란다. 그런 접근에선 치킨과 피자 같은 음식은 항상 제외된다. 사실 돈이 더 문제지만 기름지고 밀가루 음식이라는 명목의 변명이 생기니까.

나는 원하는 게 어려웠다. 뭘 먹고 싶은 것도 잘 없었다. 만두 먹고 싶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신기했다. 길을 걷다 갑자기 무언가가 먹고 싶다는 건 공감할 수 없었다. 걷다가 누가 만두를 먹고 있었다거나 지나가는 길에 만두의 모락모락한 수증기를 봤다거나 냄새를 맡지 않는 한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다. 난 그런 사람이었다.

카페에서도 항상 난처했다. 제일 싼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었다. 카페인을 좋아하지도 않고 말이다. 억지로 먹고 그날 밤 잠을 설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게 되자 메뉴를 바꿨다. 처음엔 카페라떼로. 그래도 잠은 안 오더라. 녹차라떼로 바꾸자 잠이 잘 왔다. 사람들은 내가 녹차를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좋아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녹차를 원하는 걸까. 녹차 아이스크림도 녹차 음료도 차도 맛있으니까 맞는 얘기 같다. 하지만 갑자기 녹차가 먹고 싶다는 욕망은 한번도 없었든 듯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카페에 가면 녹차라떼를 제일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이것도 몇 번 먹다 보니 가게마다 편차가 크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딸기라떼를 먹는데 이것도 가게마다 차이가 크다. 이렇게 되자 맛이 없는 녹차라떼와 딸기라떼는 먹고 싶지 않게 됐다. 이것은 딜레마인가.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를 잘 모르는 탓인지 상대도 잘 모르겠다. 상대가 무엇이 좋고 싫다고 하면 이상하게 기억을 잘한다. 나는 이것이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쓸데없는 걸 잘 기억하는 뇌가 미웠다. 영어 단어나 하나 더 외울 기억력이 필요했으니까. 요즘은 그런 쓸데없다고 여긴 것마저 잘 기억을 못하고 있다. 스물다섯인데 퇴화하고 있다니.

학교를 꽁꽁 싸매고 다니고 있으니 답답한 감이 든다. 친구가 밥을 먹자고 해도 거절할 방법을 생각한다. 되게 애들은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얘기한다. 맞다. 점 뺀 게 뭐라고. 근데 내가 쪽팔린다고.

나이키 볼캡을 쓰고 후드가 있는 옷을 찾는다. 검정 마스크를 최대한 늘린다. 눈만 들어내고 다니고 있다. 요즘은 후드를 벗는다. 시야가 가려져서 솔직히 불편했다. 집에 내려갈까 생각했다. 집에 가면 종일 방에만 있을 수 있으니까. 선크림도 바를 필요 없을 테고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 되니까. 자꾸만 줄어드는 통장의 금액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최근 통장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사실 무슨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그전과 만 원 단위의 차이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앞자리 바뀌었다는 심리적 거리감은 크다. 그것은 내가 원하지 않던 일이다. 원한다는 건 꼭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엔 밀크티가 먹고 싶었다. 과외가 있는 오늘은 밀크티를 시켰다. 텀블러까지 챙겨 500원 할인을 받았다. 밀크티가 먹고 싶었던 건 아마 아마스빈을 지나면서였다. 상상관을 가기 위해선 아마스빈을 지나야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아마스빈을 지나야 했다. 그곳에 보이는 버블티와 밀크티는 왜인지 맛있어 보였다. 당근을 켰는데 밀크티 기프티콘을 파는 글이 제일 위에 있었다. 무슨 바이럴 광고 같았다. 어쩌면 내 삶도 트루먼처럼 누군가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광고주가 피피엘을 시도하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잊게 하는 밀크티의 달곰함은 맛있었다. 그런데 오늘 잠은 어떡하지. 모르겠다. 희망장학금 60만 원이 들어와서 더 맛있는 건가. 근데 희망장학금은 뭐하는 거지. 내가 언제 신청했더라. 모르겠다. 요즘 생활비 장학금을 못 받고 있다. 인문 100년 장학금에 수혜를 받아놓고 생활비 장학금은 놓친다. 3.8 학점 이상이면 생활비 250만 원을 주는데 저번 학기가 3.79였고 그 전 학기가 3.75였다. 각각 비제로 학점이 뜬 탓이다. 처음엔 그 교수를 많이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 교수를 보기 싫었지만 캡스톤디자인에서 또 만나게 됐다. 영어 과목도 비제로가 떴다. 그건 예상했다. 영어는 너무 어렵다. 사실 이번 모의 토익에서 300점 대가 떴다. 내 옛날 룸메는 진심으로 날 비웃었다. 영어 못한다고 난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물론 변명할 건 있다. 모의 토익 당일 날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가지 말까, 몇 번을 생각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상한 전화와 심적으로 싸워야 했으니까. 신경이 너무 쓰였고 공부도 사실 안 했었고. 그래서 거의 1시간 동안 멍때렸다. 다른 학우들의 서걱서걱 소리는 없었지만 강의실 안의 소리에 몽상을 즐겼다.

장학금은 너무 안타까웠다. 사실 학점은 4점대 이하로 내려온 적 없었던 터라 장학금도 무난하게 받을 줄 알았으니까. 비제로 받은 전공과목 하나는 솔직히 불만이 많았다. 상상평 시절에 하라는 걸 다 했는데도 비플러스도 안 줬으니까. 물론 과제를 제때 제출 안 하긴 했었다. 그래도 기분 나쁜 건 마찬가지다. 사실 장학금이 안 걸려 있었다면 기분 나쁠 리도 없는데. 이래서 무언가를 원한다는 건 고통이 동반되는 일인가 보다. 사실 비플러스가 뜬 전공 과목도 의외였다. 난 최소 에이를 생각했으니까. 뭐, 근데 그것보다 비제로가 너무 크긴 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소망을 이루어줄 거라고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그런가. 원한다는 건 너무 어렵다. 소원은 타인을 위해 빌어야 한다고 했다. 보름달이 뜬 날에 안녕을 빌었다. 누군가를 지칭하진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말이다. 뭐, 굳이 모르는 사람까지의 행복을 빌 만큼의 여유는 나도 없으니까. 내 코가 석 잔데. 그래도 세상이 깨끗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했으면서도 하고. 원한다는 건 이렇게 모순적이다. 난 그냥 앞으로도 내 멋대로 살련다. 


북금곰의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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